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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룩백] 자살을 막는 게임 '30일'...현실 담기 위해 발로 뛴 이유는

더브릭스게임즈 포스트모템 ② 처음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더브릭스(더브릭스) 2025-03-31 12:33:10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IG 룩백' 코너에서는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진 개발사들의 발자국을 톺아보며, 그들의 등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처음’이기에, 오직 그때만 가능한 행동과 감정이 있다. 비교할 대상이 없기에 발상은 자유롭고 기발하며, 과정은 언제나 새롭고 흥미롭다. 


물론 두 번째부터는 처음 느꼈던 그 짜릿함이 점차 희미해지고, 반복되는 과정에서는 지루함이, 몰입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목표가 눈앞에 보이고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며 우리에게 기분 좋은 흥분과 성취에 대한 기대감을 준다. 그렇게 도달한 목표는 '피드백'이라는 또 다른 보상으로 돌아오고, 이 보상은 우리를 다시 새로운 목표로 향하게 한다.


나에게 <30일>은 첫 장기 프로젝트이자 첫 인디 게임이며 첫 디렉터 경험이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첫 경험의 한복판에서 우리 팀이 어떤 방식으로 기획하고 협업했는지, 그리고 어떤 고민 속에서 완성까지 도달했는지를 돌아보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게임으로 자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가설로 무모하지만 패기 넘치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30일>이다. 큰 마케팅 비용 없이 국내 양대 마켓에서 누적 5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2022 대한민국 게임대상 굿게임상을 비롯한 여러 소셜 임팩트 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임팩트 양면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은 생명존중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되며, 교육 현장에서도 그 임팩트를 인정받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30일>의 개발 과정을 다시 꺼내어본다. 우리 팀이 선택한 고유의 제작 문화와 협업 스타일은 그저 그냥 결정된 것들이 아닌, 임팩트 게임 개발사로서의 개발관이 잘 반영된 것들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더브릭스게임즈가 어떤 게임사고, 어떤 자세로 게임을 만드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기고=더브릭스게임즈 이혜린 대표,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TIG룩백 더브릭스게임즈 포스트모템 5부작]
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왜 임팩트 게임인가 (바로가기)
② 자살을 막는 게임 '30일'...현실 담기 위해 발로 뛴 이유는 (현재 기사)
③, ④, ⑤ (주간 연재 중)


<30일>은 사망진단서에 예고된 미래를 막는 방식으로 게임이 전개된다.




# 적극적인 아이디어 제시가 필요했다

<30일>은 고시원 총무 유나가 되어 고시생 중 한 사람인 설아의 '자살'을 막는 내용의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누군가의 죽음 30일 전으로 돌아가면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상상에서 시작하여, 현실에서 벌어지는 죽음을 실제로 막기 위한 지식을 게임이라는 체험 미디어로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설아 및 다른 캐릭터들과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실적인 사건 및 관계를 중심으로 상호작용하고 대화하면서, 자살 예방을 위한 실천적 지식을 간접 경험을 통해 생생히 익힐 수 있다.


우리는 ‘임팩트 게임’, 즉 현실에 유용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했다. 정확히는, 게임 속에서 여러 자살 예방 상황을 미리 겪어보게 함으로써, 현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의 설득력과 깊이가 정말 중요했다. 게임 밖 현실에 적용될 수 있으려면, 게임 속 이야기가 되도록 현실에 가까워야 했고, 그것이 곧 우리 팀의 스토리 철학이었다.


<30일> 게임 안에는 여러 고증을 담기도 했지만, 현실의 이야기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환기하는 장치들도 많다.


하지만 팀원들의 거주지가 제각각인데다가 개발 중반에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만 하기도 했다. 늘 대면해서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개인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구조 속에서 팀이 스토리를 중심으로 동기화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서사, 공감하는 장면, 공유된 감정선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많은 스토리 회의를 했다. 소중한 회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나는 안건들을 미리 준비해 갔고, 팀원들은 그 안건에 깊이 있게 참여해 회의 시간이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회의는 서로 다른 직군이 작업의 결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토리를 기준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아트가 설계되고, 연출이 조정됐다. 기획자가 스토리를 작성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직군의 개발자가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즐겨 사용한 협업 방식 중 하나는 사내 공모전이었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의 소재, 팀 이름, 타이틀, 등장인물 이름 등 창작과 팀 운영의 여러 요소를 공모전을 통해 결정했다. 회의 전에 각자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고 회의를 통해 발표 -> 투표 -> 토론 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되었다. 상품은 ‘뿌듯함’과 ‘보람’뿐이었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참여했고, 그 덕분에 ‘더브릭스’라는 팀명과 ‘30일’이라는 타이틀, 등장인물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팀원들의 흔적과 추억이 남게 되었다.


'더브릭스'로 시작한 팀명은 법인을 설립하며 '더브릭스게임즈'가 되었다.


<30일>의 중심 소재인 고시원과 공시생도 그렇게 정해졌다. 당시 우리는 모두 20대 초중반이었고,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공시생 자살 문제는 당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누구나 수능을 치러본 경험이 있기에 수험생의 감정에 공감하기도 쉬웠다. 


아티스트 팀원이 제안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장수 공시생의 자살을 막는 이야기’는 전원 만장일치로 선택되었고, 그것이 <30일>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우리가 가장 진심을 담아 만들 수 있는 이야기라는 확신이 있었다.


회의에서 시작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기획이 되고, 시스템이 되고, 게임이 되었다. 그 과정은 누구 한 명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걸 전부 게임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상상이야말로 <30일>이라는 게임의 출발점이자, 더브릭스 팀만의 방식이었다.


기획 당시 팀원들이 함께 만든 아이디어 제안 문서


심지어 회의 중 재미 삼아 언급했던 요소들까지 하나하나 살려 넣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보카톡’(인게임 메신저)인데, 아보카톡 속 캐릭터들의 프로필 사진은 아티스트 뿐 아니라 사운드 디자이너, 기획자, 프로그래머 모두가 참여해 현실성을 살려 재미있게 그려 넣었다. 또한 경상도와 충청도 출신의 등장인물의 사투리를 팀원들이 한 인물씩 도맡아서 말투를 검수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도 했다.


<30일> 게임 내 아보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만들기 위해 모든 제작진들이 그림을 그렸다.

대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함께 만든 대사들이다.



# 현실을 담기 위해 우리가 발로 뛴 이유


이렇게 팀원들이 머리를 모아 게임 내용을 채워나갔지만, 모든 것을 내부의 아이디어만으로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30일>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깊이 있게 개입하는 경험을 다루고, 이를 통해 현실에서도 같은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임팩트 게임이다. 이렇게 현실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자료조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가 진행한 조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공개 자료 수집

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과 설명, 자살 예방법, 고시원 환경, 공시생 생활 관련 인터뷰, 책, 논문, 기사, 관련 자료 등을 틈나는 대로 폭넓게 조사해서 팀원들과 함께 나눴다. (몇 년 간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자살과 관련된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모은 자료는 구글 문서로 공유하고, 팀원들이 그중 우리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에 의견을 달도록 해 구체화를 거듭했다. 


또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제공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팀원들과 함께 수강했다. (후에 재단 측 동의를 얻어 인게임에 교육 자료를 삽입하기도 했다.)


② 관계자 심층 인터뷰

고시원 원장과 입주자, 전/현직 공시생 등 실제 고시생들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개인적으로 팔로우 중이던 <고시텔> 사진집의 작가를 인터뷰해 고시원 거주 환경의 문제를 면밀히 알게 되었고, 팀원의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공시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동료의 학과 동기들을 통해 2년차 공시생들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며 대사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게임 속 특정 표현의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 고시원도 두 곳 방문해서 원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개발 초반 팀원 부모님을 통해 한 고시원을 답사해 아트 묘사를 수정하고 디테일을 살리기도 했으며, 개발 후반에는 또 다른 고시원을 방문해서 희망적 고시원 환경을 그리는 스토리 아이디어를 얻어서 게임 속에 녹여냈다.


③ 전문가 자문

개발 후반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시나리오 자문을 수 차례 거듭하여 현실성과 문제 여부를 검증받아 콘텐츠의 전문성을 높였다. 중등학교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30일>을 재구성할 때는 청소년 자살예방지도사와의 검수를 한 차례 더 거치기도 했다.


직접 발로 뛰며 고시원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고


닥터프렌즈 채널로 유명한 오진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받기도 했다.


나는 <30일>이 임팩트 게임으로 기능하는데 있어 이런 과정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 초반부터 후반까지, 모든 개발 주기마다 상당히 여기에 신경을 썼다. 초반에는 필요한 지식을 체득했고, 중반부터는 게임을 인터뷰이들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후반에는 주요 설정 및 대사에 대해서 하나하나 전문적 자문을 받았다.


이런 자료조사를 위해선 시간과 비용, 그리고 사람과의 연결이 필요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기가 막막해서 공개자료 위주로 진행했지만, 중반에 용기를 내 연락해 보니 많은 사람이 선뜻 도움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받은 응원과 지지가 우리 게임의 메시지와 방향을 확신하게 했고, 이 도움들이 있었기에 게임을 완성하고 세상에 출시할 수 있었다. 수많은 지원사업에 지원해 전문가의 밀착 자문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모든 감사한 도움을 크레딧에 모두 기재해두었다.


리얼함은 분위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왔다.


자료조사와 검증은 단순히 ‘리얼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찾아가고, 자료를 공유하며 팀원 전체가 같은 무게를 느끼도록 노력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치며 <30일>의 세계는 훨씬 더 현실감 있게 구축되었고, 그 몰입감은 플레이어의 피드백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임팩트 게임을 만들더라도 이런 식의 ‘현실 기반 디자인’은 필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은 이 지점이라는 것을.



# 피드백이 만든 게임, 듣고 모으고 끝까지 토론했다

<30일>을 만들며 우리는 피드백을 ‘받는 것’만큼이나 ‘다루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이 게임이 자살 예방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우리는 언제나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이 게임, 만들어도 괜찮은 걸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우리는 정말, 잘 만들고 있는 걸까?"


이 물음표에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피드백을 수집하고, 그 피드백을 집요하게 끝까지 파고들었다.


처음엔 지인을 대상으로 시연하고 설문지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대학 동기들에게, 동료들과 가족들에게 게임을 보여주며 피드백을 꼼꼼히 수집했다. 공개할 만한 데모가 나온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온오프라인 전시회 참가, 모 기업에서 지원사업으로 진행했던 오픈베타 데이, FGT(포커스 그룹 테스트) 등 참여할 수 있는 테스트 환경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피드백을 받은 건 게임이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각자의 맥락에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 한 명의 피드백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소개한 아이디어를 모은 과정부터 피드백을 반영하는 순간까지 모든 제작진이 함께했다.


피드백을 반영 과정을 담은 문서


장장 8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가장 우리 팀다웠던 순간은, 수집한 피드백을 회의로 분석할 때였다.


전시나 테스트가 끝나고 나면, 나는 모든 피드백 데이터를 하나하나 정리해서 회의에 올렸다. 회의에서는 피드백을 하나하나 읽으며 깊이 논의했다. 이 피드백을 반영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할 건지) 보류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한 항목을 두고 1시간 넘게 이야기한 적도 있었고, 회의가 8시간 이상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게임에서 어떤 것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정말 우리가 의도한 것인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처음엔 나만 피드백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팀원들도 점점 그 감각에 물들어갔다. 모두가 “이건 유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시선으로 게임을 보게 되었고, 피드백 회의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우리 팀을 하나로 묶는 문화의 중심이 되어 줬다.


모두가 함께 피드백을 모아 둔 아카이브다.


이번 편에서는 <30일> 개발의 독창적 부분들을 돌아보았다.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이들은 모두 충분한 효과를 지닌 임팩트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팀 전체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비단 임팩트 게임 개발사가 아니더라도, 팀원들이 모두 하나의 지향점을 공유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노력했을 때 목표에 잘 들어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씩 돌아보면 좋겠다.


게임이든, 어떤 창작물이든, 결국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진실하게 연결되었는지가 결과물의 완성도와 영향력을 결정짓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지금 당신이 믿는 가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길 바라며, 다음 편에서는 <30일>의 출시와 그 이후를 다루어 보겠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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