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 리지블루스의 신간 <아니, 제 남편이 게임중독이라고요?>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인터뷰집입니다. 김명선 대표는 지난 5월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 결정 이후, 게이머들의 생각을 묻고 정리해 책으로 냈죠. 그 배경에는 하루 4시간씩 게임을 즐기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한 의견을 묻고, 그들에게 게임이 가지는 의미를 파헤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맥과 붙임성을 총동원해 21년차 게임 개발자, 남편의 게임 친구, 아이템 장사꾼 출신의 게이머뿐만 아니라 교수, 유튜버, 웹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게이머를 만나서 게임 이용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책으로 냈다니 기자들도 못 한 일입니다. 남편을 더 사랑하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게임과 관련있는 사람을 8명이나 만나서 책을 썼단 사실에 놀라움마저 듭니다. 8월 30일 수원 영통구 매탄동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책방 '리지블루스'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명선 리지블루스 대표: 수원에서 2년째 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 중이다. 독립 출판으로 에세이 한 권과 인터뷰집 두 권을 냈다. 이번 책 <아니, 제 남편에 게임중독이라고요?>는 리지블루스의 세 번째 책이다. 직장 생활은 3년 정도 했다. 주로 UX리서치 업무를 했다.
운영 중인 책방 '리지블루스'에 대한 소개도 듣고 싶다.
문제집은 안 파는 작은 서점이다. 일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70%, 개인이 만들어 유통하는 독립출판물이 30% 정도다. 콘셉트는 인터뷰 서점이다. 인터뷰책의 비중이 규모에 비해 높다. 방문자를 인터뷰해 책을 추천하거나 짧은 소설을 써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책을 만들었고, 관련 강의도 한 적 있다.
게임 이용 장애를 둘러싸고 일반 게이머인 자신의 남편은 물론 21년차 게임 개발자, 교수와 유명 유튜버는 물론 게임 아이템 장사꾼 이력이 있는 사람까지 만났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남편이 게임중독에 대해 진행했던 '100분 토론'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토론회에서 이렇게 웃긴 발언들이 나왔다" 수준으로 말해주고 웃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실제로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코드로 등재된 거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의문을 품고 사람들을 만나봤다.
처음에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을 하고 목표액을 달성하면 인터뷰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던 중 섭외차 연락했던 김낙형 개발자가 모자르는 금액은 자기가 마련해 줄테니 빨리 책부터 만들라고 해서 바로 시작하게 됐다.
인터뷰이는 어떻게 선정했나? 섭외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부분 주변인이거나 주변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다. 그러면서 평범한 게임 유저와 게임 업계의 전문가의 목소리를 함께 담고 싶었다.
먼저 김형규는 남편이다. 당연히 유부남이고, 삼성전자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여은영 님은 남편의 게임 친구로 여성이다. 여성도 게임을 즐긴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구) 게임 장사꾼, 현) 헬스 트레이너 박상준 님은 학교 후배의 동생이다. 게임에 빠지면 인생을 망친다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낙형 개발자는 학교 선배다. 전 직장 상사의 남편이며 인터뷰집 작성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분을 통해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대표도 섭외할 수 있었다. 놀공 이승택 대표와는 원래 알던 사이다. 그분의 게임 철학을 전하고 싶어서 만났다. 김낙형 개발자, 이승택 대표 모두 자녀를 가진, 게임을 좋아하는 아버지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풀었다.
고영삼 교수는 인터넷 중독 예방 상담의 전문가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성회 유튜버는 게임 쪽에서 워낙 인기도 많으신 분이라 샌드박스에서 일하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 진행했다.
평소에 게임을 즐기는 편인가? 남편은 게임을 꽤 많이 한다고 들었다.
남편은 평일 4시간, 주말에는 5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모바일 게임도 하루에 1시간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삼성전자 잘 다니고 있다. (웃음)
나는 평소에 게임을 즐기진 않고 종종 <캔디크러시 사가>나 <프렌즈팝> 같은 캐쥬얼 게임을 한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즐기던 게임을 잠깐 배워보려고 한 적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나 너무 어렵고 어지럽더라. 그래서 그만뒀다.
연인 중 한쪽이 게임을 많이 하면 싸운다고 그러던데.
우리도 싸운 적이 종종 있다. 게임 중에 통화를 하는데 나한테 집중하지 않는 거다. 전화하는데 뒤에서 계속 키보드 소리가 났었는데, 남편 키보드를 무음 키보드로 바꾸면서 해결됐다. 같이 사는 요즘도 남편은 게임을 하면서 나랑 완벽하게 대화한다.
지금도 가끔씩 남편의 시간을 점유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남편이 내 시간을 뺏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존중하려 한다.
가끔 게임을 하다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 그건 내가 '게임 속에서 그만큼 절박한 타이밍'으로 이해한다. 남편이 연락을 못 할 때면 정말로 게임 속에서 절체절명의 타이밍이더라.
인터뷰를 하면서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나?
인터뷰 전부터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과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인터뷰를 만들면서 그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다기보단 게임을 하는 사람과 게임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솔직히 나도 모르게 게임하는 남편을 한심하게 본 적 있다. 게임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많았고 열등하게 보이기도 했다. '게임 약속'을 한다고 컴퓨터 앞으로 가는 것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게이머들에게 게임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게임도 하나의 문화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게임도 나름 심오한 취미구나. 다양한 세계가 있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구나.
그래서 게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게임이 등산, 낚시, 골프보다 덜 위험하고 돈도 덜 든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완전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게임이 정말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리 남편은 운동 좀 했으면 좋겠다. (웃음)
인터뷰 중 재미있는 일화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말해달라.
고등학생 때 게임 아이템 팔아 3천만 원이나 벌었던 사람을 만났다. 인터뷰 전에는 가내수공업처럼 본인이 열심히 아이템 만들어 팔았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게임머니 시세가 있고 시장이 있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 굉장히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거더라.
이 사람은 자신이 과거 게임 중독자였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게임을 하더라도 생각이 있으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내 운동과 다이어트를 코칭해주고 있다. 그와 인터뷰하면서 '이쪽'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해 전문가를 인터뷰한 기사는 많이 나왔지만, 실제 게임을 많이 즐기는 게이머들의 인터뷰를 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기층 게이머들을 만나보니 어떻던가?
남편, 남편의 게임 친구, 그리고 헬스 트레이너까지 3명을 만났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게임중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본인의 의지를 강조했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경우는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자신이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 부모님이나 연인이 아무리 말려도 어떻게 할 것 같았다.
남편을 더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집을 썼다. 어디서든 발언할 기회가 있는 전문가보단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다. 인터뷰를 할 때면 느끼는 건데, 어떨 때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새롭고 재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업계에 몸담은 분들의 전문성은 굉장했지만, 게임 자체를 즐기는 느낌은 많지 않았다.
21년째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여성 게이머 여은영의 인터뷰는 어땠나?
그분 인터뷰에서는 자극적인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같이 하는 사람, 혹은 상대방이 그 분이 여자인 줄 알면 성희롱을 한다더라. 자주 당하진 않았지만, 겪을 때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로 성별을 밝히지 않거나, 신뢰관계가 형성된 사람에게만 본인의 성별을 밝힌단다. 총 8명의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이 가장 게임을 작품으로 보는 듯했다. 게임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 속 요소를 즐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가 하면 21년째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김낙형 개발자도 만났다.
그분은 대학교 동아리 선배다. 96학번인데 나랑은 무지 멀다. 전에 한 번 뵌 적 있는데 이분 아내께서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상사라서 연결이 됐다.
성인이 되고 나서 게임을 시작한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8비트 컴퓨터로 게임을 즐겼다더라. 그 시절부터 그렇게 게임을 즐겼다니 너무 신기했다. 인터뷰를 보면 그가 얼마나 꾸준히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고, 또 애정을 가졌는지 볼 수 있다. 한결같이 뭔가를 한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렇게 애정과 열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기 어려운 게 게임이구나 싶더라.
이승택 대표나 김낙형 개발자의 경우처럼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이 자녀를 가진 아버지가 됐을 때도 재밌었다.
이승택 스튜디오 놀공 대표는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 둘의 아빠다. 둘 모두 게임을 즐기는데, 둘째가 게임 이용 시간을 두고 아내와 갈등을 벌인단다. 근데 그 분 가정은 정말 합리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밥 먹을 때는 게임 하지 마라'는 입장인데, 게임 하다 말고 끌려 나와서 밥을 먹어야 하는 아들 마음을 헤아리더라. 야단을 칠 때도 기본적으로 게임이 아이의 취미라는 것은 이해한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관점과 능력을 갖춘 게 대단했다.
만약 미래의 아이가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
우리 부부도 자녀의 게임 문제로 갈등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성향과 성격을 지녔는지다. 미래에 무엇을 고민하는지, 공부와 노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조정하는지 같은 것들도 봐야 한다. 마지막 셀프 인터뷰에도 같은 내용이 나와 있지만, 벌써부터 그런 걸 미리 정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을까?
김낙형 선배 딸은 게임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본다더라.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 아닌가? 미래의 아이가 나왔을 때는 어떤 세상일지 모를 일이다.
유튜브 이용 장애도 세계보건기구의 질병코드로 등재되는 날이 올까?
행동 장애의 틀에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선별적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유튜브는 구글이라는 회사 하나의 서비스이기도 하고 특정 대상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보는 서비스다. 공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임은 인기도 많은데 비수요층이 확실하니까 더 '까이는' 느낌이다. 책은 워낙 인기가 없으니 많이 본다고 아무도 안 까지 않나?
그래서 말인데 책은 좀 팔렸나?
크라우드펀딩을 제외하고는 내가 5권, 남편이 5권 정도 팔았다. 다른 책방에도 유통해야 하는데 이 책은 독립서점 감성하고는 안 맞는 거 같아서 인터넷 서점에만 유통하려고 준비 중이다. 인터넷 서점에 유통하려면 인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주민센터에 가기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웃음)
원래는 자녀의 게임 문제로 골치가 아픈 부모를 타겟으로 썼다. 그렇지만 게이머들도 재밌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자녀의 게임 문제로 고민 중인 부모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자녀의 게임을 막지 않도록 바뀔 수 있을까?
콘텐츠가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을까? 사실 그런 고민을 가진 부모를 목표로 책을 썼지만, 그들 생각에 균열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책을 읽은 학부모를 만났다. 독서 모임도 하며 책방에 자주 오가는 손님인데, 초등학생 4학년과 1학년의 엄마다. 이 책을 사가더니 읽고 나서 하는 말이 "이런 사람들도 있지만, 이 사례들은 모두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 이야기"라더라.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조절력이 없으니까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이 책으로 자녀가 게임을 하지 않길 원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고치는 것을 어려울 수도 있다. 그 학부모 말을 들어보니 아이들에게 말 잘 듣는 조건으로 게임을 시켜주면 말을 엄청나게 잘 듣는단다. 게임이 보상으로는 확실하게 작용하는 거 같고, 또 부모도 게임이 그렇게 나쁜 보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바로 그런 점에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학부모가 조절력을 가진 사람들이 잘 지낸다는 사실은 알지 않았나? 그래서 직접 게이머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취재한 인터뷰집이 고맙다.
게임은 절대악이나 절대선 같은 극단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 서로의 생각이 절대로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합리적인 선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자기의 생각에만 갇혀있지 말고 객관적인 팩트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본인이 정리한 인터뷰집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여성 게이머와 모바일 게임 유저의 목소리를 좀 더 비중 있게 담지 못했다. 그밖엔 독자 리뷰를 좀 더 들어봐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인 남편에게 한 마디, 그리고 독자에게 한 마디씩 부탁한다.
먼저 남편에게. 지금도 열심히 회사 동료들에게 책을 팔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게임 즐기는 건 상관없다. 그런데 나랑 운동 좀 하자. (웃음)
디스이즈게임 독자에게. 게임 좀 해보셨다면 이 책 읽으면서 공감할 포인트가 무지 많을 거다. 주변 사람들에게 게임의 긍정적 측면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근거도 많이 담았다. 게임업계에서 일하고픈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터뷰도 두 편이나 실렸다.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아니, 제 남편이 게임중독이라고요?> (구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