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TIG 독자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이제 여름이 가까이 왔나 싶을 정도로 지난 한 주는 무척이나 더웠는데, 제가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 지금은 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는 것 같네요.
우리는 지난 연재에서 셧다운제 헌법소원 결정 중 반대의견을 살펴 보았습니다. 저는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한 번 더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비교해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의 타당성을 떠나 아무리 살펴봐도 게임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의견은 반대의견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혹시 게임업계에 불리하게 판단을 내리라는 정치적인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신지요? 사실 셧다운제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결정이 내려지던 당시에는 그런 소문이 있기도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별로 근거는 없는 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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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많은 분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분위기나 사회의 관심, 여론의 향방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가끔씩 미디어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원의 일부 판결은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고, 실제로 있었을 것 같은 사실을 각색하여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법은 약자의 편이라기 보다는 가진 자들의 권력을 방어하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하죠.
재판의 결과를 다룬 신문기사의 댓글에 ‘판사가 돈 먹었네’, ‘판사 니 자식이 피해자였으면 그랬겠냐’라는 글이 달리는 것은 이제 흔한 일입니다.
저도 변호사인 관계로, 지인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어떤 영화에 나온 이야기는 정말 사실이냐”, “이번에 화제가 된 판결은 그 결론이 타당한 거냐”라는 질문 말이죠.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신의 직업관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법이란 가치중립적인 것이므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올바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법조계의 대다수가 법리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고 수사하며 변론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지는 이유는, 문제 있는 사례들이 전혀 없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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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것은, 그리고 법으로 정해진 재판 절차라는 것은 어떤 사안을,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판단을 내리겠다는 사회적 합의와 같은 것입니다. 이전의 칼럼에서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민사소송에서는 변론주의에 따라 양쪽 당사자들의 주장과 입증이 이루어지고 나면 재판부가 사안을 판단하게 됩니다.
형사소송에서는 국가가 형벌권의 행사자로서 검사를 통해 피고인의 유죄사실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입증해야 하는 것이고, 충분한 입증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피고인은 무죄판결을 받기로 하는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주장된 사실’과 ‘입증된 사실’은 다를 수 있고, 언론과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법정 밖에서 알려진 사실과 법정 안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에 들어온 사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이것은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변호사와의 관계, 당대의 정치적 분위기와는 무관하고 말 그대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래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법원의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때로 부조리해 보일 지는 몰라도 그런 사례들 중 대다수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신문 기사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낚이지(?) 말고 내용을 더해 꼼꼼하게 읽어 보면 의문은 해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의 판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작성하는 데에는 규칙이 있고, 어느 곳에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논리적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작성이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프로그래밍의 문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법학이란 어떤 면에서는 거대한 논리의 체계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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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이 법언이 자주 재판을 비판하는 논거로 쓰이는 점이 참 안타깝기는 합니다. 그러나 법조인들의 시각에서 이 말은 그만큼이나 판결문의 형식과 내용은 중요하다는 의미도 함께 갖습니다. 물론 판사가 외부의 영향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헌법상의 원칙이기도 하고요(대한민국헌법 제103조).
제 생각에 당사자들의 주장과 입증이 끝난 후, 법적 논리가 담긴 판결문이 완성되는 순간이 되면 정치적 입장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법조인이라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고, 저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의 생각 또한 존중합니다.
변호사가 판결을 내리지는 않지만, 변호사들도 사법연수원 시절에 판결문 작성법을 배우고(최근 로스쿨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후에도 여러 판결문을 보게 되므로 사건을 바라볼 때 머릿속으로 혹은 간략히 손으로 판결문을 구성해 보곤 합니다. 사건 자체가 판결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만약 자신이 이 사건의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라면, 자신이 대리(민사)하거나 변호(형사)하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문을 쓰려고 할 때 어떤 부분에서 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낄지를 추측해 보고, 그 부분의 부족한 면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변론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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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맡는 사건에는 쉬운 사건과 어려운 사건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판례까지도 검색이 가능한 시대에 의뢰인들이 굳이 변호사에게 찾아와 문의를 할 정도의 분쟁이라면 결론이 쉽게 내려지는 사건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 가끔 저는 양쪽의 입장에서 어떤 특정 결론을 내리기로 미리 머리 속으로 정해 놓고 나서 거꾸로 역으로 논리를 구성해 판결문을 구성해보려 시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해도 말이 안되거나 글이 안 이어지는 결론이라면 사건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같은 논리로 접근해 본 강제적 셧다운제 헌법소원사건의 경우는 좀 특이했습니다. 이 사건은 분명히 기존 헌법재판소 결정례들의 논리 하에서는 합헌의견으로 쓰기가 더 편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개를 구성한 후 그 내용에 채워 넣을 구체적인 논리들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게임업계를 잘 알기 때문이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헌법재판소에서 그 결론을 합헌으로 내더라도 개개의 내용을 어떻게 매끄럽게 구성할 것인지는 잘 예상이 되지 않아 무척 궁금했는데, 실제 결정문을 구해서 보니 그 내용 또한 구체적인 설시에 있어서는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결론을 정하고 결정으로 나아간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긴 했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3년 동안 고심한 결과이고 청소년, 부모, 게임업체, 여성가족부 측 대리인들이 치열하게 다툰 사건이었으니 제 생각은 단순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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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사실 게임은 유해하고 중독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전제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의 일을 하면서, 게임업계와 관련된 사건을 다루면서 가끔씩 저도 자신에게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게임은 정말 중독성이 없는 것일까?’라고요.
게임업계나 게임중독의 존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의 주장 중에는 ‘게임에 대한 과몰입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질병인지, 그리고 생활에 영향을 주는 해악적 영향이 있는지를 먼저 면밀히 연구하여 밝혀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 입장에 동조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게임중독이 존재하고 인간에게 유해한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유해성의 여부를 따지기 앞서 게임에 대한 접근을 일단 차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이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저는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게임업계 분 외에도 게임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었고 그 중에 자녀를 둔 분을 뵙는 때도 있었습니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환담이 오가거나 하는 경우 기회가 되어 게임에 대해 여쭈어 보면 게임중독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 자체를 품지 않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일단 게임 자체를 자녀의 건전한 발달을 저해하는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게임중독에 대한 간담회가 열릴 때 학부모단체 등에서는 종종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는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해서 아이를 보호하자는 우리 얘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냐’는 논리가 횡횡하곤 했죠.
이런 전제 하에서 게임 규제에 대한 타당성 논의는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상황이 됩니다. 이 때 논의의 대상은 규제의 적절성만이 문제될 뿐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조차 없게 되니깐요.
셧다운제 헌법소원은 결과야 실패로 끝났지만 예견된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법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게임업계에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실 현실의 문제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 법이라는 판단 수단을 이용해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소원조차 않았다면 제19대 국회에서의 후속 규제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았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셧다운제 헌법소원은 끝났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두기 위한 노력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개인과 게임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게임을 즐기는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게임업계의 결속력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게임중독을 논하기에 앞서 그 전제로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들, 그러니깐 ‘게임중독(혹은 과몰입)’이라는 것이 일종의 정신질환과 같이 실재하는 것인지 여부와 같은 문제나,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가 게임 그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청소년의 판단력이 어른의 그것보다 약하기 때문인지, 혹은 둘 다 아니고 가정이나 주변 환경에서 오는 결핍으로 인해 몰입의 대상으로 게임을 찾게 만드는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개개인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법의 영역에서 분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에서 헌법소원이나 법원의 재판이 또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건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 순간순간 각각의 분쟁에 드러나는 주장과 그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영역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증거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줄 것이고, 그 때 우리 사회가 갖는 게임에 대한 관점이 결론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게 되겠지요. 지난 셧다운제 헌법소원 당시에는 아직 게임에 대한 사회의 평균적인 인식이 셧다운제를 부당한 규제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오지 못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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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함께 즐기고 성장해온 세대가 사회의 각계 각층의 다양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면 이 문제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될 때 지난 번과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죠.
그 때를 위해 게임업계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 그에 더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기 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환경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게임에 대한 규제의 논의가 고개를 들게 된 것에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점도 한 몫 하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하니깐요. 이러다간 게임을 만들고도 할 시간도 없는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말하는 환경의 조성이란 거창한 캠페인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게임업계 그 자체가 근로자들의 근무 여건이나 환경 등에서 여유를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네요.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이어온 저의 ‘게임과 법’ 연재는 이제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게임과 법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비 정기 연재 형식으로 TIG 독자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만, 당분간은 연재를 중단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간단한 후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