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은 없다.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인물도 약점을 보이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덩치’가 큰 기업일수록 모든 분야에서 완벽함을 도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난 주, 인디 개발사들이 한 게임 플랫폼의 협업 스타일을 입 모아 성토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영국의 인디게임 배급사가 시작한 분노 섞인 폭로에, 다른 기업과 언론이 가세하면서 여러 불만 사항이 열거됐다. 다른 플랫폼에 비교해 ‘너무하다’는 비판을 받은 이 플랫폼은 어느 기업인지,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6월 30일 영국 배급사 ‘네온 독트린’의 대표 이안 가너(Iain Garner)는 공식 트위터에서 “이것은 ‘플랫폼 X’에 대한 이야기다”며 미지의 특정 기업을 겨냥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플랫폼 X’의 정체에 대해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게임패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콘솔 플랫폼”이라고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이 설명에 부합하는 플랫폼은 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좁혀진다. 그리고 가너는 이어지는 폭로 및 유저들과의 대화에서 ‘플랫폼 X’가 PS를 뜻한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가너는 소니와의 관계 악화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폭로’를 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니와) 연을 끊을 각오를 했을 정도로 나는 화가 났다. 어차피 활용하지도 못할 연줄인데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적었다. 과연 가너는 왜 이토록 화가 난 것일까? 그가 소니의 정책에 표출한 불만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게임 출시 자체가 어렵다.
▲까다로운 가이드라인 준수 체크 ▲전용 트레일러 제출 ▲공식 블로그용 게시글 제출 ▲각 소셜 미디어용 문서 양식 제출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 개발사가 PS 스토어 내에서 게임을 관리할 수단이 없다.
- 소니가 게임을 맘에 들어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홍보도 기대할 수 없다.
- 소니가 내린 평가만으로 게임 홍보 여부가 결정되지만, 평가 절차는 비공개다. 심지어 게임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 개발사 의지로 제품을 할인할 수 없으며, 플랫폼이 보내는 ‘초대’를 받아야만 할인행사 참여가 가능하다. 하지만 초대는 거의 오지 않는다. 명망 높은 인디 개발사들조차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여러 제약보다 가너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소니가 제안하는 ‘대안’인 듯하다. 가너는 “스토어 노출을 보장받는 방법이 있긴 하다. 최소 2만 5,000달러(약 2,831만 원)의 ‘합리적’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물론 판매 수수료 30%는 별개다”고 적었다. 가너가 언급한 홍보 비용은 최대 20만 달러(약 2억 2,636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결론 내리자면 ‘플랫폼 X’는 매우 성공한 멋진 하드웨어지만, 관련 업무 절차는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이 글을 본 게이머 여러분은 혹시나 좋아하는 게임이 ‘플랫폼 X’에서 할인을 하지 않거나 출시되지 않는다면, ‘플랫폼 X’ 측에 불만을 제기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다른 몇몇 인디 게임사도 가너의 비판에 동조했다. <디센더스>, <렛츠 빌드 어 주> 등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노 모어 로봇츠’ 대표 마이크 로즈는 “어쩐지 매우 익숙한 이야기”라며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도즈 어섬 가이즈’의 대표 크리스천 보티아는 더 직접적으로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PS 세일에 참여하려면 오지도 않을 초대장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3분기 출시된 우리 게임은 PS에서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많은 인디 개발사가 같은 처지에 처해있다. 타 플랫폼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타이틀마저 외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전했다.
가너와 함께 트위터 상에서 업체명을 밝히고 소니를 비판한 기업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익명이 보장되는 언론 제보를 통해서는 더 많은 폭로가 이뤄졌다. 게임 매체 ‘코타쿠’는 가너의 폭로를 보도한 뒤, 다수의 개발사로부터 관련 제보를 받았다며 소니에 대한, 그리고 PS 스토어 정책에 대한 업계 불만을 추가 보도했다.
코타쿠가 밝힌 제보자들의 공통적 견해 중 하나는 소니의 PS 스토어 구조 및 운영 정책이 다른 기업에 비해 월등히 인디 개발사들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2만 5,000달러라는 만만찮은 홍보금액은 부차적 문제다. 실제로 Xbox 등 다른 플랫폼도 비슷한 가격의 프로모션을 운용 중이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PS 스토어의 경우 이것이 게임을 노출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개발사들은 Xbox, 닌텐도와 같은 타 플랫폼과의 직접적 비교에 나섰다. 여타 플랫폼의 경우,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게임을 노출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돼있다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닌텐도는 자체 스토어인 ‘e 숍’의 ‘NEW’ 탭이나 ‘할인’ 탭에서 인디 게임들이 무료로 자동 노출된다. 더 나아가 유료 홍보 탭 안에 신작 인디 게임을 넣어줄 때도 있고, 프로모션 비용 할인도 진행한다. Xbox도 비슷하다. 한 인디 개발자는 “Xbox의 스토어 페이지는 너저분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만큼 게임을 노출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반면 PS 스토어의 사정은 정 반대다. ‘특집’으로 취급되지 않는 한, 게임을 찾기가 놀랍도록 어렵다. 한 개발자는 “새롭고 흥미로운 게임을 발견할 공간이 스토어에 존재하지 않으면, 유저들은 말 그대로 검색 기능을 사용해서 게임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why the f**k) 내가 소니에 30% 수수료를 내야 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정책 차이는 실제로 판매량 격차로 이어진다. 한 개발자는 Xbox에서 자기 게임을 2만 카피 판매할 동안, PS에서는 7,000여 개를 파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추후 내놓은 DLC의 사례는 더욱 극단적이다. Xbox에서 2,000개가 판매되는 동안 PS에서는 고작 7개가 팔렸다.
일방적인 할인 행사 운영에 대한 비판도 뒤를 이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PS 플랫폼에서 퍼블리셔 및 개발사는 직접 세일을 진행할 수 없고, 소니의 ‘초대’를 받아야만 할인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할인의 '기회 제한'만큼 문제가 되는 것은 할인율이다. 한 개발자는 "소니는 ‘초대’를 보낼 때 40~50% 할인율을 제안한다. 여기에 맞서서 나도 제안을 내놔야 하는데, 이때 '30%를 제시하지 않으면 나를 행사에서 제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타 플랫폼에서 더 완만하게 할인할 계획을 세웠었다고 해도... (PS에서의 할인이) 가격전략을 망쳐버린다. 정말 좌절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부는 인디 개발사들의 생리에 대한 소니의 몰이해가 사태 악화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한 개발자는 “소니는 인디가 뭔지 모른다. 전혀 모른다. 백만 달러 언저리 예산의 게임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레드 스레드 게임즈’ 소속 개발자 랑나르 토른퀴스트는 트위터에서 “솔직히 말해 PS에서 세일을 진행하고 싶을 때,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우주의 진공 속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기분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해결 노력은 이뤄지고 있을까? 다른 개발자는 “소니 역시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심지어 이를 개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 하지만 정작 아무 정책도 바꾸지 않아 사태는 지속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비판을 처음 제기한 가너는 소니의 이런 태도가 결국 소비자에게까지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타쿠 인터뷰에서 그는 “더 안 좋은 사실은 (소니가)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더 적은 옵션, 더 나쁜 가격을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니의 사고 논리를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