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제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이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칼럼 기억하고 있으신지요. 법은 제정될 당시 사회의 현실과 관습을 반영한다고 말씀 드렸던 것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우리 법이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은 아주 오래 전 '유기장법'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글 도중에 게임에 대해 다루는 단일한 법으로서 게임산업법은 2006년 제정 이후 시행도 되기 전에 개정됐다고 했었죠.
(엄밀히 말하면 제정 이후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안들이 발의되었던 것입니다만) 왜 시행도 하기 전에 법을 개정하려 했을까요?
우리는 다시 2006년으로 되돌아가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법 제정절차나 그 내용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이 비유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2006년 시행을 앞두고 있던 ‘게임산업법’을, 다음 달 서비스를 앞둔 신작 온라인 혹은 모바일 게임으로 비유해 봅시다. 그러면 ‘게임산업법의 시행’이라 함은 법이 효력을 갖고 적용되는 것이니, 게임으로 치면 서비스 론칭 날짜가 되어 게임의 첫 ‘서비스’를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게임산업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을 했다’고 하는 것은 게임에서는 ‘첫 서비스를 하기도 전에 패치부터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게임산업법은 첫 서비스를 하기도 전에 패치부터 준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대규모 패치를요.
왜 정식 서비스도 하기 전에 패치부터 해야 했을까요. 게임이라면, 정식 서비스 전에 게임 자체 시스템 내에 치명적인 버그가 발견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시장 상황이 바뀌어서 갑자기 원래 기획했던 장르의 게임의 인기가 시들해져서 긴급히 기획을 바꾸어야 했을 수도 있고요.
전자는 자체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이고, 후자는 ‘시장 상황의 변화’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게임에서는 보통 출시 전 패치라면 전자의 경우일 겁니다. 시장 상황이 웬만큼 바뀐 것이 아니라면, 서비스도 하기 전에 후자의 이유로 패치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제안하여 만듭니다. 물론 정부에서 법안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도 법안의 심사는 국회의원들이 합니다. 법 체계가 맞지 않는 문제나 자구가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경우와 같은 형식적인 문제점들은 대부분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의 과정에서 심사돼 시행 전에는 대부분 정리가 됩니다. 이걸 ‘자구(字句)심사’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법안의 문제에 있어서는, ‘법안 자체적인 버그 발견에 의한 출시 전 대규모 패치’는 사실 일어나기 드문 일입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찾아 보면, 2006년 4월 28일 공포되어 2006년 10월 29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었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그 시행 전인 2006년 7~9월 사이에 제17대 국회에서 ‘천영세 의원 등 10인 발의안’을 포함하여 약 10개 남짓한 수의 개정안이 무더기로 발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후 여러 의안을 통합한 ‘대안’으로 가결됐고, 게임산업법의 첫 시행 3개월만인 2007년 1월 17일 공포, 2007년 4월 20일에 시행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입니다. 이 무렵 발의된 제17대 국회 소속 여러 국회의원들의 개정안들의 내용을 살펴 보면, 상당수가 직, 간접적으로 ‘사행성 게임’에 대한 규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게임산업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 전에 외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는 2006년 게임산업법 시행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게임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커다란 사건이 터진 것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바다이야기> 사태입니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2005년 말부터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집중적으로 서울과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곳곳에 퍼져 있던 사행성 유기장을 단속하고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개발사와 유통사 대표가 각각 형사처벌을 받았고, 정부기관에서도 관리소홀을 이유로 수십 명이 수사를 받는 등 게임 콘텐츠 하나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쳐 놓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바다이야기’가 망친 것은 수 많은 시민들의 삶이었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단죄를 받아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 외에도 <바다이야기> 사태는 게임기의 대량 압수 및 폐기로 인해, 갑자기 30인치대의 중고 저해상도 대형 모니터가 대량으로 시장에 공급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다이야기>가 게임산업에 미친 가장 큰 폐해는 게임산업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확인시키고, 당시 이제 막 세계적인 온라인게임으로 인정받고, 수출 효자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던 게임산업이 ‘가정을 파괴시키는 음지의 산업’이라는 낙인을 떼어낼 수 있었던 기회를 다시 한 번 연기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시행 직후의 개정으로 ‘사행성게임물’이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이들을 ‘게임산업법이 규율하는 ‘게임’의 영역에서 제외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사행성게임은 게임산업법상의 ‘게임’이 아니게 된 거죠. 저는 게임 산업에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바다이야기>는 ‘게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 결론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산업법의 조문에 남은, 2006년 그 폭탄과도 같았던 사건의 흔적을 보면 마치 흉터와도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TIG의 기획 기사 중에는 과거 <바다이야기> 사태를 회상하는 글이 있었는데, 그 중 연일 언론에서 사행성 게임물을 질타할 때, 필자의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관한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네, 저도 당시 어머니로부터 걱정하시는 전화를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게임”은 그 “게임”이 아니에요’라고 짧게 답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여러분은 세상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경험을 창출하고 공유하고 계신 분들이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