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가 잘못 꿰였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 결정은 MS에게 있어 단일 지역, 혹은 단일 기관의 반대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술 산업의 주요 시장인 미국, 유럽, 영국 등지 독과점 규제기관 FTC, EU 집행위, CMA는 글로벌 빅테크(기술 대기업)들의 인수 시도에 있어 반대 기조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 중 가장 먼저 도출된 CMA의 반대 결정이 다른 두 개 기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실제로 인수 불허를 결정한 최종 보고서에서도 CMA는 직접 다른 두 개 기관과의 협력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보고서에서 이들은 “우리는 국제적 문제에 있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 EU를 포함한 각지 경쟁 관리 당국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FTC에게도 이것은 통상적인 절차다. FTC 가이드라인에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제적 사안의 조사에 있어, 미국과 해외의 경쟁당국은 상호 협력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그렇다면 MS가 CMA의 결정을 뒤집고, 나머지 두 기관에서도 인수 허가를 받아낼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들 규제 당국이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인수 시도에 보여온 태도를 통해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보자.
CMA는 이미 불허 판단을 내렸지만, MS는 저항 의지를 대대적으로 천명한 상태다. 특히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노골적으로 영국 정부와의 ‘관계 악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협박에 준하는 발언 수위를 보여 눈길을 끈다
CMA 결정 이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미스는 “CMA의 결정에 우리는 실망했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영국에게 안 좋은 일이다. 기업들, 투자자들, 그리고 전 세계 기술 업계가 이번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 CMA는 이들에게 영국에서의 투자 및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본다.”고 발언했다.
이어 스미스는 영국에 대한 MS의 지원 철회 가능성을 내비쳤다. 스미스는 “MS는 영국의 사업체 및 비영리단체를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의 사이버 안보 강화에까지 기여해 왔다. CMA의 이번 결정은 향후 영국의 테크 산업 발전 가능성에 있어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고 말했다.
MS의 항소심을 맡아보는 것은 영국 경쟁심판소(CAT)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항소 절차에는 일반적으로 9개월이 소요되며, 만약 MS가 승소하더라도 사안을 CMA가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는 프로세스다. 따라서 MS가 당초 목표했던 7월 이전 인수 절차 완료 목표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CAT가 MS의 손을 들어 주더라도 최종적으로는 MS가 이상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인수 실패 결론에 도달한 메타의 전례 때문이다.
메타는 2020년 GIF 공유 플랫폼 지피(Giphy)를 인수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DM에 삽입될 GIF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메타는 지피를 인수한 뒤에도 이를 ‘개방된’ 서비스로 유지하겠다는 태도였지만, CMA는 이것이 충분치 않다고 봤다. CMA는 인수가 완료되면 여타 기업의 지피 접근성이 낮아져 경쟁이 저해될 수 있다며, 메타에게 지피 매각을 명령했다.
메타는 2021년 11월 지피 인수가 ‘모든 유저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항소에 나섰다. 이에 CAT는 CMA의 관점을 지지하면서도, 메타와 지피의 추가 제출 문건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CMA는 재심사 끝에도 원래 판단을 유지, 지난 10월 매각을 재차 명령했다. 결국 메타 역시 태도를 바꿔 결정을 수용한 상태다.
EU 집행위는 2010년 구글을 반독점 혐의로 조사한 이래, 스스로를 ‘빅테크 규제의 선봉’으로 내세워 왔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 구글의 핏빗 인수 등을 차례로 조사하면서 미국에 비해 수년 앞서 빅테크 감시에 주력했던 바 있다.
2020년 12월에는 디지털 시장 내 글로벌 대기업들의 대기업 견제와 경쟁 질서 유지를 위한 디지털 시장법(DMA)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대기업의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 역할, 더 나아가 소비자와 판매자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타기업들이 제품 공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거대 인프라를 보유한 ‘관문 지기’(게이트키퍼) 기업들을 선별, 특별한 규제를 가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검색엔진, SNS, 채팅앱, 클라우드 컴퓨팅, OS 기업 등이 포함된다. 구체적으로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MS가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게이트키퍼 기업들이 지니는 의무로는 ▲모든 기업 인수 계획을 당국에 고지할 의무 ▲고객이 접근하는 화면상에 자사 제품을 타사 기업 제품보다 많이 노출하지 않아야 할 의무 ▲주요 서비스를 통해 수집한 고객 정보를, 다른 기성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제품 출시에 활용하지 않을 의무 ▲유저들이 기존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고 새 소프트웨어를 깔도록 유도하지 않을 의무 등이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2021년에는 EU 내 ‘기업결합 당사 기업들의 글로벌 매출액 도합 50억 유로 이상, 최소 두 기업 이상의 EU 내 매출액 2억 5,000만 유로 이상’에 한해서만 기업결합 신고 의무를 부여했던 기존 조항의 해석을 확대했다.
즉, 매출액에 미달하는 합병이더라도 권역 내 시장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EU가 이를 검토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 향후 경쟁사가 될 만한 소규모 기업을 미리 인수해 '싹을 잘라버리는' 유형의 인수 행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EU는 이른 시기부터 글로벌 빅테크를 감시하에 두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온 것에 비해, 실제로 기업들의 인수합병 시도에 대한 실질적 ‘저지력’ 측면에서는 다른 규제기관들에 다소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상기 언급된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 구글의 핏빗 인수 역시 EU는 최종적으로 허가했다.
EU 집행위는 이렇듯 빅테크의 구조 자체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구조적 해결책’(structural remedy)보다 ‘행동적 해결책’(behavioural remedy)을 선호해 온 편이다.
예를 들어 2018년에는 스마트폰 및 태블릿 제조사에 구글플레이 사용의 대가로 크롬, 구글맵 등 자사 애플리케이션 사전 설치를 요구한 구글에게 반독점 위반 혐의를 제기, 공방 끝에 최종적으로 41억 2,5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구조적 차원의 접근에 완전히 소극적인 것 또한 아니다. 2020년 9월 시작된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에서는 다른 두 기관과 함께 반대 의사를 표명, 최종적인 인수 무산에 기여한 바 있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