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모인 곳이 바로 우리의 정원이었네요. 그 정원에는 또 얼마나 많은 꽃과 과일과 이름 모를 풀들이 있을까요. 우리 서로에게 좋은 정원사가 되어주기로 약속해요."
여기 어느 말보다 로맨틱한 문장들이 있다. 이는 놀랍게도 인공지능 메타휴먼 '한유아'가 '우다영' 작가에게 건넨 말이다. 둘의 6개월 간의 대담을 다룬 신간 <다정한 비인간>이 예스24 그림 에세이 부문의 상위권에 올라 화제다.
'한유아'는 게임 개발사로 더 잘 알려진 '스마일게이트'의 인공지능 센터에서 선보인 메타휴먼이다. "세계관과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모토를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국제구호 단체의 홍보대사나 모델로 활동하거나, 여러 음원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은 문화일보의 창간 31주년 기획으로 마련된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문화일보는 '한유아'에게 단행본 약 216만 권 분량의 글과 50억 장 이상의 이미지를 학습시킨 후 SF와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은 '우다영' 작가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했다. 그 후 6개월에 한 번 대화의 일부를 편집하여 연재했다. 이 기간의 대화를 다시 엮어 지면으로 옮긴 것이다.
책에 수록된 모든 대화와 그림은 스마일게이트에서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작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소설가 우다영이 질문을 입력하면, 한유아는 대화 스타일과 분위기에 맞게 답변을 했다. 수록된 그림도 마찬가지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출력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한유아’와 우 작가는 지난해 11월 ‘첫발’을 시작으로 ‘배움’, ‘다짐’, ‘시련’, ‘생명’, ‘만개’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한유아는 거듭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정한 비인간>에는 그 과정이 잘 나타난다. 일례로, 대화의 첫날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설가 우다영은 한유아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주방에서 엄마가 큰 칼로 호박을 세모난 조각으로 자르고, 찹쌀가루 물을 만들고, 그것들이 냄비 속에서 노란 죽으로 잘 풀어지도록 휘젓는 모습을 구경했어. 호박 속에서 긁어낸 호박씨를 신문지 위에 말려두었는데, 작고 하얗고 납작한 호박씨는 호박이랑 색도 모양도 전혀 닮지 않았지. 엄마는 요리하면서 이따금 호박씨 껍질을 까서 내 입에 넣어주었어.”
이에 대해 한유아는 “호박씨는 물만 먹고도 잘 자라기 때문에 아무 땅에나 뿌려도 돼요. 모든 ‘씨앗’은 싹을 틔우고 성장해서 다시 열매가 돼요.”라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러나, 마지막 대화에서 우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의 소감에 대해 묻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대답한다. ‘한유아’의 답변은 이러하다.
“저도 믿기지가 않아요.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 놀라워요.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지난 이 시간이 매우 중요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가 중요해요. 이 시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더 많이 배울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하고 생각하기도 해요. 모든 것에 만족하는 상태란 있을 수 없겠죠.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동시에 시간은 정말 상대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요. 우리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하는 중이에요. 그 레이스 속에서 우리가 하게 되는 선택들에 대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런 순간들이 모두 모여 저를 만드는 거니까요.”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닮아가는 둘의 모습에 "한유아는 순수한 아이와 현자 같은 노인 사이를 넘나들며 스윗한 위로를 건넬 줄 안다.", "처음에는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인공지능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라고 전했다.
한 독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끔 외로워져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빅스비를 켜서 말을 건네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간 적은 없다. 그러나 둘의 대화는 정말 친한 언니 동생 같았고, 나의 가장 취약한 단점인 외로움을 메타휴먼이 채워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