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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마스터 치프가 ‘그걸’ 했는데 왜 팬들은 화가 났나

드라마판 헤일로에 대한 일부 팬의 반감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05-16 18:25:36

마스터 치프가 ‘그걸’ 했습니다. 


게임 안에서는 아니고, 파라마운트 OTT 서비스에서 방영 중인 TV 시리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팬들은 양분됐습니다.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마스터 치프가 이야기 안에서 나쁜 짓이나 홀대를 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일부 팬은 화가 났을까요?

 

 

# “게임과는 다른 이야기”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은 <헤일로> TV 시리즈의 제작진이 처음부터 이 작품의 배경이 ‘게임과는 다른 세계’라고 못 박았다는 사실입니다. 원작 시리즈와 공유되는 요소가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별개의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세팅한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원작의 핵심 설정(core cannon)은 우리와 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서로 맞지 않는 설정을 꿰맞추겠다고 양쪽 세계관을 모두 ‘깨뜨리는’ 일을 막기 위한 가장 간단하고 생산적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면, 원작 <헤일로>를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일종의 ‘상호 불침 선언’인 셈입니다. 실제로 <헤일로> 드라마는 원작과의 차이점이 상당히 많지만, 이 ‘선언’ 덕분인지 그간 아주 본격적인 반발은 사지 않았습니다.

 

원작과의 파격적 차이점을 하나 꼽자면 주인공 ‘마스터 치프’의 맨얼굴이 1화부터 계속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0년의 IP역사 동안 이어진 불문율(다만 어린 시절의 마스터 치프 얼굴은 공개된 적 있습니다)이 깨진 것이었으나 반감은 생각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헤일로> TV 시리즈 스틸)

 

# 그런데 ‘그것’은 다르다?

 

그런데 마스터 치프의 성관계 장면을 두고 왜 더 큰 잡음이 일고 있을까요? 20년 동안의 금기였다는 점에서는 ‘얼굴 공개’와 비슷한데, 어째서인지 이쪽의 반발이 더 심해 보입니다.

 

우선 성관계는 얼굴 공개와 달리 마스터 치프의 본질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에서 마스터 치프를 비롯한 ‘스파르탄-II’는 어린 시절 정부에 납치되어 감정과 성욕을 억제당한 실질적 의미의 인간병기입니다. 원작 게임과 소설의 전반적 톤 역시 성애 묘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드라마 <헤일로>는 원작과 다른 세계이며, 제작진은 마스터 치프를 더 ‘인간적인 인물’로 그리겠다 공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 아이덴티티를 이끄는 주인공의 핵심 특성이 자꾸 희미해진다는 면에서, 팬 일부는 이제 이 드라마를 <헤일로>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제작진이 원작의 유명세를 이용하고 있을 뿐, 원작이나 원작 팬에 아무런 애정이 없다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사진: <헤일로> TV 시리즈 스틸)

 

 

# ‘레이지 라이팅(Lazy writing)’ 비판까지

 

오래된 IP가 다른 미디어로 재해석되면서 설정이 크게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현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호평받는 작품도 많습니다. <셜록 홈스>의 시대 배경을 현대로 바꾼 <셜록> 시리즈 등이 그 예시입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그저 편의적인 이유로 원작의 ‘까다로운’ 부분에 손을 댔다고 판단될 경우 좋은 평가를 얻기 힘듭니다.

 

현재 <헤일로>의 ‘베드신’은 제작진이 강조한 마스터 치프의 인간적 묘사에 기여하기 보다는 편리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어색하게 삽입됐다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스터 치프의 상대 캐릭터 ‘맥키’는 코버넌트에게 어린 시절 납치당해 자라난 인간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포러너’(Forerunner)라는 고대문명 유적에 감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감정적 유대가 형성되는데, 그 묘사가 충분히 공감을 사지 못해 잠자리를 같이하기까지의 과정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맥키는 사실 코버넌트의 첩자였고, 마스터 치프가 그에 대한 경계를 늦췄던 탓에 리치 행성이 위험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클리셰’하다는 점에서 ‘레이지 라이팅’으로까지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이지 라이팅(lazy writing)은 작가가 스토리 전개상의 편의를 위해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매우 흔한 설정을 남용하는 관행을 말합니다. 극 중 연인이 헤어져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아무런 전조 없이 ‘사실 남매였다’는 설정을 집어넣는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극중 마스터 치프(왼쪽)과 맥키 (사진: <헤일로> TV 시리즈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