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으면 좋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1992년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설적인 존재 존 카맥은 게임에서 스토리에 대한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이는 게임의 본질은 플레이의 재미가 스토리보다 우선이라는 맥락을 당시 개발진에게 설명할 때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터넷 밈으로 남은 저 발언은 게임에 있어서 스토리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미로 쓰였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게임에 있어서 사람들은 스토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오늘날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있어서 내러티브라는 요소는 게임에 있어서 주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한 원로 각본가가 입을 열었다.
지난 3일,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수석 작가였던 데이비드 게이더는 자신의 트위터에 게임 업계가 글쓰기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글쓰기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평가’를 당하는 분야이며 예술이나 프로그래밍과 같은 ‘실제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와 달리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게이더는 "2016년 퇴사하기 전 바이오웨어도 내러티브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때 훌륭한 캐릭터와 서사 구조를 선보였던 바이오웨어조차 내러티브에 대한 의존도를 점점 줄여나감에 따라 글쓰기를 경시하는 풍조를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관련업계에서는 게이더의 이런 발언을 지금 환경에 빗대어 생각해볼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얼마 전 Buzzfeed 및 Vice와 같은 미디어 회사들이 상당한 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AI의 수준이 발전하면서 창작 활동, 특히 글쓰기 및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게임 업계의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라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여기는 풍조에 대해 경각심을 불어넣고자 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좋은 글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게이더는 "게임, 영화, 온라인 기사 등 분야를 막론하고 글쓰기를 우선순위에서 뒷전 취급한다면 좋은 글을 얻을 수는 없다"며, "글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딱 그만한 수준의 글만 얻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일반인의 글과 달리 내러티브를 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작가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데이비드 게이더는 게임계의 베테랑 내러티브 디자이너다. 1999년 바이오웨어에 입사하여 <발더스 게이트 2: 쉐도우 오브 앰>을 시작으로 <네버윈터 나이츠>,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등의 각본에 참여했다. 현재는 인디 게임 개발사인 서머폴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데이비드 게이더의 트위터 발언. (출처: 데이비드 게이더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