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품은 ‘기억’을 주제로 보다 깊이 있는 스토리를 선보인다. 연금술이 금기시된 세계에서 주인공 유미아는 과거의 진실을 추적하며,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선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또한, 실시간 전투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의 전투를 보조적 요소에서 핵심 콘텐츠로 승격시켰다. 전략적 움직임과 호쾌한 전투 액션이 더해지며,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한 플레이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시리즈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있다. 더욱 직관적인 시스템과 편의 기능이 추가되어, 입문자와 기존 팬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과거 ‘아틀리에 시리즈니까’라고 여겨졌던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하며, 이제는 ‘훌륭한 RPG’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갖춘 작품이 되었다.
과연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시리즈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단 하나의 실험적 시도로 남을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작품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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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시리즈는 매 작품마다 하나의 키워드를 두고 시리즈를 전개한다. 예를 들어 전작 <라이자의 아틀리에> 시리즈는 ‘비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했으며, 그 전 작품들 역시 ‘신비’, ‘황혼’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엮인다.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기억’으로, 이를 중심으로 게임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진지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기억이라는 키워드 덕분에 꽤 재밌는 설정이 등장한다. <유미아의 아틀리에>에서 등장하는 연금술은 대지를 떠도는 마나를 자원으로 한다. 그런데 이 마나라는 게 생명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 대지로 돌아가면서 만들어지는 힘이라는 설정이다. 일종의 영혼 같은 것으로, 유미아는 이 마나를 통해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시리즈 사상 최초로 연금술이 금기시된다. 과거 연금술 때문에 한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는 재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따라 연금술사가 된 주인공 유미아는 사람들로부터 얼떨결에 위험 분자 내지는 마녀 취급을 받게 됐고, 재앙이 있었던 대지엔 고농도의 마나가 짙게 깔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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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면전에 대고 한다. 한 번이 아니라, 수 차례에 걸쳐.
단지 연금술사라는 이유만으로 박해의 대상이 된 상황에 삐뚤어질 만도 한데, 유미아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재앙의 원인을 추적하는 조사단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함께 모험할 동료들을 만난 유미아가 재앙으로 사라져 버린 그날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연금술에 관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주된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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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유미아는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조사단에 합류한다.
<유미아의 아틀리에> 이전의 작품들은 대부분 중심 갈등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벼웠다. 이를테면 연금술 아카데미의 졸업을 목표로 한다거나, 어엿한 연금술사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식이다. 이에 비하면 이번 작품의 서사는 상당히 어둡고 무겁다. 등장하는 악역들도 각자의 서사와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과의 충돌은 필연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갈등이 명확하고 자연스러우니 이들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방식에서도 이전 작품들과와의 차이점이 돋보인다. 이전 작품들이 메인 스토리보다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일화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에선 메인 스토리를 큰 줄기로 삼고 인물들 간의 서사가 작은 가지처럼 뻗어나간다. 서브 퀘스트의 비중을 줄이고, 인물들의 이야기를 메인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특히 각 인물들이 가진 ‘아픈 기억’을 인게임 그래픽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어 몰입감을 끌어올린 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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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서브 퀘스트의 분량을 줄이고, 메인 스토리에 이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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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감을 더하는 애니메이션 연출도 상당히 좋았다.
진지하고 몰입감 있는 스토리가 <유미아의 아틀리에>가 보여준 첫 번째 혁신이라면, 두 번째 혁신은 바로 전투다. 이번 작품에서 전투는 연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임의 메인 콘텐츠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RPG라면 당연히 전투가 메인 콘텐츠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 아틀리에 시리즈에서 전투는 연금술에 사용할 재료를 얻거나 연금술로 만든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 그쳤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명백히 연금술이고, 전투는 이를 위한 부수적인 요소 취급이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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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아틀리에 시리즈의 전투는 이랬다. 전형적인 턴제 RPG 전투다.
반면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전투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연금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밌어서 더 즐기고 싶은 콘텐츠로 거듭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플레이에서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전투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전작 <라이자의 아틀리에>에서 시도했던 실시간 전투를 한층 더 발전시킨 이번 작품의 전투는 역동적인 실시간 액션 스타일을 선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조종해 근거리와 원거리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전투할 수 있다. 거리에 따라 사용하는 무기도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유미아는 근거리에선 스태프와 연금술로 만들어진 신발로 적을 두들겨 패고(!), 원거리에서는 스태프를 총으로 바꿔 적에게 탄환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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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진입하기 전 총을 쏴서 상대의 방어도를 모두 깎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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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보일 수 있지만, 유미아가 무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돌려차기를 하는 모습이다.
기존 아틀리에 시리즈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연출이다.
기존 아틀리에 시리즈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연출이다.
이렇게 거리를 조절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사용 가능한 기술이 다르고 각 기술이 가진 속성이 달라서 유리한 속성으로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각 기술마다 시전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위치에서 공격을 마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빈틈 없이 적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리를 조절하면 적의 광역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이어갈 수도 있다.
실시간 전투의 특징을 살린 방어와 회피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적이 공격하기 직전에 적의 몸이 잠깐 붉게 반짝이는 워닝 싸인이 등장한다. 이를 방어하면 적은 체력 손실로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지만, 공격이 들어오는 정확한 타이밍에 회피를 시전하면 피해를 완전히 무효화할 수 있다. 이 회피가 주는 손맛이 상당히 강렬하다.
여기에 더해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면 적의 방어도가 소진됐을 때 동료와 함께 약점 속성의 아이템으로 함께 공격하는 프렌드 액션과, 회피 성공 시 캐릭터를 교대하면 발동되는 저스트 카운터 같은 특수 기능도 해금된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게임의 전투는 숨가쁘고 다채롭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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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공격으로 적의 방어도가 모두 소진됐을 때 발동할 수 있는 프렌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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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속성의 아이템으로 동료와 함께 공격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연금술을 어떨까? 전투의 비중이 늘면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간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중요한 콘텐츠로 기능한다. 말하자면 전투와 연금술 양쪽으로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야 캐릭터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
연금술의 역할은 전투에 사용할 유용한 장비와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다. 재료는 전투와 탐험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월드 곳곳에서 생성되는 마나 간헐천에서 ‘잔향입자’를 획득해 연금술 레시피를 강화할 수 있다. 레시피가 강화되면 연금술로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개수가 증가하거나, 그 성능이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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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레시피를 강화하면 해당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성능이 향상되거나 한 번에 제작되는 수량이 증가한다.
이번 작품의 연금술은 시리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입문 난이도를 크게 완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틀리에 시리즈 속 연금술의 특징인 품질, 효과, 특성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를 시리즈에 처음 입문한 이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끔 배려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품질은 아이템에 붙는 기본적인 스탯, 효과는 연금술을 통해 부여되는 추가 효과, 그리고 특성은 재료에서 비롯된 특수한 옵션이다. 게임 내 존재하는 모든 재료에는 각각의 품질과 효과, 특성이 있고 이걸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주어진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최적화된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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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재료 아이템마다 품질, 효과, 특성 수치가 제각각이다. 이걸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성능도 달라진다.
28년 간 발전해온 시스템답게 상당히 깊이 있는 완성도를 가진 시스템이지만 자칫하면 입문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처럼 느껴질 만큼 복잡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다행히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자동 조합 기능을 추가해 입문자들도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게끔 돕는다.
자동 조합 기능을 사용하면 최대한 품질 혹은 효과 수치를 높이거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재료를 추가하거나, 혹은 원하는 수준으로 커스텀해 재료를 조합할 수 있다. 굳이 일일이 재료를 살펴보지 않아도 한 번의 클릭으로 원하는 수준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이 기능 역시 <유미아의 아틀리에>가 선보인 혁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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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조합 기능을 이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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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원하는 옵션을 가진 아이템을 자동으로 조합해준다.
앞서 소개한 자동 조합 기능과 비슷하게 <유미아의 아틀리에>에선 시리즈 입문자들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약식 조합과 하우징 시스템이다.
약식 조합은 필드 어디에서든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전 작품에선 볼 수 없었던 기능이다. 이전에는 아이템이 필요하면 아틀리에까지 돌아가서 필요한 아이템을 제작해야 했는데 자연히 플레이의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약식 조합 기능이 추가되면서 게임의 편의성은 크게 높아지고, 게임의 몰입감도 크게 향상됐다.
하우징 시스템도 이와 비슷하다. 이전에도 하우징 시스템은 있었으나, 그 범위가 아틀리에 내부로 한정됐다. 아틀리에의 테마나 가구 정도를 바꾸는 정도일 뿐,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었다.
반면 이번 작품에서 하우징은 월드 내 특정 지역을 자유롭게 꾸밀 수 있도록 그 범위와 기능이 확장됐다. 건물의 바닥부터 외벽, 지붕까지 하나하나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고, 플레이를 통해 얻은 레시피로 가구를 만들어 배치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연금술을 위한 간이제단이나 재료를 생산하는 온실을 배치해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외에도 새롭게 도입된 편의 기능은 얼마든지 있다. 전작보다도 훨씬 방대해진 오픈 월드를 여행하는 데 꼭 필요한 내비게이션 기능과 빠른 이동을 위한 바이크(게임 내 명칭은 프로셀라)도 좋은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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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어디에서든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약식 조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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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건물을 배치할 수 있는 하우징 시스템으로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지금까지의 아틀리에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스토리에 진중함과 몰입감을 더하고, 매력적인 실시간 전투의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 가장 RPG스러운 작품이 됐다.
아틀리에 시리즈를 이끌고 호소이 준조 프로듀서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아틀리에 시리즈는 한때 다른 RPG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아틀리에 시리즈니까 괜찮아’라며 허용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번 <유미아의 아틀리에>를 통해 아틀리에 시리즈가 아닌 훌륭한 RPG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바람대로 이번 작품은 기존에 시리즈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연금술 요소가 부가된 훌륭한 RPG로 다가올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정도면 향후 아틀리에 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감히 평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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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아틀리에 시리즈 중 가장 RPG스러운 작품이다.
JRPG를 좋아한다면 이전 시리즈를 즐기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JRPG를 좋아한다면 이전 시리즈를 즐기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