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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가 괴담을 이렇게 좋아했던가? '도시전설 해체센터'

추리가 얕아도 인물이 매력적이면 서사에 저절로 빠져든다

김승준(음주도치) 2025-03-07 16:46:17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소문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그게 진실이든, 진실을 덮기 위해 만든 거짓이든,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허상이든,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삶의 형태가 바뀌어버리기도 한다.


오컬트 추리 게임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일관된 주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 도시 괴담, SNS를 통해 퍼지는 입소문 모두 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이를 묘사하는 방식도 그러하지만, 소문은 그 자체로 매우 '공포'(호러)에 가까운 결과를 자아낸다. '오컬트', '괴담'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현실 속 실제 사건들이 많이 연상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다.


추리 게임으로서의 매력이 다소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기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픽셀 그래픽 안에서 이 정도 개성 있는 아트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고, 주인공 일행 외에도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어, 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말하는 기이한 사건에 대해 저절로 몰입하게 된다.


게임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상이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을 상호작용과 함께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이만한 웰메이드 타이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걸출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10~15시간에 달하는 플레이타임 끝에 당신이 마주할 '진실'은 분명 기대 이상일 테니,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주저 말고 이 타이틀을 플레이해보시길 적극 권장한다. 



도시전설 해체센터
출시일: 2025-02-13
개발사: 하카바분코
유통사: 슈에이샤 게임즈
플랫폼: PC(Steam), PS5, 닌텐도 스위치
가격: 19,500원
장르명: 오컬트, 추리, 어드벤처, 비주얼노벨
리뷰 버전: 닌텐도 스위치
리뷰 빌드: 정식 출시 버전


# 아무 것도 몰라도 좋아...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소문과 괴담이 핵심 소재인 작품인 만큼, 이야기를 듣고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는 비단 플레이어의 경험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천한빛'의 행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추리의 전문가도, 괴담에 대해 잘 아는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퍼즐을 모아줄 수 있는 건 주인공 단 명뿐이기도 하다. 무지(無知)하기 때문에 백지 상태에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달까.


게임의 스토리는 주인공 '천한빛'이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센터장 '빈차하'에게 빚을 지게 되면서, 센터의 조사원이 되어 빚을 갚아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천한빛에게는 '염시'라는 초능력이 있는데, 이전에 그 공간에 다녀간 인물의 행적과 사념을 시각화해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센터장 빈차하는 한빛의 이런 능력에 흥미를 가지며, 센터에 들어오는 기이한 의뢰를 한빛에게 조사하도록 맡긴다.


센터장 빈차하는 휠체어에 몸을 의존하는 상태라서,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지하에만 머무르고 있다. 대신 그가 가진 초능력인 '천리안'을 이용해 멀리서도 한빛의 행적을 지켜보며 중요한 순간에는 전화를 거는 방식 등으로 함께 추리를 이어가 주는 든든한 조력자다. 한빛은 문제를 파헤치는 측면에서도 오컬트 괴담에 대한 지식의 깊이에서도 모두 풋내기에 가깝지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빈차하 덕에 사건의 미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인 '재스민'이 함께 한다. 그녀의 본명은 지수민으로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또 다른 조사원이다. 한빛과 함께 행동하면서 사건 현장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게 돕기도 하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용의자를 응징해주기도 한다. 한빛의 성격이 순수하고 귀여운 새내기처럼 그려지는 반면, 재스민은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면모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세 인물이 '괴담'과 '소문'을 파헤치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 그 자체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개별 인물의 성격이 특히 강조된 게임인 만큼, 말투와 말맛 또한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데,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대사나 스토리 뿐만 아니라 추리 전개에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로컬라이징을 보여줬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이게 일본 인디 게임이 맞나 의심하게 될 정도의 번역 수준이다. 


도시전설 해체센터 센터장 빈차하를 도와 주인공 천한빛은 괴담에 숨겨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염시'라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주인공. 마치 유령이나 괴물을 보는 것처럼 표현된다.


재스민(지수민)과 함께 SNS 속 소문에서 힌트를 얻어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주인공 '한빛'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현장에서 직접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증거를 수집하며 '염시'로 과거의 흔적과 교차 대조하는 방식. SNS에 올라오는 괴담과 소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반응하고 있는지, 사건의 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내는 방식.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연결해 작은 매듭을 짓다가, 끝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해체'하는 마무리로 이어지게 된다.


초능력과 추리의 조합 그리고 추리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동안의 증거를 하나로 연결시키며 해결(해체)하는 방식은 국산 추리 게임 <스테퍼 케이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노파심에 미리 말하자면 두 게임이 추리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스테퍼 케이스>는 증거와 증언, 의심이 가는 지점까지 모두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사고로 바라봐야 하는 반면,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공백을 채워가며 하나의 완결된 '문장'을 완성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 '문장'은, 한빛이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정보+추론과도 맞아 떨어져야 하지만, 문법적으로도 어색하지 않은 하나의 완결된 문장이 되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굉장히 섬세한 번역이 요구되는데,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전례 없는 수준의 번역 퀄리티를 보여줬다. 특정 구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인게임 텍스트 전체의 번역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양의 대사를 읽는 과정에서도 매끄러운 가독성을 유지했다.


추리와 진행에서 꼭 읽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활용되는 어휘나 문법도 
한국어를 매우 잘 아는 번역가가 작업한 게 티나 날 정도고


굳이 읽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 메모나 괴담들도 텍스트 수준이 뛰어났다.

하나씩 퍼즐이 맞춰져 가는 과정을 연출로 보여주는 방식도 좋은 편이다.


# 얕은 수심에도 진한 피가 고일 수 있다

아무래도 추리물을 많이 봐왔거나, 추리 게임을 많이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도시전설 해체센터>를 플레이하는 동안에도 자연스레 장르의 선배 격인 작품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역전재판>, <단간론파> 등의 작품을 생각하며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추리를 논하면, 커피에 물 탄 맛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트릭도 많이 복잡하지 않을 뿐더러, 추리를 틀리는 것에 페널티도 없고, 뛰어난 현지화 덕에 곳곳에 숨겨둔 암시나 힌트도 눈에 너무 잘 들어온다.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재밌다는 것이다. 보통 추리 게임에서 머리 쓰는 맛을 덜어내면 긴장감까지 함께 증발하기 마련인데,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확연히 달랐다. 한빛과 재스민, 빈차하의 이야기 외에도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별 서사, 큰 줄기를 끌어가는 메인 스토리까지 모두 매력적이다. '궁금하게 만든다'는 본질을 놓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기본적인 플레이 진행은 <역전재판> 디렉터 타쿠미 슈가 만들었던 <고스트 트릭>의 구성과 가장 흡사했다. 염시를 사용한 관점과 아닌 때를 넘나들며 인물, 사물을 반복해서 조사하는 과정이 중심에 있다. 여기서 <도시전설 해체센터>가 특히 잘 살린 매력은 '매력적인 주제나 인물을 적절한 때에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엔 '미지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배치하고 있는 점 또한 눈에 띈다.


게임의 재미와 분위기의 7할 이상은 아트가 이끌고 있다. 개발사 하카바분코가 자신들을 소개할 때도 '픽셀 아트로 참신한 표현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 명시할 정도다. 실제 인게임에는 정말 다양한 아트 연출이 등장하는데, 스토리와 함께 이 공포스러운 순간들을 직접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재미만 해도 19,500원 이상의 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 순간들을 남기고 싶어 저절로 스크린샷을 계속 찍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러와 미스터리의 중간 지점을 절묘하게 잘 파고들고 있다.
무섭다는 감각보다는 긴장감을 적절히 준다는 느낌에 가까웠던 호러 요소들이었다.

일부 루즈하다 느껴질 수 있는 구간도 있었으나, 아트와 스토리가 멱살 잡고 이끌어간다.


내용을 직접 따라가다 보면 이 인물들 하나하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에 플레이한 픽셀 기반 아트 중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한 장만 더 감상하자.



# 엔딩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구매 전에 스팀 리뷰 등을 살펴보신 분이라면, 엔딩까지 꼭 보라는 말을 하는 유저들이 유독 많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기자 또한 같은 말을 해드릴 수밖에 없다. 엔딩이 이 게임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예언의 카드 '아르카나', 수많은 인터넷 괴담 안에서도 유독 많이 언급되고 추종되는 '그레이트 리셋',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나올 때 매번 언급되는 의문의 인물 '한천빛'. 모든 실마리는 종국에 명쾌하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아주 멋드러지게 풀리게 된다. 


파격적인 결말을 마주하고 나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된다. 기자처럼 인물의 매력에 이미 흠뻑 빠져버린 상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배급사 슈에이샤 게임즈 또한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인물과 이야기의 확장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 출시와 동시에 단편 외전 코믹스를 소년 점프 플러스를 통해 무료로 공개하고, 오디오 드라마 제작도 확정지었다. 또한 4월부터는 월간 잡지 리본을 통해 <도시전설 해체센터 패러렐 파일>이라는 코믹스 또한 연재될 예정이다.


오랜만에 가슴 설레며 밤잠을 설치며 플레이한 타이틀 <도시전설 해체센터>를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꼭 한 번 플레이해보시길.


미스터리 호러 추리물 안에서 심장이 뛰는 경험을 하고 싶은가

망설일 필요가 없다.

당신도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조사원이 되어 이 이야기의 진상에 다가가보길 적극 추천한다.


당신이 상상한 결말과 동일할지 한 번 비교해보시길.
도시전설 해체센터
8.4  점
한줄평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호러와 괴담, 픽셀 아트까지. 이 중 하나라도 좋아한다면 꼭 해보시길 추천한다.
장점
-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마성의 캐릭터들 
- 엔딩 하나 보기 위해 달려봐도 좋을 메인 스토리 
- 국산 게임보다 더 뛰어난 한국어 현지화 수준 
-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픽셀 아트 
-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해준 호러, 괴담 요소
단점
- 추리의 깊이는 얕은 편 
- 사람에 따라 일부 에피소드는 루즈하다 느낄 수 있음 
- 과한 친절은 때론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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