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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책] 사그라든 P2E 열풍,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이유

혁신은 멀고, 폰지는 가깝다! 블록체인 그림자 들춘 '비이성적 암호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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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8-30 18:24:01
암호화폐 광풍이 불었을 때, 기자가 취재하는 게임 업계도 거세게 흔들렸다. 많은 게임사 임원들이 블록체인 경제가 게임의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관련 기자회견과 콘퍼런스가 줄곧 열리고, 화이트페이퍼(백서)가 공유되고, 몇몇 게임이 실제로 출시되기도 했다.

기자의 짧은 커리어를 통틀어서 가장 읽기 어려웠던 바람이 바로 블록체인 게임과 P2E 열풍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바람은 잠잠하다. 블록체인게임을 만들어서 나스닥에 상장하겠다던 게임사는 소식이 끊겼고, 자신의 월급으로 자사 가상자산을 구매하던 상장사 대표 출신의 기업인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기업인은 가지고 있던 회사 지분을 전부 매도했다.

2024년 8월, 블록체인게임이나 P2E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90% 이상 줄어들었다. 기자는 매일 관련 보도자료를 체크하고 있는데, 3년 전 하루에만 수십 건씩 오던 NFT, 블록체인, P2E 관련 보도자료는 지금 하루에 겨우 한 건 정도 오고 있다.

'웹3게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엑시 인피니티>의 접속자는 고점 대비 90% 이상 감소했고, 이 게임에 쓰이는 유틸리티 토큰 '러브 포션'은 해킹 사태 이후 고점 대비 99% 폭락했다. 우후죽순 생겨나던 관련 프로젝트도 십중팔구 '피봇'되어 눈여겨 볼 만한 국내 신작은 <메이플스토리 N>과 <레전드 오브 이미르 글로벌> 정도가 남았다.




# 구속된 '뽀글이'와 한국의 천재... 암호화폐 시장의 그림자

<비이성적 암호화폐>(원제 'Number Go UP', 제크 포크스 지음, 장진영 옮김, RHK)는 블룸버그의 탐사전문 기자 제크 포크스가 2년 간 가상자산 시장의 어두운 단면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포크스는 이탈리아, 바하마, 필리핀, 캄보디아 등 세계를 누비며 참여하면 "모두가 돈을 번다"고 선전하는 이들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몰락을 취재했다.

그는 '뽀글이'로 국내에 알려졌던 샘 뱅크먼-프리드와 그의 거래소 FTX의 몰락을 중심으로 여러 존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FTX는 고객의 자금을 빼돌려 계열사 알라메다리서치의 빚을 갚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자금 유동성 의혹이 불거졌고, 이에 뱅크런이 발생하자 순식간에 파산에 이르렀다. 천재 또는 차세대 리더로 불리던 뱅크먼-프리드는 징역 25년 형을 받았다.

책에는 한국의 '천재'였던 '루나' 권도형의 몰락과, 셀시어스, 보이저, 쓰리애로우즈 등 암호화폐 업계에서 유명했던 이름들의 파산이 담겨있다. 그가 FTX만큼 집중적으로 추적했던 '스테이블코인' 테더코인은 살아남았지만, 저자는 아직도 '테더'의 대금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으며, 어떻게 미화와 연결되어 있는지 오리무중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취재 중 테더의 공동 창립자이자 초창기 블록체인 투자자인 브룩 피어스를 인터뷰했다. 그는 아역배우 출신으로 2001년 온라인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설립해 큰 돈을 발았다. 연 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자산가가 된 그는 2,000만 달러를 순이익을 올리고 퇴사, 이후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어 스테이블코인 테더를 만든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게이머에게는 '쌀먹'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온라인아이템 거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빈부격차를 거론했다. "특히 가난한 국가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취업의 기회"였다며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서, 괴물을 없애고, 가상의 황금을 얻고, 그것을 지름길을 원하는 부유한 국가의 게이머들에게 진짜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러한 게임플레이는 '작업장'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2015년 경찰에 덜미를 잡힌 한 게임 작업장.

# 김정은 미사일 실험에 낭비된 <엑시인피니티> 게임머니

이런 모습은 <엑시인피니티> 열풍 때에도 반복됐다. 책의 13장에는 <엑시 인피니티>에 빠졌던 필리핀인들과, 그들의 좌절이 소개되어 있다.

캐릭터 3마리로 팀을 구성해 다른 플레이어와 맞서는 이 게임은 암호화폐로 형형색색의 캐릭터를 구매하며 강해지고, 게임의 결과물을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다. 베트남의 스타트업 '스카이마비스'는 이 게임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그들을 스타로 만든 것은 코로나19 통제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게임에 몰려든 빈국의 서민들이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암호화폐 산업 관계자들은 <엑시 인피니티> 열풍을 주목"했다. "그들은 그 열풍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평하거나 그 돈이 전부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았다. 대신 암호화폐가 미래라는 것을 검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암호화폐는 투자(또는 투기) 이외에는 어떠한 효용이 있지 않았는데, 이 게임으로 인해 비로소 효용이 발견됐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환호했던 것이다.

필리핀의 플레이어들은 중개인에게 암호화폐를 맡겼고, 중개인들은 '스무스러브포션'을 '테더'로 바꾸어 거래소에서 돈을 만들었다. FTX와 샘 뱅크먼-프리드는 <엑시 인피니티> 게임 캐릭터의 명명권을 구매했고, 한 투자가는 "동남아시아의 아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파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21년 여름부터 게임 자산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고, 2022년 2월에는 개당 1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저자는 이렇게 분노한다. ― "암호화폐 관계자들과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필리핀인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포켓몬> 싸구려 모조품을 기반으로 형성된 (중략) 거품을 노동의 미래라고 홍보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의 해커들은 <엑시인피니티> 거래소를 해킹해 6억 달러 상당의 스테이블코인과 테더를 해킹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이 해킹 사건으로 김정은이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대신, <엑시 인피니티>는 그들이 평생 모은 돈을 독재자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흘러 들어가게 했다"고 꼬집었다.

<엑시 인피니티>는 필리핀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누군가 배를 불릴 동안 다른 누군가는 게임에 쓴 손실을 복구하지 못했다. (출처: PLAY-TO-EARN 유튜브)

# 디지털세계의 방향 제시한 게임, 블록체인 사업과도 깊은 고리 있지만...

<비이성적 암호화폐>는 암호화폐 업계의 이곳저곳을 속속 들여다본다. 테더에서 루나, 루나에서 FTX, FTX에서 <엑시 인피니티>, 또 BAYC NFT로 퍼져 나가는 여정은 추리소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업계가 로맨스 스캠과 인신매매의 지경에 도달하는 순간, 재미는 공포로 변한다.

그리고 게임은 <비이성적 암호화폐>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샘 뱅크먼-프리드는 게이밍체어에서 <스토리북 브롤>(오토체스형 게임. 이 게임에 푹 빠진 뱅크먼-프리드는 개발사 굿럭게임즈를 인수하기도 했다)을 즐긴다. 뱅크먼-프리드 이외에 책에 등장하는 많은 취재원들이 게임 개발 및 서비스에 몸을 담은 이력이 있다.

게임, 특히 온라인게임은 수십 년 전부터 디지털 세계에서 유저 사이의 경제활동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등장한다. 블록체인 경제가 도입한 게임이 우후죽순 나오게 된 배경도 이러한 영향에 있다. 반대로 온라인게임을 주로 즐겼던 한국의 게이머들의 (법적 제약과 무관하게) P2E에 대해서 '이미 하던 일'이라고 냉소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테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계정 귀속 아이템 '소울바운드'에서 영향을 받은 토큰 SBT를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 바 있다. NFT처럼 고유성을 가지지만, 발행된 후에는 타인에게 주거나 판매할 수 없고, 내 전자지갑에 귀속되는 구조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없으므로) 블록체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부테린이 SBT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SBT는 조용하다. <캣티즌> 등 새로 등장한 P2E게임에서도 이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는 500페이지 넘는 <비이성적 암호화폐>에서 줄곧 등장하는 "쉽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거래 불가 아이템'에서 따온 SBT가 채워줄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국내 주요 게임사들도 우후죽순 블록체인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계획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소수다. 사진은 코리아블록체인위크 2022.

# 혁신은 멀고, 폰지는 가깝다

혁신으로 등장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널리 퍼진지도 십 년이 넘게 흘렀다. 엘살바도르의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는 호기롭게 비트코인을 기축통화로 선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저자가 찾은 엘살바도르에서는 결제할 때 비트코인을 쓸 수 없었다.

'기술의 발전 사이클에는 오르내림이 있다'고 말하거나, '붉은깃발법'의 예를 들며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기득권층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요새 인공지능을 논하는 자리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멋진 '체인'을 맺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앞서 느껴지는 이들의 정서란 '남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버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러한 문제적 행태를 우리는 러그풀, 또는 폰지 사기라고 불러왔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급격한 상승과 충격적인 하락의 짧고 굵은 역사가 <비이성적 암호화폐>에는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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