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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 속 ‘악의 축’으로 다시 등장한 북한

국내외 게임 시나리오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져

정우철(음마교주) 2009-05-29 15:15:58

최근 2차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이 게임 속에서 다시 악의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YNK재팬은 28일 온라인 FPS 게임 <스팅>의 일본 서비스에 맞춰 김일성 동상과 인공기가 등장하는 홍보 이미지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THQ도 27일 북한군이 미국을 침공한다는 시나리오의 신작 FPS 게임 <홈프론트>를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폴아웃3>와 <오블리비언>으로 유명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는 북한에서 전투를 벌이는 FPS 게임 <로그 워리어>를 준비 중이다.

 

이들 게임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 첫째, 게임의 배경이 북한, 또는 북한군과의 전투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장르가 모두 1인칭 슈팅(FPS)이다. 다만, <홈프론트>와 <로그 워리어>에서는 북한군이 ‘적’으로 등장하고, <스팅>에선 북한군이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내세운 미국 개발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전면에 내세운 게임들은 모두 미국에서 개발되고 있다.

 

THQ의 <홈프론트>는 2027년을 배경으로 북한이 미국에서 국지 도발을 일으키고, 미국 시민들은 북한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미국 시민들이 북한군의 도발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각본가 존 밀리어스가 맡았다.

 

사실 <홈프론트>는 미국의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독립전쟁 이후 911 사태 이전까지 미국은 본토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즉, 다른 국가가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미국에서는 금기시 되는 이야기이다.

 

베데스다의 <로그 워리어>는 이런 금기를 피해 북한을 게임의 무대로 삼았다. 미군 특수부대인 실(SEAL) 팀이 북한 핵무기의 실상 파악을 위해 침투했다가 고립되면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한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인다는 시나리오까지 포함되어 있다.

 

<로그 워리어>의 한 장면, 배경과 적군은 100% 북한이다.

 

 

왜 북한이 게임에 다시 등장하나?

 

<로그 워리어>는 2006년 개발을 시작했지만 최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가장 현실에 근접한 시나리오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냉전종결 이후 북한이 적으로 등장하는 게임은 해외에서 꾸준히 나왔다.

2005년 1월 미국에서 출시된 <머셔너리>의 스크린샷.

 

미국 개발사들이 북한을 내세우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현실에 가까운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다 보니 가장 적절한 대상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이, 걸프전 및 이라크 전에서는 테러범이 단골 소재였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이 적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THQ코리아의 관계자는 신작 <홈프론트>에서 북한이 나오는 것은 마케팅용 기획이 아니다. 북한군의 제식이나 고증이 아닌, 완전히 허구의 디자인으로 등장한다. 북한은 단순히 게임 내에서 ‘North Korea’라고 표시된 것일 뿐, 과거 소련이나 독일이 적군으로 등장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고스트리콘2>처럼 실감나는 전쟁 시나리오를 위해 북한이 소재로 자주 쓰인다.

 

 

<스팅> 일본 마케팅에서 북한을 내세운 이유는?

 

지난 28일 일본에서 서비스 일정을 발표한 <스팅>은 오히려 북한군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발표회에는 북한군 복장을 한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했고, 인공기와 김일성 동상을 내세운 일러스트를 선보였다. 실제 게임 소개에서도 김정일 사후 북한의 쿠데타와 핵무기 해체를 위한 각 나라 특수부대원들의 전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일본 서비스를 발표하면서 북한을 전면에 내세운 <스팅>.

 

이는 최근 국제정세에서 일본의 분위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현지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다시 떠오른 일본의 핵무장 이슈와 북한을 내세워 게임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스팅>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YNK재팬 관계자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팅>에서 북한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최대한 현실에 의거해 표현하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 단순히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국가를 실명으로 등장시켰을 뿐이고, 게임을 통해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스팅>의 시나리오상 한일 관계에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스팅>은 김정일 사후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틈을 타 일본이 독도를 무력으로 점거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북한, 일본이 얽혀 있는 것이다.

 

일본 현지의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보통 한국 게임을 일본에 선보일 때 현지(일본에 관계된) 시나리오를 강조하는 것이 상식이다. <스팅>의 경우 독도 점거라는 민감한 사항이 있어 오히려 북한 핵실험이 이슈인 지금의 상황에 맞춘 듯하다. 서브 시나리오에서도 일본이 배경으로 추가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배경의 게임, 국내 판매 가능한가?

 

지난 2004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게임을 심의하던 시절에는 <고스트리콘2>와 <머셔너리> 등 북한이 배경인 게임은 심의 부적격 판정을 받아 국내 출시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홈프론트>나 <로그 워리어> 등은 큰 문제없이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게임 내용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마케팅으로 북한을 포장하는 것은 심의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로그 워리어>처럼 가상 시나리오로 북한이 등장해도 큰 문제는 없다.

 

실제로 <스팅>은 국내에서 15세 이용가를 받은 상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즉, 게임심의 관련 법령보다 상위법인 국가보안법에 명시된 북한의 미화, 찬양, 고무 등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전창준 정책지원 팀장은 “북한이 등장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상식적인 수준(영화 등에서 보여주는)의 소재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게임 내용에서 북한을 과대하게 미화하거나 역사적인 왜곡이 있다면 문제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전 팀장은 “여기서 말하는 왜곡이란 예를 들어 북한군으로 플레이 하면서 퀘스트로 청와대를 습격하는 등의 내용을 말한다. <홈프론트>나 <로그워리어>의 경우 지금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직접 심의를 받아 봐야 결과를 알겠지만 정상적인 심의를 받은 이후의 마케팅은 과대광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