고등학교 때였다. 3학년이 됐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집과 학교 사이 거리 30분.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다. 그때는 달랐다. 올인은 당연했다.
기숙사는 좋았다. 시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건 형편없었다. 교실 공간을 이용해 급조한 곳이었다. 공부할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기숙사가 좋았던 건 친구들이 있어서였다. 밥을 함께 먹었고, 식후엔 족구를 열심히 했다. 밤에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유치한 종교논쟁 같은 것도 했다.
그 중 백미는 한 밤에 영화 보기였다.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정말 보고 싶었다. 시청각실에는 TV와 비디오가 있었다. 학교와 가까운 비디오 대여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빌려왔다. 밤을 기다렸다.
선생님들이 다 퇴근했고, 당직 선생님도 수면에 들어갔다. 나와 친구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용히 시청각실로 올라갔다. 모니터에만 켜졌다. 깜깜한 교실 안에서 우리는 몰래 함께 달콤한 일탈을 경험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7명의 학생이 한밤에 기숙사를 탈출해, 몰래 동굴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결성했다.
시청각실에서 우리는 '오 캡틴, 나의 캡틴' 키팅 선생님을 만났다. '카르페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됐다. 아직 못 본 사람이 있다면, 꼭 봐보기를 권한다.
1990년 5월 19일, <죽은 시인의 사회>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다. 제목이 참 근사했다. 'Dead Poets Society'를 오역한 케이스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제대로 번역했다면, '죽은 시인의 모임'(죽은 시인을 공부하는 모임) 같이 심심해질 뻔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개봉한지 24년이 지났다. 아직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 교육에 닿지 않았다. 아쉽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좋은 대사들이 많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이거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