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를 퇴출했다. 에픽게임즈가 인게임 재화를 자체 경로로 결제할 수 있게 한 것이 '정책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에픽게임즈는 자사 트위터를 통해 '1980 포트나이트(Nineteen Eighty-Fortnite)'라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포트나이트> 등장인물이 큰 화면에서 연설을 펼치는 사과 캐릭터를 깨부수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상은 "에픽게임즈는 앱 스토어의 독점에 반기를 든다. 부디 2020년이 1984년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싸움에 동참해달라"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에픽게임즈가 올린 영상은, 1984년 애플이 만들었던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게다가 업로드된 영상의 태그는 #Free Fornite다. 에픽게임즈가 영상을 통해 "당시 혁명의 주체였던 애플이 혁명의 대상이 됐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에픽게임즈와 애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에픽 게임즈가 공개한 1980-'포'트나이트는
1984년 애플이 슈퍼볼 당시 공개한 광고와 매우 유사하다 (출처: Mac History)
모든 일은 13일 에픽게임즈가 <포트나이트> 모바일 버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게임 재화, 'V벅스'를 자체 경로로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만약 V벅스를 자체 경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확립될 경우, 에픽게임즈는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유저들에게는 일반적인 금액보다 20% 저렴한 가격에 인게임 재화를 제공할 수도 있다. 에픽게임즈가 애플과 구글을 거치는 대신, 자체적인 인게임 재화 결제 경로를 제공하고자 결심한 이유다.
물론 애플이 이를 가만히 지켜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앱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즉시 퇴출하는 한편, 해외 매체 '게임스팟'(Gamespot)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에픽스토어가 유저 보호를 위해 모든 개발사에 동등하게 적용되던 애플 앱스토어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우려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애플은 에픽의 직접결제 방식을 검토하거나 허가한 적 없다. 따라서<포트나이트>는 앱스토어에서 삭제됐다.
에픽게임즈는 앱스토어를 수년간 이용해왔고, 앱스토어가 제공하는 툴, 테스팅, 앱 배포 등 혜택을 누려왔다. 에픽게임즈가 이룬 사업 성과를 우리도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업적 이해관계가 그들만을 위한 특별약정을 만들 순 없다. 향후 에픽게임즈와의 논의를 통해 <포트나이트>가 앱스토어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구글 또한 해외 매체 '더 버지'(The verge)를 통해 "<포트나이트>는 우리의 정책을 위반했다. 물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안에서는 실행 가능하겠지만, 플레이스토어에서는 다운받을 수 없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얼마 후,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 홈페이지를 통해 애플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고소장은 65장 분량으로, 에픽게임즈는 앱스토어에서 자사 앱이 퇴출될 것을 예상해 미리 이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에픽게임즈는 고소장을 통해 "애플이 부과하는 30%의 수수료는 너무 과하다. 이러한 '과세'가 이어질 경우, 애플 기기에 의존하는 이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들은 이번 고소장 제출이 그간 입은 피해를 벌충하기 위함이 아니라, 애플의 독점에 맞서 싸우기 위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이 iOS 앱 배포 마켓, iOS 인앱 결제 프로세싱 마켓에서 불법적으로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하는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소를 제기한다"라며 "주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이 애플에 금지명령을 내려주길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에픽게임즈는 구글을 상대로도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만약 에픽게임즈가 소송에서 승리할 경우, 구글과 애플은 거대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또한, 오랜 시간 유지해왔던 '수수료 30%'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소송 결과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에픽게임즈와 대형 퍼블리셔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 안드로이드 버전 보안 문제를 두고 구글과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구글은 에픽게임즈에 <포트나이트> 안드로이드 버전 보안 문제를 지적했고, 에픽게임즈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구글에 90일간 해당 내용을 비공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곧바로 공개했고, 팀 스위니(Tim Sweeney) 에픽게임즈 대표는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몇몇 이는 공개적으로 '탈구글'을 선언한 에픽게임즈에 대한 구글의 보복이라고 평가한 반면, 일각에서는 <포트나이트> 안드로이드 버전에 보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만큼 팀 스위니의 발언이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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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팀 스위니가 지속적으로 구글과 애플이 부과하는 30%의 수수료를 비판한 것 역시 에픽 게임즈와 구글·애플의 관계를 벌려놨다.
그는 "구글과 애플에 지불해야하는 30%의 수수료는 너무 높은 비용"이라며 "개발자가 수익의 70%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자와 직접 거래를 맺길 원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성철 에픽게임즈 코리아 대표 역시 "에픽게임즈의 비전은 개발자가 먹이사슬 밑바닥에 있는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984년 애플이 공개한 '매킨토시' 광고는, 집필 당시 미래인 1984년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망치를 든 여인이 경비병의 추격을 뒤로하고 스크린을 부수는 이 광고에는, 기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애플의 의지가 잘 담겨있다. 영상은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공개한다. 여러분은 왜 1984년이 소설 1984와 다른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이후 매킨토시는 발매 100일만에 7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36년이 지나, 애플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영상으로 자신을 저격하는 에픽게임즈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에픽게임즈는 마치 보란듯이 1984년 애플이 공개한 광고를 본떠, 그들을 저격하는 영상을 올렸다. '혁명의 주체였던 애플이 혁명의 대상이 됐다'라는 메시지를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에픽게임즈는 계속해서 거대 퍼블리셔와 크고 작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은 대표가 개인 SNS를 통해 의견을 주장하고 특정 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내리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특정 회사를 저격하는 광고는 물론 이를 상대로 고소장까지 제출하며 완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 시점에서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의 수수료 30%라는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든 모양새다. 그리고 퇴출을 당하면서 고소를 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만에 하나라도 에픽게임즈가 승소를 한다면 그동안 철옹성처럼 여겨진 30%의 수수료 장벽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결과가 그리 빠르게 나오지는 않을 전망이다. 양사가 업계를 대표할 정도로 큰 기업이면서 정책의 방향성을 놓고 법정싸움을 하게 된 만큼 치열한 소송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다만 에픽게임즈가 승소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개발사가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