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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에 충성경쟁 문화? "지금의 엔씨소프트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엔씨 노동조합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 인터뷰, 전 직원 4,700명 중 노조원 1,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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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3-04-19 18:00:22
우주정복. 

거창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한때 한국 굴지의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의 캐치프레이즈로 쓰였다. 2013년, 엔씨소프트는 채용박람회를 열고 "우주정복은 회사의 정신으로 진취적인 도전이 담긴 뜻"이라고 이야기했다. 웹툰과 회사 홍보물이 게재되는 공식 블로그 이름도 우주정복이었다.

2018년 신입공채 채용 공고 이후부터 우주정복이라는 단어는 엔씨소프트에서 자취를 조금씩 감추었다. 이를 대체한 것은 '즐거움으로 연결된 새로운 세상'이라는 문구다. 공식 블로그의 이름도 '엔씨 플레이'로 바뀌었다.

 

'우주정복'이라는 슬로건은 2019년부터 사용하지 않는 문구가 되었다.
물론 기업의 슬로건 등은 시기에 따라서 교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노조가 우주정복을 되살린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언적인 성격의 문구는 큰 상관없다는 듯이 회사의 매출지표는 매년 뛰어올랐다. 2022년, '리니지 3형제'를 위시한 엔씨소프트는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연매출 2조 5718억 원. 영업이익은 5,590억 원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는 우주 대신 MMORPG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더 이상 공식 캐치프레이즈로 쓰이지 않는 우주정복이라는 이름을, 이제는 엔씨소프트 노동자들이 쓰고 있다. 4월 10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는 엔씨소프트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고 발표했다. 그간 판교에 뜬 소문처럼 전해지던 엔씨소프트의 노동조합 결성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자체 투표를 거쳐 노동조합의 별칭을 '우주정복'으로 결정했다. 과거 회사가 사용했던 슬로건을, 노동자들이 다시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그 뜻도 새로 정립했다. 17일, 노조 결성의 '총대'를 진 송가람 지회장을 만났다.

 

17일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 선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

 


 

Q. 디스이즈게임: 엔씨소프트 직원들끼리 몇 차례 노동조합을 준비했다가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나?

A.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 그간 블라인드에서 '엔씨소프트도 노조를 하자'는 말은 많이 나왔다.​ 내가 아는 것만 3~4번 정도는 엎어졌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우르르 뭉쳤는데 '1번'(책임자)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걸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러다가 영영 안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다. 수백 명 규모의 단톡방에서 노조가 세워졌으니, 회사에서도 움직임을 알았을 것이다. 

 
Q. 엔씨소프트에는 언제 입사했나?

A. 2021년에 입사해 <리니지2M> 캠프에서 콘텐츠 기획을 맡고 있다. 2005년 한빛소프트에서 일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게임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업계에서 워낙 영세한 곳이 많다 보니 회사 자체가 존속이 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이야소프트라는 곳에서 <루나온라인>을 4년 동안 담당했고, 엔씨소프트에 합류하기 직전에는 조이시티에서 일했다. 

 
Q. 온라인에서는 우주정복이 민주노총을 선택한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결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A.​ 게임업계의 노동조합 결성률은 매우 낮다. 사실 업계 전체의 규모를 생각하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개발자 중에 노조 활동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노조에 '노'자도 모르고 하루 종일 코드만 보는 사람들인데(웃음).

몇 차례나 회사 내에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는데, 게임만 만들던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먼저 노조를 만든 이웃집(넥슨, 스마일게이트, 웹젠, 엑스엘게임즈)에 찾아갔다. 게임회사 사람들이 같은 게임회사 마음을 제일 잘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먼저 노동조합을 결성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주노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기사를 읽었는데, 어느 정도는 확증편향이 있는 것 같다.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도매금으로 전체를 넘겨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모두 그런 쪽'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이 남아있겠나?

 

넥슨 스타트포인트 등 판교 게임 노동조합들이 엔씨의 노조 결성을 도왔다.

 

# "오늘날 엔씨소프트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에 빠져있다"

Q. 설립선언문에서 "엔씨소프트의 핵심 가치인 도전정신, 열정, 진정성이 훼손됐다"라고 규정했다. 도전정신, 열정, 진정성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훼손됐나?

A.​​ 엔씨소프트만의 가치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게임 개발이라는 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창조적인 것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밖에서 볼 때 게임산업이라고 하면 젊거나 창의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실제 내부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엔씨소프트는 핵심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에 빠져있다. 

 
Q. 군대식 상명하복?

A. 우리(우주정복)가 느끼기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하나하나의 사건들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큰 맥락에서 이야기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로 볼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정도야 한 번쯤은'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엔씨소프트는 그것(군대식 상명하복)이 문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Q. 구체적인 사례를 말한다면?

A. 아무래도 조직문화가 경직되면 의견 개진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마다 공기가 무겁다. 밑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꺼낼 수가 없다.

출퇴근할 때마다 항상 장급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인사를 하고 자기 자리로 가야 한다. 예전이야 그런 회사가 훨씬 많았지만, 2023년의 IT 기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메신저로 '왜 인사를 안 하냐'라는 말이 날아오기도 한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된다. ​팀바팀(팀 바이 팀, team by team)은 감안해야겠지만,​ 이런 문화를 고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시설물관리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임원들은 임원실에서 흡연을 한다는 증언이 보고됐다. 누군가 보고를 하러 임원실에 들어갔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는 것이다. 담배 심부름을 시킨다는 말도 있었다. (기자: 담배 심부름?) 이뿐 아니다. 당근마켓에 중고 거래를 심부름시키는 일도 보고됐다.

상급자가 물품 거래 일정을 잡아 놓은 뒤, 자기가 가지 않고 아래 직원을 보내는 것이다. 동사무소에 개인이 필요한 서류를 떼오라고 한 적도 있었다. 비서 직군이 아니라 다른 일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이런 것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지금 엔씨소프트 일반 직원들은 과장, 차장 등 직책을 없앴는데, 누군가 임원으로 승진할 때면 그 밑의 실장, 팀장들이 축하 선물을 하자며 '자발적으로' 돈을 걷는다. 1, 2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씩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고가의 선물을 하곤 한다.

 
Q. 사내에 충성 경쟁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A. 그렇다. 이런 문제를 어디다 신고하기도 애매하니까 직원들 입장에서 참아왔던 것이다. 군대에서 선임이 'PX 가서 담배 사 오라'고 지시했을 때 면전에서 '싫다'고 답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안 된다'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구조다. 법적으로 바로 문제가 되는 수준이라면 노동청에 고발하면 되는 건데, 애매하니까, 긁어버리면(신고하면) 피곤해지니까 심부름 한 번 해주고 마는 것이다.

솔직히 갑질 아닌가? 이 사람이 회사에 온 이유는 따로 있는데. 물론 아까도 말했지만 팀바팀이 있고, 4,700명이나 일하는 회사다 보니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말도 많다. 그런데 그간 엔씨소프트에는 분명히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었다. 규모도 크고, 옆 팀 사정도 잘 모르니 이런 문제를 모르거나, 쉬쉬하는 일이 많다.

 
Q. 노조 출범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들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

A. ​앞으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준비 중이다. 관련 사례를 취합 중이며, 증언을 탄탄하게 확보해서 개선하려고 한다.

 
Q. 2021년 있었던 성희롱 문제도 언급한 사내 문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

A. 이 이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답변하기 어렵다. ​엔씨통이라는 고충 제보 및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있다. 부정이나 비리 고발 등 어떤 이야기를 다 해도 되고, 익명성과 보안이 절대 보장된다고 말한다.

제보자에게는 전혀 불이익이 없다고 하는데, 실제 사례를 보면 증거나 증인이 있어도 피해자가 징계를 요구해야만 징계를 진행하고, 누가 신고를 했는지 누가 징계를 요청했는지 가해자에게 다 공유가 된 일이 있었다. 해당 가해자는 잠깐 보직해임 당했으나 오래가지 않아 복직했고 피해자와 같은 팀에 계속 머물렀다.

 

2019년 사내 콘퍼런스 '엔씨소프트DP'에 모인 엔씨소프트 직원들.

 

# 조직률 20% 돌파... "전환배치 안전망"이 주요 교섭 과제

 

Q. 최대 주주인 김택진 대표와 그 가족이 회사를 이끄는 데엔 어떤 입장인가?

A. 우리 입장은 명백하다. 가족경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식선에서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임원은 계약직 아닌가? 임원이라는 위치 자체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직원이 안정적인 대신에 보상이 적다면, 임원은 성과로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100억이든, 200억이든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대신에 계약직인 이유는 성과에 대한 평가가 명확해야 한다. 보통 임원이라 하면 그래야 하는데, 엔씨소프트의 임원은 스탠다드에서 벗어난 것 같다.


Q. 그래서 돈 많이 벌지 않았나?

A. 지금 엔씨소프트에 70여 명의 미등기 임원이 있다. 이들이 모두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었는지 의문이다. 또 엔씨웨스트는 지난 몇 분기 동안 적자를 기록했고, 구조조정까지 거쳤다. 윤송이 CSO는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대표가 보너스를 많이 가져갔다고 노조를 설립한 게 아니다. 상식선에서 다시 생각을 해보자고 노조를 만든 것이다.


Q. 상후하박(위에는 후하고, 아래는 박함)이 개선되면, 가족경영도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인가?

A. 다른 회사 하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회사에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면야 누가 임원을 하든 상관없지 않나?

 
Q. 엔트리브 등 자회사 소속 조합원도 받고 있나?

A. 받고 있다. 그런데 자회사는 연락이 용이하지 않아서 홍보가 덜 된 상황이다. 관심이 있다면 연락을 주시라. 엔씨소프트서비스, ​엔씨아이티에스 등 자회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홍보를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Q. 4,700명의 임직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주정복에 가입했나?

A. 지난주 화요일에 700명 정도 가입했다. ​지금은 1,000명을 넘은 것으로 나온다. 조직률이 21%가 넘었다. 분위기는 좋다고 보고 있다. 과반 노조는 아니지만 사내 문화 때문에 눈치를 보는 분들이 많다. 노조를 설립했지만, 사무실도 생기고 교섭도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정되면 가입하겠다는 분들도 많다. 최초교섭 이후에 또 뛰어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Q. 자회사와도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엔씨소프트 비정규직도 가입을 받을 것인가?

A. 공시자료를 보면 계약직이 200명 정도 계시기 때문에 전체 수에 비하면 많지 않다. 가입은 모두 받고 있다. 당연히 그분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자회사 이야기도 했고, 사내 문화 이야기도 했는데, 일단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다. 특히나 비정규직 분들은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았으니까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Q. 사측과 교섭을 진행할 텐데 어떤 절차로 진행되나?

A. ​지난 10일 노동조합 설립을 발표했다. 그리고 화요일에 회사에 교섭하고 싶다는 공문을 보냈다. 노동법상 사측에서는 일주일 동안 또 다른 노동조합이 있는지 알아보는 공지를 내야 한다. 회사는 가장 큰 규모의 노조와 대화를 할 것이니, 다른 곳이 있으면 신고를 하라는 것이다. 그 절차가 마무리되면 회사와 교섭을 시작할 것이다.


Q. 만나서 가장 먼저 할 이야기는 무엇인가?

A. ​이미 회사와 만나서​ 본격적인 교섭 이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가 잘 돼야 노동조합도 의미가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금의 엔씨소프트는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임원과 직원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같은 곳을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자리를 보장받는 임원들이 있는 반면에,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드랍되면 전환 배치되어 살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장치를 조금 더 마련해준다고 해도 회사에 엄청난 타격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회사에 실력을 체크하고, 허들을 넘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프로젝트 드랍의 책임이 직원 개인에게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장이 가자는 대로 노를 저었는데, 선장은 배를 바꿔 타고 선원은 갈 길을 잃은 경우가 너무 많다. 안전망을 바란다는 것이 회사와의 교섭 때 먼저 나눌 이야기 중에 하나다.

 


# 지금 엔씨소프트는 어떻게 일하고 있나?

Q. 엔씨소프트의 권고사직, 대기발령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A. ​​프로젝트가 드랍되면 처음에는 부서 이동을 위한 길을 안내하고는 있다. 프로젝트 규모가 크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그만큼 많은 자리를 만들어 놓지는 않는다. 결국 프로젝트가 드랍되면 일부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남아있게 된다. 그때 회사에서는 월급의 몇 개월 정도의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거나, 데브팀(대기발령 부서)에 가서 기다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실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창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 몇 달 치 월급 받는다고 해도 이후에 재취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브팀에 남는 분들이 종종 있다. 지금도 열 분 남짓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다른 회사에 가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준다. 인사팀에서는 사담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실력이 없어서 다른 팀에 못 가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다. 이럴 때 멘탈이 무너지는 것이다.

 
Q.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프로젝트 드랍에 따른 변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 같은데.

A. 넥슨에서도 리부트팀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노조가 생기고 개선이 됐다. 직무에 맞으면 다른 팀에 자리 유무와 상관없이 전환배치를 ​​​진행한다.

프로젝트가 사라지면, 내 부서의 내 TO가 없어지는 일이 많은데, 엔씨소프트에서도 데브팀에 가면 TO가 사라진다. 애초에 뽑을 때는 내 자리를 포함한 값의 채용을 진행했는데, 프로젝트가 사라지면 내 자리도 같이 사라지는 셈이다. 빈자리를 찾아서 들어가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 개발자는 주차 관리 업무를 권유받기도 했다.

 
Q. 그것은 불법 아닌가?

A. 그 자리에 가라고 지시하면 불법인데, 대상자에게 '회사 내 이런 자리도 있다'라고 권유하면 불법은 아니다. '고민할 기회를 드렸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다. 그런데 코드를 봐온 사람에게 주차 관리를 하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 모멸적이지 않은가? 

회사도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목적이야 뻔하다. 강제한 적이 없으니까,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퇴사하신 분들 중에 상처를 받고 당시 대화 녹음본을 제보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Q. 연봉 '통보' 과정도 선입금 방식이라고 들었다.

A. ​나도 게임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연봉을 통보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원래 협상 시즌이 되면 팀장급이 들어와서 '올해 총 300만 원 정도 오를 것 같은데 괜찮냐?'라는 식으로 면담하고, 승낙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이 있지 않나? 근데 엔씨소프트는 25일 월급날 자정 무렵에 돈부터 들어온다. 그게 들어오면 당장 몇 퍼센트가 올랐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는 명세서는 출근하고 회사에 로그인하면 급여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그때 온라인 서명을 하면서 보게 된다. 얼마나 오를 건지, 이의를 제기할 건지, 나의 연봉에 대한 평가가 어떤 분위기인지 감지할 겨를이 없이 통보되고 있다. 막상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 얼마나 올려주는지 알 수가 없이 깜깜이다.


Q. 선언문에 직원들이 임원의 '아인하사드'로 전락했다며 "불법적인 연장근로에 동원"됐다고 썼다. 어떤 연장근로가 이루어지고 있나?

A.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사무실 들어갈 때 ​사원증을 찍고, 컴퓨터에 앉아서 로그인할 때 비로소 출근이 기록된다. 인증이 2번 이루어지는 셈인데, 크런치 모드에 돌입하면 업무량이 엄청나게 증가하니까, 근로 시간을 기록되지 않게 해 놓고 이루어지는 연장근로가 사내에 공공연하다. 크런치 모드도 하면서 법정 근무시간을 지키기 위해 일을 좀 하다가 출근 버튼을 누른다던가, 먼저 퇴근 버튼을 눌러놓고 1~2시간 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회사 컴퓨터에서는 시스템상으로 법정 근로 시간을 넘어가지 않도록 되어있다. 그 시간이 임박하면 '잔여 시간이 얼마나 남았으니 근무를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인사팀으로부터 날아온다. 이후에도 계속 일하면 전화가 오고, 인사팀이 직접 사무실로 오기도 한다. '퇴근 버튼을 누르고 작업하라'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사팀으로부터 날아오는 경고가 누적되면, 실장급은 자기 평가가 안 좋아지니까 팀 분위기에 영향이 간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퇴근 버튼을 누르고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것이다. 사람을 더 뽑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많은 직원들이 가짜로 출퇴근을 기록하고 있다.
 

Q.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엔씨소프트가 재택근무를 제일 안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전사간담회에서 '일론 머스크 발언'이 나오며 화제가 됐다.

A. 사측은 최대한 재택근무를 안 시켜주려고 했다.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할 거면 회사를 나가라'는 일론 머스크의 발언을 김택진 대표가 전 사원 앞에서 직접 인용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생산성이 더 좋다'라고만 말해도 충분히 이해할 텐데 '싫으면 나가라'라고 이해되는 발언을 직접 해버리니 어안이 벙벙했다. 

내부에서는 당연히 동요했다. 회사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경제 상황이 어렵고, 회사도 어렵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는 있는데 그렇게까지 말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회사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행복한 회사"

 

Q. 오늘날 엔씨소프트와 <리니지> 시리즈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입장을 만드는 데 직원 책임이 있다고 보나?

A. 그것도 어떻게 보면 조직문화와 이어지는 이야기다. 조직문화가 그렇다 보니 창의적인 의견이 제시되기 힘들다. 간담회에서 '우리 회사도 창의적이고 신선한 게임을 만들어야지 않냐'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직원이 '조직문화가 경직돼서 이야기가 위로 안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임원이 '과연 그것이 조직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의견이 재미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느냐'라는 답을 했다. 그 직원이 특정한 재미에 대해 논한 적도 없는데, 그저 조직문화의 문제를 제기한 건데, 그 문제의 조직문화를 재확인하는 답변이 나왔다. 

그때 개인적으로 '이렇게나 직원 배려를 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그렇게까지 날카롭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문제 아닌가? 더구나 재미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임원분들이 추구하는 '재미'라는 것도 한쪽 영역에 치우쳐져 있다. 그분들 입장에선 정말 어떤 아이디어의 재미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고 말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재미의 범주가 특정한 성공 공식에 한정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재미라는 것은 정말 폭넓은 것 아닌가? 어떤 회사는 프로젝트의 실패를 기념하는 파티를 열기도 한다는데,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Q. 그래도 최근 <프로젝트 M>이나 <LLL>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 그런 행보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진정성 있는 프로젝트인지 고민이 된다. 그간 업계에 아무 내용물 없이 영상만 내놓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일시적인 내용인지, 힘을 실어서 진짜로 하는 건지 지켜봐야지 않을까?

 
Q. 지스타도 나온다고 하니 의지가 있는 듯하다.

A. 거의 8년 만의 복귀인데 기대를 하고 있다.


Q. 지금까지 계속 짓궂은 질문을 하고 있다. 마지막 짓궂은 질문이다.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는 것 정도면 '대감집 머슴' 아닌가? 아무리 봐도 업계 최상위에 해당하는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A. 그런 말 많이 듣는다. ​'귀족 노조... 억대 연봉 부족해 사탕 더 달라'라는 기사도 봤다. 그 기자의 생각은 존중한다.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거기에 직원 입장을 말씀해 드리자면, 엔씨소프트 평균 연봉이 1억이라고 하면, 대체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내 연봉 몇천만 원 누가 들고 갔지?"라고. (웃음)

지금 이야기되는 '평균연봉 1억'에는 '평균의 함정'이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등기 임원이 70여 명 있고, 부서별 편차도 크다. 보통 대형 프로젝트 하나에 150~200여명 정도가 업무를 본다. 2~3개의 잘 나가는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 대부분은 매우 적은 금액의 인센티브를 지급받고 있다.

과거에는 엔씨소프트에 전 사원 인센티브가 있기도 했지만, 요즘은 회사에 매출이 많이 나와도 관련 부서 위주로 인센티브를 받는다. 대박 나는 엔씨소프트 직원이 일부 있지만, 그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인할 때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인센티브를 거의 못 받은 사례들이 다수 제보되고 있다. 또, 같은 업무 평가 등급을 받아도 연봉 인상이나 인센티브 금액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도 확인되고 있다.  투명한 보상체계 확립을 바라는 이유다.


Q. 우주정복이라는 이름은 과거 엔씨소프트의 슬로건이었다. 이 노조의 별칭으로 쓴 배경은? 우주 먹튀를 잡으러 갈 건가?

A. 노동조합이란 결국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정할 때부터 조합 이름을 추천받았다. 그때 표를 많이 받은 이름이 '바츠해방전쟁', '웃는엔씨', 그리고 '우주정복'이었다. 그 안에서 결선투표를 거쳐 우주정복을 이름으로 결정했다.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를 붙잡아서 새로 정의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행복한 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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