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숫사슴’이 되어 스크린세이버로 접속하는 온라인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곳에는 폭력도 없고, 레벨업의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오로지 같은 사슴이 된 유저끼리 나누는 교감과 대화, 그리고 자연을 느끼는 일만이 존재하죠. 예술로 다가서는 온라인게임 ‘소셜 스크린세이버’ <엔들리스 포레스트>(Endless Forest)를 소개합니다. /디스이즈게임
◆ 온라인게임의 예술적 승화를 꿈꾸다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다음 세대 게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두 명의 원작자 ‘아우리에 하베이’(Auriea Harvey)와 ‘마이클 사민’(Michael Samym)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두 사람은 현재 ‘벨기에’에서 작은 독립 개발사 ‘테일 오브 테일즈’(Tale of Tales)를 설립해 자신들을 포함한 8명의 개발진과 ‘비상업 목적’으로 <엔들리스 포레스트>를 개발, 서비스하고 있다. 이들은 각종 문화 단체와 박물관 등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벨기에에서 개최되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참가해 <엔들리스 포레스트>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개발이념은 매우 간명하다. 두 명의 원작자는 “우리는 게임을 싫어하지 않고 많이 즐겨왔다. 그 속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는 최신 3D 기술을 사용해 우리가 게임에서 원치 않았던 내용들을 제외한 것들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었다”고 동기를 설명한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게임을 영화와 문학의 예술적인 표현, 그 경계에 설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만들려고 하지 않고 ‘예술’적인 느낌이 생성될 수 있는 공간 <엔들리스 포레스트>를 온라인상에 그려 놓은 것이다.
<엔들리스 포레스트>의 두 개척자, 마이클 사민(왼쪽)과 아우리에 하베이.
이 모습은 잡지에 나온 것으로 그래픽 합성이 들어가 있다.
◆ 스크린세이버로 접속하는 온라인 세계
‘게임 테라피’(Game Therapy, 게임 치료)라고 불러도 좋을 순수 온라인게임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그 독특한 감수성만큼이나 실행법도 색다르다. 게임은 40MB 분량의 스크린세이버로 제공되어 유저가 설치한 다음 ‘스크린세이버 등록’을 해야 실행할 수 있다. (일반 게임처럼으로 실행시켜주는 ‘런처’도 지원된다.)
유저는 꼭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아도 혼자서 ‘사슴’이 되어 <엔들리스 포레스트>의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 접속하면 다른 사슴(유저)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스크린세이버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설치할 수 있고, 또 널리널리 전파되기도 쉽다. 이런 전달 매체의 독특함 때문에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소셜 스크린세이버’라는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호수' 지역에서의 플레이 모습.
◆ 사슴은 말을 하지 않는다
<엔들리스 포레스트>에서 유저는 ‘숫사슴’이 되어 숲과 유적, 호수 등의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온라인게임에서 유저를 대표하는 ‘닉네임’은 없다. 오로지 뿔 위에 독특한 문양으로 표시되는 ‘후광’만이 존재할 뿐이다.
‘왜 닉네임이 없을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개발진은 “속어와 인터넷의 줄임말은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을 금새 파괴해 버린다. <엔들리스 포레스트>에서 그런 일은 없다. 사슴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닉네임이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라고 밝히고 있다. 유저는 <엔들리스 포레스트>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문양을 등록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꼭 ‘숫사슴’이어야만 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개발진은 “우리는 숫사슴의 뿔을 좋아하지만, 암사슴에는 뿔이 없다. 그리고 실제 유저의 성별에 게임 속 아바타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암사슴, 숫사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임이 아니다. 오로지 사슴으로서의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닉네임은 없다. 자신의 머리 위에 뜬 '후광'이 나를 표시해 준다.
◆ 사슴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다
<엔들리스 포레스트>에 접속한 유저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또는 조이스틱을 이용해 자신의 사슴을 움직일 수 있다. 모든 행동은 화면 하단에 보이는 ‘액션 아이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각각의 행동은 그것이 가능한 장소나 상황이 됐을 때만 아이콘의 형태로 보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혼자할 수 있는 행동은 ‘앉기’ ‘일어서기’ ‘나무에 몸 비기기’ ‘점프하기’ ‘물 마시기’의 다섯가지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슴(유저)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소셜 액션’은 ‘듣기’(다른 유저의 심볼-후광-을 정확히 인식하기)와 ‘외치기’(잠자는 다른 사슴 깨우기), 그리고 ‘냄새맡기’(다른 사슴 반갑게 맞이하기)의 세 가지다.
전투와 치열한 성장을 향해 달리는 일반적인 MMORPG에서 느꼈던 재미를 기대한다면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할 것이다. 사슴이 되어 자연과 호흡하며 느끼는 안락함과 자유로움, 그 속에서 다른 사슴과 교감을 나누는 게임이다.
화면 하단에 나타나는 행동 아이콘을 사용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유적지에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
◆ 세상을 꽃 피우는 ‘신’이 된다
다소 어려운 이름의 ‘아비오제네시스’(ABIOGENESIS)는 <엔들리스 포레스트>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로, 두 명의 원작자 ‘아우리에 하베이’와 ‘마이클 사민’이 직접 신이 되어 실시간으로 게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이다.
이들은 ‘아비오제네시스’ 시스템을 통해 낮과 밤을 바꿀 수 있고, 식물을 심고 자라게 할 수 있으며, 꽃을 피우고 나비를 날게 할 수 있다. 또, 유저들과 함께 교감하며 다양한 이벤트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일종의 ‘갓 시스템’(God System)인 셈이다.
평소에도 가상세계에서의 상호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원작자들은 ‘아비오제네시스’라는 갓 시스템을 사용해 <엔들리스 포레스트>의 가상세계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유저들에게 다가서려고 한다. 원작자가 두 명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트윈 갓’(Twin Gods)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아비오제네시스'를 이용하면 꽃들이 만개한 숲의 로맨틱한 분위기도 만들 수 있다.
◆ 온라인게임,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엿보다
각종 문화예술 단체의 후원으로 개발되고 있는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현재 1.5 버전까지 나와 있다. 재정적인 후원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개발진은 게임을 매달, 조금씩 개발하면서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앞으로 아바타 꾸미기(사슴 치장) 및 소셜 액션의 확장이 계속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들의 도전정신과 게임의 독특함은 벨기에와 유럽에서는 이미 널리 인정 받고 있다.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이미 벨기에서 개최되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나 ‘문화 전시회’ 등에 초청을 받아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 유럽의 게임 매체들도 <엔들리스 포레스트>의 예술적인 노력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기사를 통해 게임의 독특함과 개발자들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꼭 기술적인 진보, 놀라운 커뮤니티의 확장만이 ‘온라인게임의 진화’는 아닐 것이다. 온라인게임의 불모지로 인식되고 있는 벨기에의 인재들이 만들어낸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엔들리스 포레스트>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게임 파일(스크린세이버)만 다운로드 받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다만 아직 개발중이기 때문에 PC 사양과 시스템에 따라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소사양: 펜티엄4 2GHz, 램 256MB, 라데온 9800-지포스4 이상 그래픽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