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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정식 등재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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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진(홀리스79) 2019-05-23 18:13:27

만약,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27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안(ICD-11)을 승인해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정식 등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게임산업은 흔히 표현하는 '대재앙'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단순히 게임과몰입을 '게임중독자'라고 불렀던 것과는 다르다. 산업의 이미지부터 구조, 그 속의 구성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도 정식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고, '인터넷 게임장애'를 처음 사용한 미국 정신의학협회도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이지만, 2017년 12월이 끝날 무렵 발표된 이슈는 벌써 결론에 다다를 순간에 왔다.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정리해봤다.

 

※ 게임 이용 장애와 게임 과몰입의 구분: 기사에선 흔히 게임 중독이라고도 칭하는 현상을 '게임 과몰입'으로, WHO가 정의한 기준과 동일한 현상을 '게임 이용 장애'로 표기합니다. 

 



 

 

# 2022년 1월부터 효력 발생, 국내는 2025년 가능... 복지부는 '바로 받아들이겠다' 입장

세계보건총회에서 ICD-11이 승인되면, 게임 이용 장애는 약 5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 2022년 1월부터 공식 질병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질병으로 공식 분류됐다고 해서 국내에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WHO의 질병 분류 코드는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각국이 수용할 때는 세부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국 질병분류코드(KCD)'라는 독자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한국 표준질병 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로 질병 및 기타 보건 관련 사항을 분류하는 기준. 통계청이 담당하고 있으며 1952년 제정된 ‘한국사인상해 및 질병분류’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일곱 번의 개정을 통해 ‘KCD-7’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게임 장애'는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 발달 장애'목록에서 '물질 사용 또는 중동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의 하위 카테고리인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에 분류돼 있다(검색 번호 6C51).

 

ICD-11이 승인되면,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KCD)을 거쳐 국내 적용된다.

 

또, ICD와 KCD가 꼭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통계청은 KCD가 ICD와 맞춰야 하는 건 통계 비교를 위한 '체계' 부분이며, 세부 내용은 국가별로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종합적으로 봤을 때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부작용이 더 많다고 판단되면, WHO에 수정 요청을 할 수도 있다.

 

KCD 개정은 5년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가 협의를 거쳐 진행한다. 따라서 등재가 된다는 가정하에, 2020년은 아직 유예 기간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국내 적용은 2025년에나 가능하다.

 

다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분류 시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특별한 고려 없이 국내 빠르게 적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코 무리가 아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 산업의 이미지부터 구조, 그리고 구성원까지 심각한 타격 예상

산업 전체적인 규모에서 영향받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자. 간단히 말하면, 경제적인 부분이나 정서적인 부분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먼저, 산업 측면을 생각해 보자. 2018년 기준으로 국내 게임산업 규모는 약 14조 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5년간 국내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수치. 올해 매출은 전년보다 5.8% 증가한 13조 7,000억 원, 수출은 7.5% 늘어난 5조 782억 원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도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적지 않은 영향을 입을 전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질병 코드화에 따른 게임 시장 위축 규모를 조사한 결과, 오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약 11조 원의 손실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매 해당 3~4조 원이 감소하는 꼴.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분석한 경제적 효과 추정보고서도 감소 전망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79억 원, 2024년 1조 7,019억 원, 2025년 3조 3,659억 원으로 총 5조 1,057억 원이 축소될 것이라고 내놨다. 

 

늘어나는 부정적인 인식 탓에 움츠러든 시장 속에서 업체의 활로 모색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인력 감소 현상과 더불어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용자 감소는 물론이고, 이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도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나머지 회사의 간극이 1조 원 이상 차이가 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격차는 점점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부 요인에 더욱 민감한 중소업체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뻔하다.

 

산업에 영향을 주는 각종 규제도 치료와 예방을 근거로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최근 진흥 정책으로 돌아섰던 정부의 태도도 노선을 달리하거나, 일부 수정사항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인식 개선 보다 중독 물질을 치료해야 한다는 근거로 접근하는 움직임이 많아질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시행 중인 셧다운제의 적용 범위 경우 2022년부터 모바일, 콘솔 플랫폼에도 적용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타 플랫폼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모바일게임과 콘솔게임이 중독에 관련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라며 제외되어 있지만, 게임 이용 장애가 ICD-11에 등재되면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어느 정도 마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셧다운제보다 폭넓은 규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질병으로 간주된 이후 치료하는 것에 앞서, 과도한 이용을 막는 기준이 신설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게임 과몰입을 하지 않도록 하는 별도 감사도 관리 주체인 보건복지부 통제 속에 이어질 수 있다.

 

참고로 2016년,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의 질병 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사회 정신건강 문제가 지속 증가하고 이로 인한 자살, 범죄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면서 오는 2020년까지 5개년 간 시행할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내용에는 게임을 알코올, 마약, 인터넷, 도박 등과 함께 중독 요인으로 규정, 게임 중독에 대한 질병 코드를 신설해 의료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담겨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당시 내놓은 '정신건강 종합대책'.

 

더불어, 2013년 당시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게임을 술/마약 등과 함께 4대 중독으로 정의하는 '신의진법'과 게임을 유해 매체로 정의하고 게임 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해 게임사 매출의 1%를 걷는 '손인춘법'도 다시 고개를 내밀 수 있다. 게임사에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일부에서는 국내 질병 분류에 게임 장애가 추가되면, 보건복지부가 통계청에 질병분류 개편을 요구하고 국회에서 이를 통해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 게임사에게 치료 기금을 걷는 법안이 발의될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 부정적인 인식 개선은 점점 더 멀리, 각종 부적절한 사례도 발생할 수 있어

업계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부분도 심각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 장애가 질병이 아닌 이유'를 조금 더 명확한 근거를 들어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부 악용 사례도 증가할 수 있다. 의학에서 환자에게 실제로는 무해하나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환자가 해로운 영향을 받는 상황에 대해 '노시보(nocebo)'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범죄자가 과거 과도하게 게임을 했다는 이유를 들며 자신의 범죄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려 감형을 시도하거나 병역 의무를 부정하는 용도 등 부작용도 일어날 수 있다. 국방부에서는 다시 강한 방치책을 내놓을 것이고. 그밖에 각종 악용 사례도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중에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의 일부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각종 강력범죄,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 상당수가 게임에 빠졌다는 이유로 범죄의 원인을 충분한 근거 없이 설명하고 있지만,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이는 더 이상 근거 없이 추정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WHO에 따르면'이라는 신뢰 높은 '마법의 출처(?)'가 붙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든, 게임과 상관없이 벌어진 사고여도 과거 폭력적인, 혹은 과도하게 게임을 한 흔적이 발견되면 게임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를 붙이기 쉬워진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병역 면제나,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조퇴해도 되겠다는 농담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지난 22일, 문화연대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뭔가?"라는 내용을 물었다. 연대 입장을 밝힘과 동시에 부처별 입장이 다른 정부의 입장 통일을 해달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ICD-11의 WHO 총회 상정이 멀지 않았다. 아직 찬성과 반대 모두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업계는, 어쩌면 너무나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과연, 게임 이용 장애는 질병으로 분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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