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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에 나온 'D&D' 향한 오해, 그 실제 역사는?

‘D&D 클럽’은 왜 ‘악마 숭배 클럽’이 됐나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05-31 11:36:22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의 파트 1이 얼마 전 공개됐습니다. 촘촘한 서스펜스와 드라마로 감동과 재미를 함께 선사하면서, 시리즈가 기존 일구어 놓은 성공 공식을 다시 한번 재현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80년대 배경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미스터리 SF이면서 시대극이기도 합니다. 시즌마다 당대 화제였던 사회현상이 몇 가지씩 등장하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던전 앤 드래곤>(이하 D&D)을 향한 시대적 편견이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D&D>는, 극 중에 잘 묘사된 것처럼 온갖 음성적 행위의 온상으로 여겨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시선이지만, 아직도 게임 미디어 전반이 비슷한 ‘혐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지금의 게임 문화와 그저 무관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드라마를 통해 현지에 실존했던 ‘<D&D> 패닉’ 현상을 알아봅시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4 파트1>스틸 (출처: 넷플릭스)

 

 

# <기묘한 이야기>와 <D&D>

 

<기묘한 이야기>에서 <D&D>는 시즌 4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를 꿰는 핵심 테마입니다. 주인공 일행이 ‘절친’이 된 계기도, 함께 미지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하는 과정도 전부 <D&D>와 연관돼 있습니다.

 

이렇게 비중이 높게 묘사되는 것은, <기묘한 이야기>가 애초에 <D&D>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시리즈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즈의 PD 맷 더퍼는“우리는 <D&D>를 꼭 소재로 삼고 싶었다. <D&D>는 역할극이라는 요소 때문에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몰입감이 높다. 어떻게 보면 <기묘한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D&D> 캠페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처럼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역할 분담’을 통해 다른 차원에서 온 괴물들에 맞섭니다. 각자의 장기를 십분 활용, 서로 협력해 변화하는 위기에 대처해 나가는 절묘함은 <기묘한 이야기>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더 나아가, 좀처럼 초자연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어른과 달리 주인공들은 기민하게 적응하고 창의적 해결법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것 또한 <D&D>와 관련이 있는데, 주인공들은 여러 차례 캠페인을 플레이하면서 비현실적 문제에 대처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순수함, 상상력, 우정 같은 청소년 특유의 때 묻지 않은 마음과 정신이 여타 ‘어른스러운’ 가치들에 결코 못지않다는 메시지를 계속하여 전합니다. <D&D>는 주인공들이 이런 기지를 꽃피울 수 있었던 토양이자 기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시즌 4에 등장하는 <D&D> 모임 '헬파이어 클럽' (출처: 넷플릭스)

 

 

# <D&D>는 왜 경계의 대상 됐나

 

드라마에서의 묘사만 본다면 긍정적이기만 한 <D&D>는 왜 주류 사회의 ‘공격’을 받았을까요? <D&D>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1979년 벌어진 제임스 댈러스 에그버트 3세 실종 사건부터입니다.

 

16세 나이로 미시간 주립대학에 조기 진학했던 영재 에그버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이에 에그버트의 부모는 사설탐정 윌리엄 디어에게 수사를 의뢰했고, 디어는 당시 에그버트가 <D&D>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후 디어는 언론에 <D&D>가 실종에 연관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언론이 이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괴담이 크게 확산하게 됩니다.

 

사실 에그버트는 우울증과 마약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실종 당시 캠퍼스 내의 터널에 몸을 숨긴 채 지내며 여기서 자살 기도를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개월의 잠적 끝에 에그버트는 사회로 돌아왔지만 1년 후 결국 총기를 이용해 목숨을 끊고 맙니다. 이때 대중 일각에서는 정신건강이나 약물이 아닌 <D&D>에 비극의 원인을 돌리는 기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그버트 실종 조사를 의뢰받은 탐정 윌리엄 디어가 쓴 회고록 <던전 마스터>. 이 책에서 디어는 에그버트의 문제가 <D&D>보다는 자기 성 정체성 고민과 어머니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었다고 인정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D&D>를 향한 사회적 경계심, 혹은 반감은 1982년 미국 고등학생 어빙 리 풀링의 자살 사건으로 본격화합니다. 어빙 풀링 또한 정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주변 증언이 있지만, 어머니 퍼트리샤 풀링은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들이 학교 교장 선생님과 <D&D>를 플레이한 사실을 문제 삼습니다.

 

퍼트리샤 풀링은 교장이 게임에서 아들에게 건 저주가 ‘진짜’ 저주였다며 교장을 고소하려 했고, <D&D> 유통사인 TSR까지 고소하길 원했습니다. 현지 법원이 소송을 모두 반려하면서 실제 송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풀링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풀링은 1983년 ‘BADD’라는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인 <D&D>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풀링과 BADD는 주로 기독교 매체와 보수 성향의 메이저 매체를 통해 반대 운동에 나섰는데 이것이 <D&D>에 타격을 입힙니다. 특히 ‘우상 숭배’나 ‘사탄 숭배’ 등 이단적 행위에 민감한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에서 ‘신’, ‘악마’, ‘주술’ 등이 등장하는 <D&D>의 세계관은 더 강력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다양하게 묘사됩니다. 일례로 극 중 괴물에게 연인을 잃은 조연 캐릭터가 주인공의 <D&D> 클럽을 ‘악마 숭배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과정은 풀링의 사례를 연상시킵니다. 한편 1985년 실제 미국의 저명 시사 프로그램 ‘60분’이 <D&D> 문제를 다룬 적 있는데, 드라마에서 해당 사실이 잠시 언급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D&D> 플레이어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는 상황 역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88년 미국 대학생 크리스 프리차드는 양부의 살인미수 사건으로 재판받았는데, 당시 경찰은 프리차드가 ‘공범’인 친구들과 함께 <D&D>를 플레이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파헤친 것으로 전합니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경찰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1985년 '60분' 방송에 출연한 퍼트리샤 풀링 (출처: 유튜브)


# ‘<D&D> 패닉’은 어디에서 왔나

 

당시 미국 기성세대의 <D&D>를 향한 ‘패닉’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지목됩니다. 그중 하나는 <D&D> 플레이어들의 주 연령층입니다.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당시 <D&D> 이용자는 어린이, 그리고 ‘영 어덜트’(young adult)라고 불리는 10대~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흔히 ‘나쁜 영향’을 받기 쉽다고 인식되는 나이대입니다.

 

여기에 <D&D>를 향한 부모들의 막연한 부정 인식이 겹치면서 공포는 심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퍼트리샤 풀링은 BADD를 통해 <D&D>가 “악마학, 마술, 부두술, 살인, 성폭력, 신성모독, 자살, 암살, 정신이상, 성도착, 동성애, 매춘, 사탄적 의식, 도박, 식인, 사디즘, 묘지 훼손, 악마 소환, 강령술, 점술을 가르친다”고 주장했고, 일각에서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일견 황당해 보이는 이런 설명이 ‘통했던’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는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관통하여 오컬트, 사이비 종교, 연쇄 살인, 무차별 테러 등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만연했고, 이 때문에 위험을 과민하게 인지하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바 있습니다.

 

1969년 찰스 맨슨의 컬트 집단 ‘맨슨 패밀리’가 할리우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포함해 여러 희생자를 살해한 이래, ‘컬트 살인 집단’의 존재는 미국인들의 머리에 각인됐습니다. 이후 70년대 사탄 숭배, 주술 등을 다루는 오컬트 문화가 태동했고, 78년에는 남미에서 미국 태생 자칭 목사 ‘짐 존스’의 사이비 종교 신도 900여 명이 집단 자살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찰스 맨슨 (출처: 위키피디아)

 

더 나아가 70년대 내내 조디악 킬러, 테드 번디, 존 웨인 게이시 등 유명 연쇄살인범이 매스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으며, 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신종 질병'이었던 후천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에 관련된 가짜뉴스 확산, ‘타이레놀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무차별 독극물 테러 등 전반적인 사회 불안을 유도할 만한 충격적 사건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런 끊임없는 불안을 종교를 통해 달래려는 대중의 욕구는 컸고, 이 덕분(?)에 기독교 근본주의(Fundamentalist) 목사들의 ‘TV 설교’가 큰 인기와 파급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퍼트리샤 풀링은 BADD와 함께 기독교 계열 미디어를 통해 <D&D>에 도덕적, 종교적 공격을 가했습니다. <D&D>가 ‘오컬트 신’을 믿도록 어린아이들을 세뇌하고 있다면서요.

 

정황을 보면 삼삼오오 모여 악마와 신을 언급하고, 죽음, 전투, 저주, 마법을 다루는 <D&D>의 게임 내용이 ‘잘 모르는’ 현지인들, 특히 기독교 신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심지어 실제 살인 사건 용의자들이 <D&D>를 플레이했던 사례도 수 차례 보도되었기 때문에 불안은 더 컸을 듯합니다.

 

물론 <D&D>가 전반적으로 억울한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출판사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 역시 현지 분위기에 ​맞춰 룰북에서 실제 종교적 색채를 띤 용어들을 희석하거나 교체해 나가야 했습니다.

 

극중에서 헬파이어 클럽의 수장 '에디'(왼쪽에서 두 번째)는 '연쇄살인' 누명을 쓴다. (출처: 넷플릭스)

 

 

# 패닉은 끝났지만

 

당연히 <D&D>를 옹호하는 여론도 없지 않았습니다. <D&D> 공동 창시자 게리 가이객스는 ‘60분’ 에서 퍼트리샤 풀링 등 반대 패널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그는 “<모노폴리>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이 없듯, <D&D>와 폭력은 연관성이 없다. 자신의 양육 실패를 간절히 다른 이유로 돌리고 싶은 부모들의 머릿속에나 연관성이 있을 뿐이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학계와 공공기관 연구에서도 롤플레잉과 부정적 심리상태 사이에 큰 관련이 없다는 연구는 다수 발표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 미국 자살연구협회, 질병통제예방센터, 캐나다 보건성(HWC) 등 기관은 롤플레잉 게임이 자살과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후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D&D>를 향한 사회의 패닉은 결국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서 자체는 사라지지 않은 채 타깃을 바꾸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기독교 단체가 <포켓몬스터>가 어린이들에 끼칠 악영향을 진지하게 경고했던 적 있었죠. 매체에 대한 부모 세대의 막연한 부정 인식과 자녀 양육상의 우려가 이런 ‘오해’를 심화하는 동력이라는 점에서도 <D&D> 패닉 당시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다만 매체의 본질적 성격과는 무관하게 그 이용에 있어서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D&D>가 직접 정신을 망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했지만, <D&D>를 빌미로 접근하는 ‘나쁜 사람’들은 실존하는 위험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의 아이들은 집 밖에 나서지 않아도 온라인 게임 상에서 ‘나쁜 사람’을 접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입니다.

 

온라인 게임과 스마트폰의 보편화는 어린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불특정 다수와 게임 세션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습니다. 이를 통한 어린이들의 범죄피해, 범죄지식 노출은 더욱 유념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극 중에서 천재 해커 ‘수지’는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란 예언 아닌 예언을 합니다. 그 말처럼, 인터넷 시대는 부모들의 자녀 게임 이용 지도에서도 전에없던 새로운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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