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이 국내에서 서비스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2D였던 그래픽이 3D로 바뀌었고, 2천~3천 명에 불과하던 서버 수용인원도 최대 7천명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다.
기술적인 발전만 있는 게 아니다. 소심하기만 했던 온라인게임들이 요즘 들어 부쩍 자신감이 생긴 듯한 모습이다. 과거에 많아야 1천명(혹은 999명)을 선발했던 클로즈 베타테스트 참가자 규모가 최근 들어 1만 명에 이른다.
상용화 방식도 바뀌었다. 오픈 베타테스트 이후 유저들의 호응도를 지켜본 뒤 조심스럽게 상용화 시기를 가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픈 베타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이미 유료화 컨텐츠를 기획 과정에서 검증하는 발빠른 업체도 생겨날 정도다.
디스이즈게임에서 창간 4주년을 맞아 지난 4년 동안 달라진 온라인게임 베타테스트의 새로운 풍속도를 3부에 걸쳐 살펴본다. 첫 번째 주제는 ‘통 커진 클로즈 테스트’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클로즈 베타테스트 참가자, 1만 명이 대세
최근 온라인게임들의 클로즈 베타테스트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
올해 초, 그리곤엔터테인먼트의 신작 RPG인 <칸헬>은 나흘 동안 진행하는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이하 CBT)를 위해 9,999 명의 테스터를 모집했다. 그리곤은 <씰온라인>과 <큐링>에 이어 오랫만에 RPG를 선보였지만 첫 테스터의 규모는 1만명에 달할 정도로 크다.
최근 2주 동안 1차 CBT를 진행한 NHN게임스의 신작 <C9>은 1만 명의 테스터로 출발해 테스트 도중 1만 명을 더 뽑았다. 게다가 퍼블리셔인 NHN 한게임의 가맹 PC방에서도 접속할 수 있었고, 테스터가 특정 레벨에 도달하면 친구들에게 줄 CBT 초대쿠폰을 받을 수도 있었다. 덕분에 <C9>의 1차 CBT 참가자는 7만 명을 돌파했다.
썰매개 육성 RPG로 큰 관심을 모은 넥슨의 <허스키 익스프레스> 역시 나흘 간의 1차 CBT를 위해 1만 명의 테스터를 선발했다. 이제는 1차 CBT에서 5천 명의 테스터를 모집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규모로 느껴질 정도다.
■ 1만명 규모의 CBT, 4년 동안 10배 증가
CBT의 규모가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것은 아니다.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온라인게임 업계에서는 1차 CBT 참가자들에 대한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다. 1차 CBT 참가자 = 999명이라는 등식이다. 말이 필요 없었다. 무조건 1차 CBT를 진행하려면 999명의 참가자를 모아야 했다. 이는 조건반사 같은 업체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CBT 참가자의 규모가 확 달라졌다. 상당수의 게임들이 최대 1만 명 참가자의 CBT를 진행하고 있다.
아래는 2005년과 2008년이후 온라인게임의 1차 CBT 모집인원을 정리한 것이다. 모집인원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거나 리뉴얼, 업데이트 등을 위한 테스트의 경우, 공지사항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등은 집계에서 제외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2005과 2008년 이후의 그래프는 선명하게 다르다. 마치 '데칼코마니'로 그려낸 듯 상반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2005년에는 <바닐라캣> 단 1개의 게임만이 1차 CBT에서 1만명의 유저를 뽑았다. 하지만 이 역시 2003년 개발된 게임을 넷마블에서 퍼블리싱하며 테스터를 다시 모집하는 것이니 사실상 CBT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2008년 이후에는 무려 11개의 게임이 1만 명 이상의 테스터를 모집했다. 사실상 1만명에 가까운 9999명 규모의 CBT를 진행한 게임도 4개나 됐다. 반대로 1천명 미만의 테스터를 모집한 게임은 <바닐라 게이트>와 <바이키> 단 2개에 그쳤다.
■ 시험용게임물 제도와 기술의 발전이 원인
CBT 규모가 이처럼 늘어난 가장 큰 배경에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시험용게임물제도가 있다.
시험용게임물 제도란? 2006년 4월 제정된 게임산업진흥법과 함께 마련된 제도. 새로운 게임의 개발과정에서 성능이나 안정성, 이용자만족도 등을 평가할 목적으로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시험용게임물을 신청하는 것을 말한다. 검토나 등급이 나오는 시간이 빠른 대신 기간과 1만명 이내의 인원제한이 있다. |
시험용게임물제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일반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은 무조건 1천명 이내의 테스터만 모집해야 했다. 하지만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게임도 개발하는 온라인게임으로서는 매번 대량의 컨텐츠가 변경/추가될 때마다 다시 심의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일반심의는 게임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살펴보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결국 테스트에 맞춰서 컨텐츠를 만들어 내기도 빠듯한 대부분의 온라인게임 업체에서는 불가능한 셈이다.
최근에는 시험용게임물 등급신청을 하는 게임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2006년 4월 시험용게임물제도가 생긴 이후에는 시험용게임물 등급을 신청하면 비교적 간단한 심사만으로도 30일 간 최대 1만명 이내까지 테스터를 선발할 수 있는 자격이 나온다. 테스트를 할 때마다 겪는 심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이다. 실제로 취재에 응한 모든 업체가 ‘CBT 규모가 커진 이유’로 꼽은 원인이 시험용게임물제도의 등장이었다.
■ 왜 대규모 CBT인가? 할 수 있는 게 많다
대다수의 개발사는 대규모 CBT를 원하고 있다. 우선 게임에 대한 피드백을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만 명 규모의 <칸헬> 1차 CBT를 진행한 그리곤엔터테인먼트의 이복현 과장은 “서버환경을 체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천~3천 명 수준의 동시접속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기 전처럼 천명 남짓한 테스트 인원으로는 100명 단위의 동시접속자를 얻는 게 고작이다”라고 말했다. 기존의 소규모 테스트방식에서는 서버환경에 대한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규모 CBT를 진행하면 게임 밸런스에 대한 유저반응도 빠르고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허스키 익스프레스>의 개발을 총괄하는 넥슨의 최문영 디렉터는 “온라인게임은 100 명일 때 좋은 밸런스가 있고 10,000 명일 때 좋은 밸런스가 있다. 소수 인원일 때 아무런 문제가 없던 밸런스가 오픈 베타테스트 때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다. 이런 면까지 테스트 해보려면 테스트의 인원이 많을수록 좋다”며 대규모의 CBT를 진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정리하자면 소규모 CBT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서버환경과 밸런스에 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 대규모 CBT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피드백들은 오픈 베타테스트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CBT가 개발과정에서 비교적 초반에 위치하는 만큼 테스트를 통해 얻은 유저들의 의견이나 문제점, 서버환경 등을 반영하기에 유리하다. 내부적으로도 빠르게 유저들의 의견을 얻는 만큼 이후의 개방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
<허스키 익스프레스> 역시 첫 날 서버환경에 대한 실험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오픈 베타테스트 이후에 발견되면 치명적인 단점들도 1차 CBT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개발사에서도 가능하면 CBT라는 ‘일종의 면죄부’가 있는 동안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 미흡한 컨텐츠 준비는 풀어야 할 과제
CBT가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우선 중소개발사에서는 대규모의 CBT를 감당할 컨텐츠 확보가 쉽지 않다. 오픈 베타테스트와 맞먹는 규모의 CBT를 진행하면서 이전처럼 소수의 유저를 대상으로 한 기초적인 캐릭터 이동만으로 테스트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테스터 규모에 맞는 양의 컨텐츠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다수의 유저를 위한 길드나 파티, 경매장 등의 시스템이 들어가야 하는데, 1차 CBT에서 이를 모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곤 이복현 과장은 “작은 규모의 업체들은 시간적인 문제 등으로 CBT에서 많은 컨텐츠를 보여주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걱정의 뜻을 내비쳤다. 사실상 오픈 베타나 프리 오픈 정도에서야 컨텐츠의 대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데, 어설픈 모습으로 대규모의 인원을 받아들였다가는 되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인원을 모으다 보니 테스트 중인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애정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빛소프트 이수현 과장은 “예전에는 어려운 선발과정을 겪고 들어온 테스터인 만큼 게임이 크는 것을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의 누구나 테스터를 할 수 있다 보니 불만이 있으면 지적보다는 혹평부터 하는 유저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의 몇몇 게임은 1차 CBT 첫 날부터 서버문제를 앓다가 오히려 안 좋은 평가만을 받기도 했다. 결국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대규모 CBT를 진행하다가 좋지 않은 입소문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CBT가 테스트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 한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개발사 중에는 대규모 CBT의 이유로 인지도와 홍보효과를 내세우는 곳도 있었다. 부분유료화가 자리잡으면서 오픈 베타 '서비스'라는 말이 생겨났다면, 대규모 CBT가 자리잡으면서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나친 대규모 CBT에 집착하면 테스트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차라리 자신의 상황에 맞게 타깃 유저층을 노린 소규모 CBT를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며 자사의 게임에 맞는 테스트 방식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 대규모 CBT는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
하지만 개발사나 유저 모두 대규모 CBT를 원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일단 대형개발사의 경우 CBT에서 빠르게 문제점들을 고칠 수 있는 만큼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넥슨의 최문영 디렉터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문제도 빨리 발견할수록 고치기 쉽다. 그런 점에서 CBT의 인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말했다.
유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준비도 안 된 게임을 열었다는 비판보다는 다양한 게임을 빨리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CBT가 사실상 오픈 베타테스트의 역할을 맡다 보니 CBT부터 높은 퀄리티를 지닌 게임들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 유저는 “좋아하는 게임에 떨어져서 아쉬워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CBT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만큼 오픈 베타테스트처럼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며 대규모 CBT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2주 동안 1차 테스트를 진행한 <C9>은 25 레벨까지 다양한 컨텐츠를 제시해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다. 테스트 마지막에는 깜짝 이벤트로 PvP까지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정식 PvP를 준비하기 위한 유저반응도 수집했다.
중소개발사의 경우에도 일단 개발 중이라는 ‘면죄부가 붙는’ CBT 기간 동안 서버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유저들의 반응 때문에 다 만든 게임의 방향을 뒤집는 치명적인 상황도 피해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규모 CBT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음 2편에서는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되는 CBT로 인해 달라진 오픈 베타테스트의 풍경을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