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이 지난 9월 11일부터 12일까지 2일간 부산문화콘텐츠컴플렉스에서 열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 전시된 게임은 78종이다. 올해 국내에 열린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국내를 넘어 일본, 미국 등 해외의 인디게임 개발사들도 참여했다. 인디게임 개발자들은 컨퍼런스와 네트워크 파티를 통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됐고 게임 전시를 통해 인디게임 개발자와 부스를 찾은 관람객에게 자신의 게임을 소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됐다.
9월 중순,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핫스팟이 됐던 부산 해운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인디게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불편해도 이게 어디야. 그저 고마울 따름"
부산문화콘텐츠컴플렉스 3층에 시연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전시공간을 넘어 복도와 엘레베이터 옆에도 시연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좁은 복도에는 인파들로 북적거려 답답한 느낌을 안겨 준다. 각 부스마다 2개의 책상이 검은 테이블보에 쌓여 있고 게임을 시연할 수 있는 PC나 스마트폰들이 구비돼 있다.
많은 게임들을 선보이기 위해 전시공간에 부스를 최대한 밀어넣은 듯한 느낌이다. 시연대에 앉더라도 가방을 내려놓을 자리조차도 없다. 당연히 게임을 전시하는 개발자들도 앉을 공간이 없다. 시연자가 의자에 앉으면 전시자는 시연자 뒤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관람객들의 통행에 방해되기 일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PC게임 시연자들은 모두 헤드셋을 끼고 플레이한다는 것. 지스타에 등장했던 현란한 조명, 앰프 그리도 도우미마저 등장했다면 최대 인파를 기록하는 차이나조이의 관람 스트레스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환경이다.
전시된 게임들 중, 개발 초보 단계가 아닌, 베테랑의 손길이 느껴진 작품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기대보다 높았던 인디게임의 퀄리티에 참관객들의 발길이 멈췄고 게임을 플레이하던 참관객들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시연에 참여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오후부터 참관객이 많아지면서 행사장에서 움직이기에 많이 불편하다. 마치 서울에서 열린 동인 모임인 코믹월드에 온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가 만든 인디게임을 다른 이들에게 공개할 창구가 없었는데 이 행사를 통해 게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운 행사”라고 말했다.
부스에서는 전시 개발자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숫자를 정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스에 대기하는 한 명을 결정한 다음, 다른 이들은 자기가 플레이할 게임을 빠르게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라진다. 30분이나 1시간 간격으로 부스대기자들은 교체가 되고 다른 이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곳에서는 전시자와 시연자의 경계마저도 무너질 정도로 모든 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 ‘치킨 인디’의 전성시대, 인디 게임의 ‘격’을 높이다.
게임업계와 미디어 관계자들은 부산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에서 전시한 게임들의 퀄리티가 기대치 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산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에 참가한 개발자들은 학생 보다 전업 개발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록 사전 심사가 있었다지만 미완성 게임과 지루한 게임이 넘쳐나던 인디게임 시장에 꽤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 게임들이 자신의 그래픽과 게임성을 뽐내듯이 자랑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에 열린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서 기획을 맡은 인디게임 개발사 터틀크림의 박선용 대표는 높아진 인디게임의 퀄리티에 대해 ‘치킨 인디’라는 말을 꺼냈다. 요즈음 인디게임의 트렌드를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치킨 인디’는 게임 개발자의 최종 테크트리로 불리우는 ‘치킨집 사장’에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30-40대 개발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해 결국 목돈 들여 치킨집을 창업했으나 지금은 혼자 혹은 지인들과 함께 게임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개발도 어렵지 않다. 수십명이 2~3년 동안 개발하는 PC온라인게임과 달리, 스마트폰 게임은 혼자서도 충분히 게임을 만들어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 그리고 유니티와 언리얼, 하복 등 모바일게임 개발 엔진들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이전보다 더 손쉽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개발자들이 게임 개발에 욕심을 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선용 대표는 “이들은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풍부한데다가 젊은 개발자의 경우, 제작한 게임이 흥행에 실패했더라도 현업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자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업급여 등 경제적인 혜택을 받으면서 6개월~1년 정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개발하길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1인 개발 보다는 3~5인 개발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개발사의 대표들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 투자를 원하기도 하며 게임이 반드시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전 심사를 통해 선정된 게임들은 그래픽과 재미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 퍼블리셔, 인디게임에 고개를 향하다
현장을 방문한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100명이 훌쩍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넷마블, 네시삼십삼분, 웹젠, 트리니티 인터랙티브 등을 포함한 게임 아웃소싱 담당자들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만족스러운 얼굴 표정으로 인디 게임들을 열심히 플레이하면서 자사에서 서비스할만한 게임들을 고르고 있다.
이 행사의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는 웹젠의 김양훈 팀장은 “게임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좋다고 평가하고 있다. 게임 아이디어들이 좋은 게임들도 보인다. 다만 수익모델이 아쉬운 게임들도 있어 대형 개발사와 협업할 수 있는 게임들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업체들이 인디게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들 비슷하다. 게임 완성도가 이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대부분의 인디게임들은 투자나 퍼블리싱 계약이 전혀 체결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대형업체들과 쉽게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인디게임 개발사들은 연락하기도 힘들어 이전에 만나기도 힘들었다. 게임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왔는데 꽤 훌륭한 작품이 눈에 띈다. 사실상 물 반 고기 반에 낚시하러 온 느낌”이라며 전시 게임들을 높게 평가했다.
그동안 현실과의 금전적인 타협을 외면한 채 외길 인생을 고집해왔던 인디게임도 투자와 퍼블리싱란 단어에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진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자사 게임 경쟁력을 높이고 많은 이들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면 투자 뿐만 아니라 퍼블리싱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인디게임의 경계는 어디?, 엇갈린 시선의 2개의 컨퍼런스
이번 행사는 9월 11일에 컨퍼런스도 있었다. 그 중, 인디 게임에 대한 다른 시선을 모은 2개의 강연이 눈에 띄었다.
인디게임페스티벌(IGF) 의장인 켈리 월릭은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컨퍼런스에서 ‘인디의 모든 것’(All about Indies)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녀는 인디게임의 유통과 투자 방식이 달라졌으므로 이에 대한 개발사의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디게임을 소개하고 파트너사를 찾아주는 ’인디메가부스’의 대표인 켈리 월릭은 소수를 위한 게임보다는 다수를 위한 게임을 제작하는 게 게임 투자 뿐만 아니라 흥행에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인디게임의 과제 중 하나로 커뮤니티와 게임업계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배고픔’을 반 강요당했던 인디게임도 자본과의 분리에서도 그만큼 느슨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디게임의 인디는 ‘독립’이라는 뜻의 ‘인디펜던스’(Independence)의 약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인디게임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독립이라는 뜻은 맞지만 무엇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그 무엇에 대한 정의가 정해진 건 아니다. 자신이 혼자 독립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본, 다수 혹은 금기에 대한 독립 등 여러가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추구한다는 점이 바로 인디게임의 DNA로 손꼽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디게임들은 시장 흥행에 뜻을 굽히지 않는 게 인디게임 개발자로서의 우선 덕목으로 내세워지기도 했으며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게임들도 많아 ‘인디게임=배고픔’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오드원게임즈의 김영채 대표는 ‘이상한 사람들이 쏘아올린 작은 게임’이란 강연에서 자본과 시선에서 벗어나는 게임을 만들라고 말했다.
오드원게임즈가 개발한 생존형 샌드박스형 게임 <트리오브라이프>는 지난 5월 스팀을 통해 출시됐다. 이 게임은 출시된 지 일주일만에 동시접속자 2,300명, 매출 6억원을 달성, 2015년 인디게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단지 3명의 개발자로 글로벌 플랫폼에서 거둔 쾌거라는 점에서 오드원게임즈는 국내 인디게임 개발사들의 '워너비'(Wanna be)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서 김영채 대표는 "오드원게임즈도 처음에는 투자를 원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곳과 미팅했는데 모바일 플랫폼을 대응하지 못했고 일반인들이 즐겨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당했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받지 않고 직접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고 <트리오브라이프>의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그야말로 강제적으로 인디게임을 개발하게 된 셈이다.
김영채 대표는 안정된 수익모델을 고집하는 외부의 시선을 벗어나서 본인이 원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개발자 본인이 더 가치있는 것을 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나 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인디게임과 인디게임 행사, 화두를 남겨
2015년 부산에서 열린 인디게임의 행사는 '퍼블리싱', '펀드', '흥행' 등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인디게임의 행사에 지방 정부가 파격적으로 지원했다는 점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게임 개발사들에게 감히 언급될만한 단어들이 아니었다. 모바일게임을 제작하는 소규모 스타트업이 대규모로 등장하면서 '스타트업'과 '인디게임'과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인디게임에 대한 정의를 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모크놀을 연재하고 있는 김지인 그램퍼스 대표는 "인디게임 개발사들은 차기 타이틀을 개발하고 유통할 수 있는 자금을 현재 타이틀로 대체할 수 있는 개발 스튜디오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업도 이와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 개발관 등을 유지하는 전략도 인디게임 개발사가 가진 특혜이지만, 스타트업도 시장, 투자사, 외부 압력 등 특수 환경으로 인해 그런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회사들이 상당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인디커넥트페스티벌을 지원한 부산시는 행사 전날인 지난 10일 글로벌게임센터 개소식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