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좋은 것 아니었어?”
4월 26일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수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불허를 결정했다. 지난달 2차 조사 결과에서 CMA는 맨 처음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콘솔 시장 경쟁 저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MS 입장에선 반전의 반전 끝 배드 엔딩을 맞이한 셈이다.
자연스럽게 MS와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항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결정 번복의 가능성과 시기 양면에서 MS에겐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다. CMA가 내린 최종 결론의 근거, 결정이 인수에 미칠 영향, 그리고 MS가 취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알아보자.
최종적으로 CMA가 문제 삼은 것은 콘솔이 아닌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에서의 독과점 가능성이다. CMA는 “클라우드 게이밍은 게이머들이 값비싼 콘솔 기기를 구매하지 않고도 원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의 중요도를 높이 평가했다.
한편 CMA의 이번 두 차례 조사에 따르면 MS는 ‘X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현재 전 세계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콜 오브 듀티>, <오버워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까지 독점 콘텐츠로 추가한다면, 현재의 독점적 지위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것.
CMA는 “MS는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MS는 액티비전 게임들을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 독점 콘텐츠로 만듦으로써 상업적 이익을 얻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추정의 근거는 MS의 ‘전적’이다. CMA는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해 그 산하 게임을 자사 플랫폼 독점 콘텐츠로 만드는 전략은 MS가 기존 여러 인수 사례에서 이미 사용해 온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라운디드>, <하이파이 러시> 등 현재 PS 콘솔에서는 플레이할 수 없는 MS 산하 개발사 게임들을 고려한 발언으로 추정된다.
만약 독점화 우려가 현실이 될 경우,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영국의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CMA의 판단이다. CMA는 “인수를 허용한다면 이는 시장 내 혁신 움직임을 급속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렇게 기업들의 경쟁과 혁신이 중단되면 고객들은 결과적으로 더 높은 가격, 더 낮은 품질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MS는 CMA의 우려에 직접적으로 답해 향후 10년간 특정 경쟁 게임사 플랫폼에 일정 범주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을 공급하겠다는 ‘해결책’(remedy)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CMA는 MS의 이러한 ‘행동적(behavioral)’ 해결책이 우려를 막기에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CMA가 말하는 ‘행동적 해결책’이란, ‘구조적(structural) 해결책’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수에서 문제가 될 만한 특정 행동(게임 독점)을 스스로 규제하는 국지적 대안을 말한다. CMA는 MS가 구체적으로 제안한 해결책들을 살펴본 결과 중대한 결점을 다수 발견했으며, 따라서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첫째, MS는 타사의 일반 온라인 스토어 등에 대한 게임 공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X클라우드와 같은 유형의 구독 서비스에 대한 게임 공급 의무는 누락되어 있어, 모든 사업 모델을 충분히 아우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둘째로, 윈도우즈를 제외한 맥 등 기타 PC 운영체제용 게임 공급 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셋째, 명시된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들의 공급 계약에 있어 그 세부적인 조건이 상호 동일하게 통일될 우려가 있다. 이는 일반적인 시장 상황에서는 게임별로 경쟁 논리에 따라 자유로운 공급 계약이 성사될 수 있어야 한다고 CMA는 전했다.
한편 MS가 이미 닌텐도, 소니, 엔비디아 등에 실제로 제안한 ‘<콜 오브 듀티> 10년 공급’ 계약에 대해서도 CMA는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도 계약이 충분한 효용을 발휘하려면 MS가 제안한 것보다 더 확실한 라이선싱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다.
MS가 독점 우려를 온전히 불식하고 싶다면 ‘행동적 해결책’이 아닌 ‘구조적 해결책’을 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CMA는 말한다. 즉, <콜 오브 듀티> IP를 매각하거나 액티비전 분사/매각하는 등 근본적 해결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
다만 이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법이다. CMA 역시 이 경우 “(액티비전이) 독립된 기업체로서 서비스를 운영할 만한 충분한 자산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인정했다.
CMA의 불허 결정은 MS의 인수 노력 전반에 타격을 줄 악재로 여겨진다. 빅테크 간의 인수 시도에 영향을 미쳐 온 영국, 유럽, 북미 등 핵심 지역 중 영국이 가장 먼저 반대표를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CMA의 결정은 다른 두 지역 규제기관의 결정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같은 안건을 검토 중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해 11월 심층 조사에 돌입했으며 5월 중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한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12월 MS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으며, 8월 1일 최종 사전 심리, 8월 2일 청문회를 진행한다.
만약 이들 중 과반이 반대 기조로 나서면, 인수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계약 자체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MS와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CMA 결정 번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먼저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SNS를 통해 “인수에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며 항소하겠다. CMA의 결정은 경쟁 저하 우려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방법이 아니며, 영국 내 기술 혁신과 투자를 저해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1억 5,000만 대에 달하는 타사 게임 기기에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러한 계약을 여전히 규제안에서 이행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CMA의 결정이 업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반했다고 비판했다. 스미스는 “오랜 시간에 걸친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관련 클라우드 기술의 작동 방식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해 결정이 이뤄진 데 특히 유감을 표한다”고 이야기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대변인 역시 “ CMA의 최종 보고서는 테크 기업에 매력적인 국가로 단장하겠다는 영국 정부의 야심에 배치되는 것이다. 우리는 MS와 함께 항를 통해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항소를 결정한 이상 MS는 당초 액티비전과 약속했던 인수 계약 마감 기한인 7월 18일을 지키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따라 양사는 마감 연장을 위한 재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인수가 최종 불발될 경우, 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약 30억 달러 규모의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
한편, 사내 성 추문 방치 문제로 인수 완료 시 액티비전 블리자드 CEO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었던 바비 코틱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에서 인수의 성패와 상관 없이 ‘무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인수 성공 시 코틱은 3억 달러 이상의 개인 인센티브를 지급받을 예정이며, 실패로 돌아간다면 현재의 직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코틱 역시 인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CMA 발표 이후 사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일에서 코틱은 “MS와 함께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이번 결정에 저항할 것”이라며 “항소에 이길 것이라고 자신한다. 인수 계약이 (시장의) 경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