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전선> IP를 관리하며, <소녀전선>, <소녀전선 2: 망명>, <뉴럴 클라우드> 등의 게임 개발을 총괄한 '우중' 선본 네트워크 대표가 15일, 부산 BEXCO에서 열린 'G-Con 2024'에서 연사로 나섰다. 그는 '다면적 감성 가치에 대한 요구' 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매력적인' 서브컬처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우중 대표의 선본 네트워크가 만든 <소녀전선>은 우리가 '서브컬처 게임' 이라고 부르는 '2차원',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선구자 중 하나로 손꼽히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녀전선> 이후 시장에는 수많은 서브컬처 게임들이 출시되면서 게이머들의 인기를 얻고, 시장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2024년 현재는 더이상 '서브'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성장중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시장은 경쟁도 심화되기 시작했다. 당장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눈 높이가 높아지면서 '기술' 경쟁이 심화되었고, 자연스럽게 개발 비용 상승으로 연결되었다. 선본 네트워크도 <소녀전선> 시리즈의 후속작인 <소녀전선 2>는 풀 3D 그래픽. 그것도 2D와의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렌더링 기술을 사용하면서 고품질의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 경쟁 외에도 이 장르의 핵심중 하나인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유저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이제는 단순히 이쁘게만 한 캐릭터, 1차원적인 캐릭터에 유저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유저들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유저들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캐릭터들과의 '교감'을 원하며, 자연스럽게 심화된 캐릭터 메이킹이 필요해지고 있다. 이는 게임을 '장기간 서비스'하는 것에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교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우중 대표는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설명한 방법은 바로 '성장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소녀전선> 최고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클루카이
가령 <소녀전선>에서 최고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클루카이'는 1편에서 'HK416' 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냉정하고, 쿨하지만, 다소 성숙하지 못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후 게임이 진행될 수록 주인공인 지휘관과 교감하면서 조금씩 캐릭터성이 바뀌어나갔고, '성숙'해졌다.
이후 클루카이는 <뉴럴 클라우드>, <소녀전선 2>등 다양한 게임에 등장할 때는 또 기존의 1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캐릭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캐릭터성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 코어 캐릭터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다양한 모습에 유저들은 환호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현재 클루카이는 다양한 게임에서 보여준 모습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캐릭터성'이 완전히 자리잡았고, 계속해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IDW'로 유명한 '베티'. 맨 왼쪽이 처음 <소녀전선> 1편의 모습. 맨 오른쪽이 최신작인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에서의 모습
또 하나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소녀전선> 1편에서 'IDW'로 등장했던 '베티'다. 고양이 캐릭터 속성을 가진 캐릭터지만, 유저들에게도 '약하다' 동시에 '씨끄럽다' 라는 반응이 많았고, 인지도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뉴럴 클라우드>를 비롯해 다양한 게임에서 캐릭터가 성장하며, 기존에 보여주지 않은 모습. 긍정적인 모습을 계속해 보여주면서 캐릭터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미숙했던' 베티가 시계열상 <소녀전선>의 먼 미래를 다루는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에서는 비교적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로 인해 유저들의 호응이 높았고, 덩달아 캐릭터의 인기도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도 시간이 지날 수록 계속 성장한다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도 있기는 하다. 우선 아무리 캐릭터가 성장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성격은 바뀌지 말아야 한다. 설사 '성장' 이라는 이름을 통해 바뀌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캐릭터성의 변화가 스토리를 통해 유저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유저들의 상상력을 너무 크게 벗어나는 것도 위험하다.
'교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캐릭터와 플레이어간의 거리감'을 잘 설정하는 것이다.
UMP45의 서사를 보면 지휘관(플레이어)와 함께 겪는 일, 그렇지 않은 일이 계속해서 상황에 따라 교차적으로 전개된다.
우중 대표가 예시로 꺼낸 캐릭터가 바로 <소녀전선> 1편의 'UMP45' (2편에서는 '리바' 라는 이름으로 등장 예정)다. 이 캐릭터 역시 굉장한 인기 캐릭터지만, 게임의 스토리를 보면 굉장히 굴곡진 삶을 살고, 다양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면 캐릭터가 위기에 처하고, 여러 고난을 겪을 때는 플레이어(지휘관)가 서사상 그 옆에 있지 않는다. 유저들은 멀리서 관찰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캐릭터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 플레이어가 협력자로 함께 움직이는 순간이 오며,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와 함께 좌절하거나, 여러 고난을 극복하며 보다 심층적인 관계가 되어간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는 캐릭터와 긴밀하게 교감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생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거리'를 잘 조율한다면,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유저들에게 깊은 교감을 선사할 수 있다고 우중 대표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우중 대표가 설명한 것은 바로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을 '그룹'으로 묶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브컬처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서 '캐릭터'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소녀전선> 1편만 해도 인기 높은 캐릭터가 300명 이상에 달한다. 그렇기에 여러 캐릭터를 하나로 묶는 '그룹화'가 중요하다.
가령 또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소녀전선>의 '404 소대'다. 404 소대는 총 4명의 캐릭터가 하나로 묶여 있는데,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개성은 '하나의 팀'으로 묶였을 때 서로 충돌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보완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공동'의 서사를 만들어간다는 데서 긍정적인 화학작용을 한다. 개별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그룹과 그룹' 서사를 만드는 데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이런 '그룹'과 플레이어의 관계는 서사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데서 좋다. 가령 플레이어가 이런 그룹을 '관찰'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이런 그룹과 '함께 하는' 동료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그룹내 여러 이야기를 추리하는 '탐정'의 관계로 설정할 수도 있다.
스토리의 상황, 작가의 성향 등 여러 조건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잘만 활용한다면 유저들은 캐릭터와 그룹을 둘러싼 여러 '서사'에 굉장히 몰입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우중 대표는 최근 서브컬처 게이머들이 게임을 통해 '정서적 가치의 보완'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캐릭터의 설계, 캐릭터의 '서사'의 설계가 중요하고, 긴 시간을 통해 캐릭터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연을 마무리 했다.
다음은 강연 말미에 진행된 유저들과의 질의 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Q. 캐릭터와의 깊이 있는 교감을 원하는 유저들도 많지만, 반대로 '짧은 시간' 강한 쾌감이나 즐거움을 원하는 유저들도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우중 대표: 아무리 그래도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면 보다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 몰입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유저들을 만족시키는 서사, 혹은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힘들고, 이들에게 억지로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강요할 이유도 없다. 점진적으로 좋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캐릭터의 서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콘텐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A. 우중 대표: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과거의 전쟁, 많은 역사가 담긴 자료나 문서를 찾아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과 과거 내가 겪은 경험이 다양하게 캐릭터를 만드는 데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캐릭터를 만들 때 '서브컬처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는 보다 큰 개념의 IP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많이 노력한다.
Q. <소녀전선> 1편을 해보면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전술인형이란 무엇인가' 같은 존재에 대한 탐구도 주어진다는 느낌이다. "이걸 지금 왜?" 같은 느낌도 받는데, 디렉터의 의도가 궁금하다.
A. 우중 대표: 처음에 스토리를 쓸 때, 캐릭터를 만들 때는 사실 팀 내부의 아이디어를 통해 비교적 단순한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 유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서사만을 생각했다. 아트 또한 그저 이쁘고, 캐릭터성을 뒷받침하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저들이 스토리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에도 '혼'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깊이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상호작용을 통해 공감대가 생기고, 몰입까지 한다면 유저들 입장에서도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라고 느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