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P2E 기사에요? 이제는 PaE(플레이 앤 언)이라고요?
연일 P2E(Play to Earn) 게임 관련 기사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업계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게임사 발표에서 QnA 시간이 주어지면 NFT 관련 질문이 항상 등장한다. P2E 게임을 국내에 서비스하기 위한 몇몇 기업과 정부의 소송 소식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해외도 같다. '유비소프트, '스퀘어 에닉스'등 유명 해외 기업이 자사 게임에 NFT 도입을 선언한 지 오래다.
이에 대한 게이머 반발도 상당하다. 가령 유비소프트의 NFT '쿼츠'는 첫 공개 동영상에서 수많은 팬의 '싫어요' 세례와 비판 댓글을 마주해야 했다. 2022년 발매 예정인 우크라이나의 FPS <스토커 2>도 NFT 도입을 선언했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해 하루 이틀 만에 결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게이머의 NFT에 대한 반발과 정부의 규제를 의식한 듯 업계에서 새로운 단어가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PaE(Play and Earn - 플레이 앤 언). '게임성 자체'로 유저들을 사로잡고, 게임을 오래 즐긴 유저들에 대한 '보상'의 개념으로 NFT 재화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선 대략적인 흐름을 아는 게 중요한 법. NFT 게임의 시작부터 밟아나가 보자.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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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트레이딩 게임'
NFT의 게임 도입은 '트레이딩'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14년 최초의 NFT 중 하나로 여겨지는 픽셀 모양의 팔각형 그림 '퀀텀'이 등장하고, NFT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온갖 요소에 NFT가 도입되고 거래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슬픈 개구리'로 유명한 '페페'의 그림도 '레어 페페'라는 이름을 통해 거래됐다.
이에 17년 6월에는 '크립토펑크'가 만들어졌다. 이더리움 기반의 NFT로, 10,000개의 고유한 아바타를 형성해 이를 거래하는 개념이다.
<크립토펑크>
17년 10월에는 캐나다 밴쿠버 소재 스타트업 액시엄 젠(Axiom Zen)에서 이더리움 기반 최초의 NFT 게임 <크립토키티>가 출시됐다. 크립토펑크가 제한된 개수의 아바타를 거래했다면, <크립토키티>는 '고양이'를 거래한다. 고양이를 수집하고 교배해 새로운 고양이를 만들어 내고, 이를 코인과 거래하는 식이다. <크립토키티>는 본격적으로 NFT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NFT 게임은 이런 트레이딩 장르의 맥락에서 서비스되고 있다.P2E 게임의 순위를 매기는 'playtoearn.net'에 등록된 게임 대부분이 이런 방식을 따르고 있다. 단순한 행위나 재화 투입을 통해 NFT 아이템을 얻고, 이를 강화하거나 거래해 더 큰 이익을 창출하는 식이다. 이더리움의 TPS(초당 거래 속도)가 15~20 정도로 빠르지 않아 다른 게임 장르에 접목시키기 힘들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게임이라 한다면 <액시 인피니티>를 들 수 있다. 턴제 RPG로, '엑시'라는 가상의 동물을 모아 대전하는 게임이다. 그런 만큼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이 엑시 세 마리를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크립토키티>처럼 교배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판매하는 기능도 들어있는데, 퀘스트를 달성해 다른 재화를 수급해 차익 거래를 할 수 있다.
<크립토키티>와 <액시 인피니티>
# P2E 게임이 보인 한계
그러나 P2E 게임이 보인 한계도 있다. 이런 게임 내 경제 시스템에 블록체인이 들어간다면 P2E를 의도한 유저들의 유입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 게임 내 경제가 혼란에 빠질 확률이 높다.
특히 대다수 유저의 목적이 '코인을 획득해 파는 것' 하나가 된다면 게임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에 따르면, NFT 재화를 목표로 한 유저가 급증하면 통화량 증가로 재화의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한다.
NFT 재화가 게임 내부에서 돌며 순환하는 것이 아니고, 전부 현금 환전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 그렇다면 코인 가치가 하락해 환전 수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구매하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사람만 있기 때문. 환전 수익이 감소하면 수익을 목적으로 한 유저는 게임을 떠난다. '버는 것'이 목표니까, 당연하다.
이런 양상이 반복된다면 하나의 NFT 게임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또 다른 NFT 게임이 부상했다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MS 게임 부서 부사장 '필 스펜서'가 P2E 게임에 대해 "착취적"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이런 기조에서 비롯했다.
실제로 1세대 P2E 게임 <액시 인피니티>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모든 재화가 수익화를 위해 사용되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게임 재화의 현실 가치가 약 5개월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액시 인피니티>의 엑시를 거래하는 사이트 '액시 인피니티 마켓플레이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조금 더 강한 어조를 사용하면, P2E가 일종의 "폰지 사기"라는 말도 있다. 중국 게임 플랫폼 'X.D. 네트워크'의 CEO 황이멍(DashHuang)은 12월 16일 트위터를 통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P2E게임은 폰지 사기에 가깝다"라고 밝혔다. 폰지는 실제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서,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투자금을 모아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다단계를 말한다.
황이멍은 "P2E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자신이 벌고자 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판단해야 한다"며 "만약 돈이 게임 자체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길 원하는 신규 사용자에게서만 창출된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도박 게임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다.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는 인게임 활동 보상으로 자체 화폐인 '무돌'을 지급했는데, 이는 빗썸에 상장된 다른 암호화폐인 ‘클레이’(KLAY)와 스왑하는 과정을 통해 현금 수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위가 사행성을 이유로 등급분류 결정을 취소하겠다는 소식이 나오자 이용자가 대거 이탈하면서 한 때 552원까지 올라갔던 무돌의 시세는 29일 기준 8원까지 떨어졌다.
무돌 (출처 : DEXATA)
# 플레이 투 언에서 플레이 앤 언?
이에 기존 흐름에서 일부 변화한 시도가 포착되고 있다. 플레이 앤 언(Play and Earn, PaE)이라는 개념이다.
먼저, P2E라는 단어 자체는 우리말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2021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에서는 to 부정사의 부사적 용법 중 무엇에 해댱한다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주로 사용되는 의미는 플레이(Play)의 결과(to)로써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뜻. P2E를 이야기하는 많은 게임사가 이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to를 '목적'으로 해석하면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 NFT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진 대부분의 게이머도 해당 의미로 P2E를 이해하고 있다. 돈을 벌기(to earn) 위해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P2E'를 표방한 1세대 게임들은 현세대 게임과는 차이가 있는 단순하고 트레이딩 위주의 시스템을 가진 게임이 대다수다. 게임성 '자체'로 유저를 끌어모았다고 이야기하긴 힘들다.
PaE는 여기서 약간 궤를 달리하고 있다. 용어를 사용하는 측에 따르면, 기존 NFT 게임은 블록체인 기반 위에 게임이란 개념을 얻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트레이딩 게임이 대다수였다. PaE 게임은 게임 위에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을 얻는다. 기존 게임 시스템 안에 NFT가 포함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to 부정사의 첫 번째 개념과 일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성 자체로 유저를 사로잡고, 오랜 기간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를 위한 보상으로 NFT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출처 : 빅게임스튜디오)
위메이드의 RPG <미르 4>도 일정 부분에서는 해당 개념 안에서 서비스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래 2021년 첫 출시 때만 하더라도 <미르 4>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K-판타지"였다. 처음부터 P2E 게임으로 홍보되기보다는, <미르> IP의 계승작이라는 면모가 강했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며 P2E 게임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은 글로벌 서버가 론칭한 2021년 8월경부터다. 또한, <미르 4>는 네트워크 간 처리 시간이 소요되는 블록체인을 MMORPG 시스템과 접목시키기 위해 복수의 체인을 브릿지에 연결한 위믹스 체인 구조를 구축했다. 흑철 - 드레이코 - 위믹스의 삼단 구조를 가진 방식이다.
유비소프트의 '쿼츠'도 이 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쿼츠는 19년 발매된 <고스트 리콘: 브레이크포인트>이란 게임에 실험적으로 도입됐는데,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NFT가 적용된 고유의 스킨을 획득하는 식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게임 안에 NFT를 도입시킨 것이다. 거래도 게임 바깥의 공인된 마켓에서 이루어진다.
<미르 4>. 최근에는 캐릭터 NFT도 도입됐다
# 단순한 이상인가, 실현 가능한 꿈인가?
현재 많은 개발사가 NFT 도입을 선언하고, PaE를 이야기하며 "게이머가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과연 PaE가 진정으로 게이머를 원하는 길일까? 아무리 PaE라는 개념을 강조한들 게임 내 재화를 현금화할 수 있다면 여전히 P2E를 목표로 한 유저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게임사가 구상한 이상적인 환경이 그대로 구현될 가능성도 있다.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P2E를 목적으로 한 유저를 차단하고, 순수한 '보상'의 개념으로써 NFT 재화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포함된 순간,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감각은 변화, 크게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게이머가 정말로 순수한 보상으로써 NFT를 받아들이고, '현금화'라는 목표에만 집중해 게임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유저를 원천 차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재료'를 모아 장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RPG의 경우 특히 그렇다.
게다가 게임 내 NPC에 NFT를 도입할 예정이라 발표했다가 유저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스토커 2>의 경우처럼 NFT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게이머도 상당하며, 국내에서는 넘어야 할 '규제'의 벽도 남아 있다. (계속)
게임사는 "보상"의 개념이기에 게임 플레이에 대한 감각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돈 이야기"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주제지 않던가
게임 재화의 '현금화'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게이머가 느끼는 감각은 변할 수밖에 없다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