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소프트맥스의 코스닥 시장 주식 거래 정지 소식이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현재의 위상이 아쉽긴 하지만, 소프트맥스는 제 기억 속에 <창세기전>과 그 외전 <서풍의 광시곡>을 남겨준 회사입니다. 2000년대 초반 서비스됐던 <4Leaf>도 소프트맥스가 패키지게임 회사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저력을 보여줬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소프트맥스가 <창세기전 4>를 통한 부활에 성공하길 기원해 봅니다.
소프트맥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최근 시장의 흐름이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입니다만, 과거 우리나라에도 패키지게임으로 불리던 시장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PC에서 단독으로 실행되는 게임을 디스켓이나 CD에 담아 판매하던 시절이었죠. ‘동서게임채널’을 기억하시나요?
고급스럽게 게임의 내용을 인쇄한 박스에, 잘 만든 매뉴얼이나 기념품을 담아 게임 디스켓이나 CD를 함께 패키징(packaging)해 ‘상품’으로 판매되던 게임. 지금은 우리나라 개발사 중에 만드는 곳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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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축소되고 유통망이 스팀 등으로 다변화되는 등 변화는 있지만, 해외 패키지 시장은 아직도 건재해서 지금도 <GTA 5> 같은 초대박 히트작이 나옵니다. 북미와 일본에서 건재한 콘솔게임 시장 또한 기본적으로 패키지 기반의 게임 시장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기획력을 갖춘 대작 패키지게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불법복제가 판을 쳤기 때문임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컴퓨터가게’에서 1,000원이나 2,000원씩 주고 5.25인치 디스켓에 게임을 복사해 즐기면서도 그게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패키지게임 시장에서 주류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폭스레인저>, <그날이 오면> 시리즈로 쉽지 않던 시기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냈고, <창세기전> 시리즈나 <악튜러스> 등 기획력과 개발력, 작화 능력을 보여준 멋진 작품들도 만들어 냈었습니다. <킹덤 언더 파이어> 같은 작품도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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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별 작품에 대한 평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게임들은 정말 ‘작품’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지금의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작금의 게임에는 이용자들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해야 하는 공식화된 행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MMORPG에서의 ‘사냥 노가다’나 모바일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트 앵벌이’ 같은 것들인데요, 이런 것이 없이 단지 오롯이 내 돈을 주고 값을 치르고 나면 더 이상 이용자에게 게임을 즐기는 것 외에는 추가의 행위를 요구하지 않고, 그 자체의 스토리텔링에 충실했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엔도르핀 돋는 추억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패키지 게임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에도 서론이 길었네요. 지난 연재에서 2회에 걸쳐 골치 아픈 이론을 길게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조금 쉬어가는 의미에서 ‘상품으로서의 게임과 서비스로서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법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제가 이 연재를 통해 계속 강조하는 점입니다. 게임과 관련한 법제도가 각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면 아마 그 나라의 게임 시장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콘솔 시장이 오랜 시간 강세를 보여왔습니다. 과거 MSX나 NEC PC9801시절을 제외하면 IBM 호환 기종으로 대표되는 PC게임 시장이 쉽게 활성화되지 못할 정도로 콘솔이 강세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현재까지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콘솔게임은 결국 패키지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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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게임시장은 빠르게 변화해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콘솔게임 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도 신기한 일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PC나 콘솔에 대한 경제적 선택권을 쥐고 있던 부모님의 관점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원래 사무용 기기이지만(그래서 본래는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지만) 게임도 되는(그래서 원래 게임하라고 사준 것은 아닌데 의도치 않게 자녀들이 게임을 하는데 쓰는)’ PC와 ‘원래 게임만 하기 위한 용도의(그래서 본래부터 자녀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기기’인 콘솔의 차이가 우리나라 시장에서 두 기기의 운명을 가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게임 시장은 그저 외산 PC게임을 불법복제해서 사용하기 급급했던 시절을 지나, 의미 있는 작품들이 정식으로 유통되던 PC 패키지 게임 시장을 거쳐, 이제는 PC 온라인게임 시장과 스마트폰 환경에서의 모바일게임 시장만 있을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나마 온라인게임 시장도 그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시장 변화의 속도 하나는 우리나라가 최고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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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시장은 어떨까요? 일도양단하여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만, 외형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을 반반 섞어 놓은 분위기라고 평해 봅니다. ‘닌텐도’로 대표되었던 콘솔도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등이 여전히 꾸준하게 팔리고, PC 패키지게임 시장도 있으면서, 온라인게임도 하고, 모바일게임도 하는, 시장 다양성은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콘텐츠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미 시장은 그 나름대로의 색채가 있어 우리가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말하듯 정말 ‘양키 센스 쩌는’ 작품들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콘솔게임이 건재하고, 패키지게임이 여전히 많이 팔리는 게임 시장에서는 게임을 여전히 ‘상품’으로 보는 관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시장은 ‘게임’을 책이나 영화 DVD와 같이 구매자가 그 내용을 구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온라인게임도 어느 정도는 패키지게임의 색채를 띄게 되고, 유료화 등에 있어서도 정액제 방식을 취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게임 또한 3~5불 내외의 유료 판매 방식을 갖춘 게임이 꾸준히 시장에 출시되고 <모뉴먼트 밸리>와 같은 게임이 히트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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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관점이나 판례의 논리도 이런 사정을 전제하여 전개됩니다. 게임의 복제와 관련한 문제가 제기되고, 게임의 내용을 표절한 것이 문제되어 저작권법상의 법적 쟁점이 생깁니다. 판매된 게임의 소유권이 이용자에게 귀속되는 관계로 이를 변경하거나 조작을 가하여 다시 배포한 경우 원작과의 관계에서 저작권법상의 쟁점이 주로 발생합니다.
게임과 관련된 미국이나 일본 판례들을 보면 주로 저작권 관점에서 게임 내용의 유사성 관련 분쟁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용자가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로서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고 즐기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사실상 온라인게임과 네트워크 기반의 모바일게임이 주류를 형성하는 게임 시장의 특색은 ‘서비스로서의 게임’이 성립한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니, 성립하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은 곧 네트워크를 통하여 접속한 이용자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게임 시장에서 게임은 일단 무료로 다운로드하여 즐기다가, 필요하면 일부 기능이나 아이템을 구입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모바일게임도 일단 게임 자체는 무료이고, 부분유료화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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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로서의 게임 시장은 패키지게임 위주의 시장이 갖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에 관하여 발생하는 법적 분쟁들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법적 분쟁을 가져옵니다. 바로 게임 개발사(혹은 퍼블리셔)와 이용자 사이의 분쟁인데, 전체적으로 이는 민사관계를 중심으로 하면서 경우에 따라 소비자법제의 규제를 받게 되는 분쟁의 양상을 띄게 됩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용자와 게임 서비스 제공자 사이의 분쟁은 비교적 드물게 발생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리니지> 시절부터 이 분야의 판례가 쌓여 왔습니다. 당연히 관련된 분쟁에서의 쟁점 또한 약관, 운영정책, 게임 아이템, 서비스 중단 조치의 해제를 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패키지게임을 즐기는 경우에는 문제될 수 없는 것들이죠.
심지어 분쟁이 심화되거나 이용자의 불법행위가 게임 서비스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에 이르는 경우 게임을 제공하는 개발사나 퍼블리셔는 고객인 이용자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포함한 선제적인 법적 분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것은 서비스로서의 게임을 오래 전부터 경험해 본 우리나라 특유의 분쟁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온라인게임의 종주국다운 특징이죠.
지난 2013년 한 유저는 <리니지>에서 집행검 강화에 실패했다며 엔씨소프트에 복구를 요청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관련기사] 강화로 ‘집행검’ 잃은 게이머, 복구 소송 패소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개발사가 제공하는 경험을 수용하는 주체로서의 이용자 관점에서 본다면,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구매하는 이용자는 이미 완성되어 주어진 게임을 즐기는 수동적 존재이지만, ‘서비스로서의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는 퍼블리셔나 개발사와 함께 콘텐츠를 수용하고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본다면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이용자들이 게임 서비스 제공자를 상대로 소송 등 법적 분쟁을 하게 되는 일이 왜 발생하는지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에는 이번 연재에서 논의한 관점을 기준 삼아 국가별로 서로 다른 게임시장을 해당 국가의 법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특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분쟁 사례들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