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초반부터 규제의 폭풍이었습니다. 상반기에 게임과 관련돼 발의, 혹은 심사된 법안만 5개 이상. 내용도 강제적 셧다운제 강화나 매출 1% 이하 징수 등 어느 하나 만만히 볼 법안이 없었습니다.
그중 올해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법안을 고르자면 신의진 의원의 4대 중독법(이하 중독법)이 꼽힐 것입니다. 지난 4월 발의된 중독법은 10월 열린 공청회 이후, 게임계와 문화계, 나아가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초대형 이슈로 거듭났습니다. 올 한 해 가장 뜨거운 게임계 이슈였던 중독법의 발의부터 법안 심사 보류까지의 흐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규제 폭풍 속에 등장한 4대 중독법
지난 4월 30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외 13명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질이라 규정하고, 이를 통합해 관리하자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주요 내용1. 중독 예방·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완화를 위하여 국무총리 산하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설치한다.2. 국가중독관리위원회는 중독 및 중독폐해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계획에 반영한다.3. 정부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자치단체는 위원회의 조치에 따라 중독 및 중독폐해 대처법 등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실시한다.4.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중독폐해 방지를 위해 중독물질의 생산, 유통 및 판매를 관리한다.5. 보건복지부는 중독의 예방·치료와 중독자의 사례관리 등을 위한 중독관리센터를 설치한다.6. 중독 및 중독폐해와 관련된 법률의 관련 조문을 개정하는 경우 국가중독관리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함.
게임 과몰입의 폐해를 줄인다는 이유로 게임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2004년부터 논의되어 결국 법안이 통과됐던 강제적 셧다운제가 대표적인 사례고, 올해 1월에도 강제적 셧다운제 강화와 게임업계 매출 1% 징수를 골자로 한 일명 ‘손인춘법’이 발의됐습니다.
신의진 의원의 중독법이 기존 법안과 다른 점은 이른바 ‘게임중독’이라는 근거가 이유에 머물지 않고, 실제 보건의학적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중독법은 게임을 술, 도박, 마약 등 대표적인 중독물질과 동일하며, 보건복지부에서 관리가 필요한 ‘행위 중독’이라고 규정해 게이머와 개발자들의 많은 반발을 샀죠.
발의 당시 중독법에 대한 반발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013년 상반기에만 5개 이상의 규제 법안이 발의, 혹은 심사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제적 셧다운제 강화와 매출 1% 징수를 골자로 한 ‘손인춘법’이나, 업계 진흥 위해 매출의 5%를 징수하겠다는 ‘상상콘텐츠기금법’ 등 각종 매출징수법(?)은 상반기 업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중독법은 여러 규제 법안 중 하나로만 인식되었죠. 사실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실제로도 중독법 관련 이슈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임이 마약과 같은 취급을 받는 논리가 받아들여질 리 없다는 예상도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황우여, “술∙마약∙도박∙게임 중독으로부터 사회를 구하겠다”
중독법이 다시 이슈가 된 것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10월 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알콜, 게임, 마약, 도박’을 4대 중독으로 규정하며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부터입니다.
황우여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게임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새누리당이 중독법 통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황 대표의 발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K-IDEA는 중독법을 ‘구한말 쇄국정책의 되풀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반대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가수 신해철은 “공권력이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이 더 문제”라며 SNS로 황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죠.
반면, 중독법 지지단체인 한국중독정신의학회에서는 ‘게임뇌’ 가설과 ‘인터넷 중독 통계’ 등을 근거로 황 대표의 발언을 지지했습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도 게임은 술, 마약보다 심각하다며 황 대표의 발언에 동조했죠. 중독법에 대한 찬반 양론이 온∙오프라인에서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황우여 대표(오른쪽)는 연설 이후 중독법 공청회에 참석하는 등 중독법 찬성 행보를 이어갔다.
“말꼬리 잡지 마시고요” 편파 진행으로 얼룩진 공청회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으로 탄력을 받은 신의진 의원은 발 빠르게 중독법의 입법절차를 밟습니다. 입법절차 중 첫 단계인 의견수렴을 위해서 10월 31일 공청회를 열었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처음으로 나누는 자리라는 점에서 게임업계의 이목도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공개된 공청회 참가자 구성을 보니 찬성 측 인사가 절반을 넘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다른 이의 간섭 없이 발언할 수 있는 주제 발표자 2명 모두 중독법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30분이 배정된 지정토론은 그나마 3:3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반대 측 참가자 중 게임업계 종사자는 한 명도 없었죠.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는 공정하지 못한 진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찬성 측에 편향된 참가자 구성도, 게임 과몰입과 인터넷 중독을 혼동하는 근거 제시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행사를 진행한 사회자부터 노골적으로 찬성 쪽 편을 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공청회 자유토론의 사회를 맡은 인천성모병원 정신과 기선완 교수는 찬성 측 인사에게 우선 발언권을 주는가 하면, 본인이 직접 찬성 의견을 나타내는 등 토론 내내 균형을 잃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독법 반대자들의 의견은 묵살하거나 면박을 줘 눈살을 찌푸리게 했죠.
공청회 한 달 후인 11월 21일에는 기 교수가 중독법 찬성 단체 중 하나인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의 차기 이사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청회의 편향성 논란이 다시 한 번 제기됐습니다.
공청회 토론의 편파 진행으로 논란이 되었던 기선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차기 이사장.
중독법, 게임계의 이슈에서 사회 전반의 이슈로
편파 진행 논란을 빚은 공청회는 중독법 이슈를 폭발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K-IDEA에서 10월 28일 시작한 중독법 반대 온라인 서명은 1주일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고, 온∙오프라인에서는 한국은 물론 해외 개발자들까지 중독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인터넷에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공청회가 열린 10월 31일부터 찬반 양 진영은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서로의 입장을 밝혔죠. 초기에는 라디오와 종합편성 채널 등에서만 논의가 이뤄졌지만, 점점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11월 10일에는 지상파 방송 저녁 뉴스에서도 중독법을 다뤘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중독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이들을 보면, 진중권(교수), 김희철(가수), 이병찬(변호사), 이영식(정신의학과 교수), 김영하(소설가), 윤태호(만화가), 유승희(국회의원), 전병헌(국회의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문화계는 중독법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문화 콘텐츠에 가해지는 무분별한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까지 발족하는 등 거세게 중독법에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11월 말, 중독법 반대서명은 30만 명을돌파했죠.
중독법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가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건강국민연대의 김민선 사무국장은 중독법 찬성을 위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개신교 단체의 연합인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의원들에게 중독법 찬성을 촉구함과 동시에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습니다.

11월 21일 발족한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중독법 심사 ‘보류’
이렇게 찬반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중독법은 별다른 의견수렴 절차 없이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독법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가 보류되었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법안의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 사회적 합의와 여론수렴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연말·연초의 바쁜 일정, 그리고 일러야 2월 개회되는 국회 일정(임시국회 2월, 정기 국회 4월)까지 고려하면 중독법 이슈는 해를 넘기게 됐죠.
그렇다면 2014년에는 어떻게 될까요? 중독법을 발의한 신의진 의원은 법안소위의 결정에 따라 최소 1번 이상의 공청회(혹은 그와 유사한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게임계와 문화계는 지난 공청회의 사례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며 각자 자신들의 방법대로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주요 흐름
2013. 04. 30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최초 발의2013. 10. 07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교섭단체 연설에서 4대 중독 척결 대상에 ‘게임’ 포함2013. 10. 28 K-IDEA, ‘중독법’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 시작2013. 10. 31 신의진 의원,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독법 공청회 개최2013. 11. 04 중독법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 10만 명 돌파2013. 11. 10 게임 중독법 논란, 지상파방송 메인 뉴스에 등장2013. 11. 14 K-IDEA, 지스타 현장에서 중독법 반대 오프라인 서명 운동 실시2013. 11. 21 아이건강국민연대, 중독법 찬성 서명운동 시작2013. 11. 21 문화계·시민단체,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2013. 11. 27 중독법 반대 서명운동, 30만 명 돌파2013. 12. 11 게임은 문화다! 컨퍼런스 및 게임 중독법 반대 대토론회 개최2013. 12. 20 중독법,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