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연방 노동부 산하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내 성추행·성희롱 사건 소송 합의안을 승인됐다. 3월 22일(현지시간)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합의 내용에 따라 사내 성희롱·성차별 피해자 보상 기금 1,800만 달러(약 213억 원)를 출연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합의 내용이 피해자들의 보상 규모를 되려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EEOC보다 앞서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고소했던 캘리포니아 정부 공정고용주택국(DFEH)은 EEOC의 합의로 인해 자신들의 소송이 심각한 방해를 받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EEOC와 DFEH 두 기관의 ‘충돌’은 2021년 10월경에 드러났다. 9월 말 EEOC의 ‘1,800만 달러 합의’ 윤곽이 잡힌 상황에서 DFEH는 법원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DFEH는 EEOC와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파기를 합의한 문서 중, 보상 청구인들의 성추행 증언 문건까지 포함되어 있어 DFEH 소송에 직접적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EEOC가 DFEH의 이의 제기에 공식 반박하는 과정에서, DFEH의 고소 및 이의신청에 법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DFEH의 소송을 주도한 법조인 2명이 과거 EEOC에서 일하며 액티비전 블리자드 조사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업 관련법상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방지 위반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공무원으로 일했던 개인은 재직 당시에 개인적, 실무적으로 관여한 사건에 관련된 고객을 변호할 수 없다. 이렇게 DFEH가 ‘역풍’을 맞으면서 이의제기가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렸다.
3월 22일(현지시간) 재판을 맡은 데일 피셔 연방 판사는 DFEH의 이의제기를 기각하면서 1,800만 달러 규모 성희롱·성차별 피해자 보상 기금 합의안을 승인했다.
합의 공청회에서 이의를 제기한 DFEH 측 변호인은 EEOC의 합의 진행 절차가 DFEH의 관할 업무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EEOC는 DFEH가 관할권 침해에 대해 항의할 시간적 여력이 수개월 이상 주어졌음에도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22일 법원 기록에 따르면 재판부는 DFEH의 이의제기 근거가 대부분 ‘추측’(speculative)에 불과하다며, “재판부는 합의안이 금전적, 비금전적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적당하다는 데 전반적으로 만족했다”고 판시했다. 이렇게 DFEH의 이의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합의가 최종 승인되었다.
일견 EEOC와 DFEH의 마찰은 두 정부기관의 관할권 다툼에 불과할 뿐, 피해자들의 실질적 보상 문제와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EEOC의 합의안에 따라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길도 열렸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EEOC 합의안 승인이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보상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지 로펌 대표 발언을 인용, “이번 판결은 분명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승리다. 합의로 잃은 금액은 (기업 규모보다) 작을 뿐만 아니라, (DFEH 등) 주정부의 소송을 효과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 주 정부기관의 소송은 보통 (연방기관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편이다”라고 전했다.
즉 EEOC를 통한 보상 판결이 한 차례 이뤄진 이상, DFEH가 소송에서 추가로 금전적 보상을 얻어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과거 이력 상 DFEH는 EEOC보다 더 많은 보상을 요구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EEOC 합의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전체적 ‘손실’을 최소화한 셈이라는 것이다.
합의안이 처음 나온 직후인 2021년 10월에도 보상 규모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미국 유력 노동조합 중 하나인 미국 통신노조(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CWA)는 1,800만 달러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전체 매출 규모에 비해 적은 양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2021년 순이익(net-income)은 88억 달러(약 10조 원)이다. 더 나아가 2020년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바비 코틱 CEO 한 사람에게 지급한 연봉은 1,500만 달러(약 181억 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합의 내용에 따라 액티비전 블리자드 내 성추행, 성폭력 피해자는 1,800만 달러 기금에서 자신 몫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DFEH 소송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