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아쉬운데…”
스팀 게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드디어 한국 및 아시아 등지에 상륙한 밸브의 휴대용 게임 기기 스팀덱. 그런데 8월 4일 예약 판매 개시 첫날 정식 구매 페이지를 열어본 유저들 사이에서는 다소의 실망도 터져 나왔다. 예상보다 비싸게 책정된 제품 가격 때문이다.
근래 크게 오른 원·달러 환율과 국제 공급사슬 불안, 아시아 지역에서의 유통 단계 추가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한 결과로 보인다. 현지에서 649달러인 ‘최고 티어’ 512GB 모델에 현재 원·달러 환율(약 1,300원)을 적용하면 이미 약 84만 7,400원이다. 실제 국내 정식 판매가는 이보다 약 15만 원 더 비싼 98만 9,000원으로 책정됐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가량이었던 스팀덱 최초 공개 당시 국내 게이머들이 기대했던 70~80만 원대 가격과는 큰 차이가 난다. ‘뛰어난 가성비’라는 최대 장점이 아쉽게도 사라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은 ‘하위 모델’인 64GB와 256GB 버전이다. 과연 ‘하위 버전’을 구매해도 큰 후회가 없을까? 한 번 알아봤다.
스팀덱의 버전별 가격 및 구성품의 주된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4GB 버전: eMMC 스토리지 / 일반 휴대용 케이스 / 589,000원
256GB 버전: NVMe SSD 스토리지 / 일반 휴대용 케이스 / 789,000원
512GB 버전: NVMe SSD 스토리지 / 전용 휴대용 케이스 / 눈부심 방지 스크린 적용 / 989,000원
명시된 것처럼 이들 모델은 스토리지 용량을 기준으로 티어가 각자 나뉘어 있으며 스토리지 외 다른 사양 및 구성품에서 성능과 관련해 큰 차이는 없다. 더 나아가 개발진은 세 개 버전 기기의 ‘퍼포먼스’는 서로 완전히 같다고 밝혔다. 각각에서 구동 가능한 게임 종류가 서로 완전히 같다는 얘기다.
그러나 스토리지 세부 스펙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 가장 저렴한 64GB 버전의 메모리는 eMMC지만 나머지 두 버전의 스토리지는 NVMe SSD 메모리다. eMMC는 주로 모바일 기기에 사용된다. 스팀덱에 탑재된 eMMC는 PCIe 2세대, 1레인을 사용하며 이 경우 이론상 최대 대역폭은 500MB/s이다.
한편 나머지 2개 버전에 사용된 NVMe SSD는 공개된 스펙상 PCIe 3세대, 4레인을 사용한다. 이때 최대 대역폭은 4GB/s다. 즉, 이론상 64GB 버전과 비교해 최대 8배 차이를 보인다.
스토리지 성능 차이는 인게임 상의 퍼포먼스보다는 게임을 처음 불러오는 속도에 영향을 더 많이 준다. 즉, 로딩을 마치고 일단 게임에 진입하고 난 뒤에는 스토리지 대역폭에 따른 게임 퍼포먼스 차이가 크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와 컨트롤러로 구성된 eMMC는 구조상 SDD에 가까우며, HDD보다 읽기 속도가 빠르다. 아직 PC에서 HDD를 이용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도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64GB 스팀덱에서 상식 이상의 불편이 예상되지는 않는다.
물론 64GB 버전과 256/512GB 버전 사이에 로딩속도 차이가 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두 종류 스팀덱을 모두 입수한 해외 리뷰어들의 실험 내용을 종합해본 결과, 게임별로 크게는 로딩 시간이 10여 초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게임 중간중간 잦은 로딩을 해야 하는 <폴아웃>, <엘든 링> 등 게임에서는 더욱더 체감될 수 있는 문제다. 더 나아가 인게임에서 실시간 로딩이 이뤄지는 오픈월드 장르의 경우, 초당 프레임 수 등 게임의 실시간 퍼포먼스에 직접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다만, 현세대 게임 대부분은 NVMe SSD의 속도를 온전히 활용하도록 개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적어도 현재로서는 NVMe SSD의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그대로 게임 퍼포먼스나 로딩 속도에 반영되는 상황은 아니다. 이는 일반적인 PC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가장 하위 티어인 64GB 버전을 사면 당장의 이용에 큰 불편함이 없을까? 아쉽게도 직접적인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절대적인 용량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
스팀덱 OS가 차지하는 기본 용량은 약 20GB에 달한다. 64GB 버전을 구매한다면 실제 사용 가능한 용량은 약 40GB가량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몇몇 인디 게임을 설치하기에 문제없는 수준이지만, 스팀덱 구매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 A 게임 구동’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스팀덱에 설치되는 게임 클라이언트가 PC에서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트리플A 게임들은 그 용량이 수십GB에 달하거나 100GB를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40GB 스토리지만으로는 이러한 게임들의 플레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어, 마이크로 SD를 통한 용량 확장은 거의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시중에서 마이크로 SD 구매가 어렵지 않으며, 가격 또한 비교적 저렴하다. 스팀덱 64GB 버전과 256/512GB 버전의 가격 차이는 20만/40만 원인 반면, 512GB SD카드는 5만 원대에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 용량을 쉽게 확보하더라도, 로딩 성능이 다른 환경과 비교해 심각하게 못 미친다면 매력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SD 카드를 사용할 때도 로딩속도에는 큰 문제가 없을까? 이에 대한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은 긍정적이다.
1,400만 구독자를 보유한 테크 전문 유튜브 채널 라이너스 테크 팁스는 스팀덱의 SD카드 로딩 속도를 SSD와 비교했을 때 “거의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유튜버 더 폭스(The Phawx)는 여러 게임의 로딩 속도를 나란히 비교한 영상에서 많은 경우 둘 사이에 몇 초 차이가 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 12~17초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물론 12~17초는 작지 않은 차이다. 하지만 64GB 버전과 다른 두 버전 사이의 가격 차를 생각하면, 약 5~6만 원의 SD카드 가격을 고려해도 여전히 감수할 만한 지점으로 보인다. 실제로 비교에 나선 테크 리뷰어 대부분은 64GB 구매를 ‘좋은 선택지'로 평가했다.
한편 최고 티어인 512GB 버전에는 다른 버전에 없는 ‘눈부심 방지’ 스크린이 적용되어 있다. TIG가 실제로 사용해본 결과, 화면에 반사된 빛이 이용자에게 거슬리지 않을 수준으로 잘 ‘필터링’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낮에 야외에서 이용할 경우 차이를 더욱 체감할 수 있는 듯하다. 하위 2개 티어 제품에 대한 해외 유저 사용기를 살펴보면, 이용자의 얼굴이 명확하게 화면에 반사되는 등의 문제로 플레이에 불편을 겪었다는 후기를 접할 수 있다. 반면 512GB 버전에서는 상이 비교적 흐릿하게 맺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덜하다.
다만 서드파티 보호필름 제품을 사용할 경우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한 문제다. 현재 해외 쇼핑몰에서는 다양한 가격대와 기능을 지닌 스팀덱 보호필름이 판매되는 중이다. 이 중에는 ‘눈부심 방지’ 기능을 겸하는 것도 있다. 물론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많지는 않아, 상황에 따라 ‘해외 직구’를 이용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고려할 사항이다.
유럽·북미 등 기존 지역에서와 달리, 국내에서 스팀덱은 ‘가성비 좋은 기기’로 인식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전히 여타 휴대용 PC와 비교했을 때는 투자 대비 효용이 뛰어나지만, 이미 PC를 보유한 게이머가 많은 상황에서 ‘보조 기기’로서 장만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가장 저렴한 버전조차 60만 원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PC게임을 장소에 구애됨 없이 즐길 수 있다는 특유의 확장성에 매력을 느끼는 소비자라면, 최고 티어를 고집하지만 않을 경우 가격과 효용 사이에 나름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가장 먼저, 스팀덱에서 최신 트리플A게임보다 비교적 가벼운 게임을 즐길 계획을 세운 유저라면, 64GB eMMC 스토리지 모델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다. 저사양 게임, 혹은 구작 게임을 즐길 경우 64GB의 기본 스토리지 안에서도 여러 게임을 설치해 즐길 수 있고, NVMe SSD 스토리지를 사용한 상위 버전들과 비교해 로딩 시간에서도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20, 40만 원의 추가 비용은 낭비가 될 수 있다.
256GB NVMe SSD 모델은 현재로서 비용과 효용 사이에 가장 균형 잡힌 타협안으로 보인다. 우선 기본 버전보다 20만 원 비싸지만, 스토리지 용량은 4배로 늘어난다. 이는 NVMe SSD의 속도로 한두 가지 트리플A 게임을 동시에 설치해두고 즐기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SD 카드를 추가 구매해 저사양 게임만 따로 설치, 관리한다면 부족한 용량에 허덕일 가능성도 줄어든다.
물론 512GB 버전에만 제공되는 '눈부심 방지 스크린'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512GB 버전의 경우 오히려 보호 필름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512GB 버전에 보호 필름을 부착하면, 표면의 '눈부심 방지' 효과의 의미는 퇴색된다. 물론 스마트폰에도 필름을 붙이느냐 안 붙이느냐에 대한 다소 논쟁은 있지만 이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다. 스펙상으로 디스플레이의 강도는 충분하지만 실생활에서의 스크래치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256GB 버전은 '포터블 트리플A 경험'이라는 스팀덱 고유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면서도 다양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재 가장 합리적이고 무난한 선택지로 보인다. 20만 원 더 비싼 상위 버전과 비교해 지니는 용량 상의 단점은 비교적 쉽게 보완 가능하다. 또한 '보호필름'의 경우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은' 특징으로 바라볼 여지도 있다.
3줄요약
1. 인디게임 중심으로 스팀을 즐기며 최대 10여초 정도 추가 로딩시간을 감내할 수 있다면 64GB 버전
2. 트리플A 게임을 1~2개 즐기면서 어느 정도 성능을 중시하고 보호 필름을 붙인다면 256GB 버전
3. 트리플A 게임을 4개 이상 동시에 즐기고, 모든 사양에서 최고를 원한다면 512GB버전
PS) 밸브도 밝혔지만 스팀덱은 사설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에 자신에게 맞는 기기를 구입 후 자기 책임 하에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밸브는 이에 대해 '지식이 충분한 사람만' 시도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업그레이드 시도 중 기기가 고장날 경우, 무상 수리는 제공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