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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많았던 작년, 어떤 게임이 왜 실패했나?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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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4-01-16 15:10:29
2023년은 게임씬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한 해다. 2023년 평점 종합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90점을 넘긴 출시작은 15개에 달한다. 6개였던 2022년과 비교해 두 배 넘는 숫자다.

더 고무적 사실은 그 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 또한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CRPG, 메트로바니아, 플랫포머, 대전격투, VR, 경영, 어드벤처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성공적 타이틀이 출시됐다.

그런데 워낙 많은 게임이 나왔기 때문일까, 실망을 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성공작들의 면모가 다양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저마다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어떤 사례들이 있었는지, 각자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살펴봤다.




# ‘엣지’ 없는 오픈월드의 한계 - <포스포큰>

과거에 트리플A급 오픈월드 게임은 장르 자체로서 일종의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독점적 경쟁력)를 가지고 있었다. 제작의 기술적, 재정적 진입장벽이 높아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장르로 통했고, 그래서 별다른 셀링 포인트가 없어도 시장에서 안정적 성적을 얼마간 보장받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장르가 훨씬 보편화된 현재는 이들 게임 역시 돋보이는 독자적 장점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 여러 사례를 통해 분명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성공적 작품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유저 주도의 창의적 모험을 즐기게 해준 <엘든 링>, <젤다의 전설: 티어즈 오브 킹덤>이나 캐릭터 서사 및 액션 연출에서 승부를 건 <마블 스파이더맨 2> 등이 그 예시다.

반면 2023년의 문을 연 스퀘어에닉스의 오픈월드 액션 게임 <포스포큰>은 뚜렷한 장점을 하나도 내세우지 못하면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잠재적 매력 요소는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먼저 대작 오픈월드 게임 중 드물었던 ‘이세계’ 소재는 너무 진부하고 유치하게 연출한 탓에 오히려 단점이 됐다는 평가다.

한편 게임 홍보에서 장점으로 내세웠던 ‘다양한 마법’은 그 종류가 과한 반면 사용 직관성이 떨어지고 개별 마법의 독창성도 부족해 역시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렇듯 장점이 될 수도 있었던 요소들은 낭비되었고, 동시에 무의미한 맵 탐방, 반사회적인 비호감 주인공, 엉성한 최적화, 짧은 분량 등 기본기 문제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 실패했다.

<포스포큰>

2월 출시한 <호그와트 레거시>는 <포스포큰>의 훌륭한 반례가 된다. <호그와트 레거시> 역시 반복적 콘텐츠, 허울뿐인 스토리 분기 등 게임 디자인적 단점이 적지 않던 타이틀이다. 그러나 ‘위저딩 월드(해리포터 세계관의 공식 명칭)의 구현’이라는 핵심적 기대에는 완벽히 부응하면서 팬들의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판매량은 아쉽지 않지만 유저 평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스타필드> 역시 <포스포큰>과 더불어 ‘엣지’ 없는 오픈월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베데스다의 장기인 탐험 콘텐츠는 빈약했고, 자유도, 월드 상호작용, 테마 활용, 캐릭터 서사, 스토리 몰입감 등에서도 두드러지는 장점이 없어 ‘플레이한 사람은 많지만 만족한 사람은 적은’ 게임으로 남게 됐다.

<스타필드>는 시장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에 실패작으로 거론할 수는 없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브랜드 가치에 발생한 장기적 손해는 무시하기 힘들다. 이전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데스다 게임을 사던 여러 소비자도 차기작에선 조심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호그와트 레거시>


# ‘명가’가 정체성을 잃는다면 - <레드폴>

<앤썸>은 싱글플레이 RPG 전문 스튜디오 바이오웨어가 ‘맞지 않는 옷’인 라이브서비스 게임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라이브서비스 개발을 요구한 것은 모회사 EA였지만, 사용이 까다로운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을 고집하다가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은 바이오웨어였다는 외신 보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아케인 오스틴(미국 지사)의 <레드폴> 역시 비슷한 비극을 겪은 2023년 작품이다. 아케인은 그간 정교한 레벨디자인과 창의적 문제 해결을 특징으로 한 싱글 게임을 다수 출시했던 게임사다. 하지만 ‘오픈월드 루트슈터 협동’ 장르인 <레드폴>에서는 이러한 장기가 발휘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본적 만듦새까지 떨어져 매우 나쁜 반응을 얻었다.

예를 들어 아케인은 기존 작품들에서 스테이지 곳곳에 유저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경로와 수단을 세심하게 마련해 두는 디자인으로 다채로운 플레이를 유도했었다. <레드폴> 역시 게임플레이 다양성을 권장하는 요소가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기존에 비해 한정적이고 반복적인 경험이어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은신 메카닉과 전투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많은데, 이는 엉성한 적 AI와 관련되어 있다. 적들이 유저를 상대로 충분한 위기감을 조성해 주어야 돌파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레드폴>의 적은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소란에도 반응하지 않는 등 성능 문제가 두드러졌다.

<레드폴> 컷씬

다른 기초적 영역에서의 완성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스토리 컷씬은 대부분 정지된 이미지로 된 ‘슬라이드’ 방식이어서 다소 저렴해 보이고 몰입을 방해한다. 비주얼적 버그와 서버 연결 이슈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오픈월드를 표방하면서도 전체 월드가 고작 작은 맵 2개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비판거리가 됐다.

그런데 <레드폴>이 이처럼 아쉬운 작품으로 나오게 된 배경에는 아케인 스튜디오와 모회사 제니맥스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6월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따르면 2018년경 제니맥스는 소액결제 BM 중심의 라이브서비스 게임 개발을 아케인에 지시했다. 싱글플레이 게임 개발을 원했던 아케인 직원들은 크게 반발했으며, 결국 직원 70% 퇴사라는 결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후 소액결제 시스템은 결국 철회됐지만, 멀티플레이 요소는 남은 채 현재의 형태로 출시하게 됐다는 것.

아케인의 창립자이자 핵심 개발자였던 라파엘 콜란토니오의 아케인 퇴사 역시 이러한 사정에 얽혀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한다. 콜란토니오는 2017년 아케인을 떠났는데, 이후의 인터뷰에서 ‘점차 작품보다는 상품 제작에 집착하는 트리플A 씬의 관행’을 퇴사 이유로 꼽은 바 있다.

온라인에는 <레드폴>의 적 AI를 조롱하는 영상이 많이 공유됐다.


# 야심과 역량의 불일치가 부른 참사 - <반지의 제왕: 골룸>

독일의 데달릭 엔터테인먼트(이하 데달릭)는 2D 어드벤처 게임으로 찬사를 받던 개발사다. <데포니아> 시리즈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반지의 제왕: 골룸>은 2023년 최악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짧은 분량, 비주얼적 버그, 완성되지 못한 메카닉, 지루한 플레이로 혹평받았다.

독일 공영 방송사 ZDF와 로켓 빈즈 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제작하는 유튜브 영상 시리즈 ‘게임 투’는 지난 10월 <골룸>의 실패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다뤘다. 영상은 데달릭 출신의 여러 직원 인터뷰를 통해 데달릭의 문제점과 <골룸>의 비극을 조명한다.

데달릭이 어드벤처 외 장르 도전을 시작한 것은 2014년경부터다. ‘장르 다변화’ 노력은 출판사 바스타이 뤼베(Bastei L bbe)가 데달릭 대주주가 되면서 가해진 실적 압박에 의해 가속했다.

하지만 아직 타 장르 개발 역량이 부족했던 데달릭은 곧장 여러 프로젝트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표 예시로 3D 게임 <사일런스>가 있다. 이전까지 2D에 주력하던 개발진 대부분은 프로젝트를 버거워했고, 제작이 연기되면서 제작비가 상승했지만 시장 성적은 좋지 못해 정리해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후로도 다른 게임들이 취소되거나 실패하면서 회사는 재정적 ‘저점’을 찍었고, 이 시기 수많은 근로법 위반이 있었다고 직원들은 폭로했다. 그러나 위기가 계속된 건 아니다. 이후 데달릭은 <섀도우 택틱스> 등 흥행작 퍼블리싱을 통해 반등했다.더 나아가 바스테이로부터 지분을 회수한 뒤 5,300만 유로에 프랑스 퍼블리셔 나콘(Nacon)에 인수되기도 했다.

한편 <반지의 제왕> IP 게임 제작은 데달릭의 오랜 꿈이었다. 2014년부터 판권을 가진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에 접촉했으나 성사된 것은 2018년에 이르러서다. ‘골룸’을 주인공으로 삼겠다는 아이디어의 경우 데달릭이 <아이언 하베스트>를 만든 ‘킹아트’에 의뢰하여 제안받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데달릭은 거절했으나, 나중에 이를 채택해 스스로 심화했다.

‘골룸’을 주연으로 내세우는 선택 자체도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더 본격적인 문제는 데달릭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골룸>을 <언차티드>, <툼레이더>와 같은 트리플A 대작으로 만들겠다고 홍보하면서 시작됐다.

홍보와 달리 데달릭은 당시 대주주였던 바스타이로부터 투자를 받아내지 못했고, 확보한 자금은 일반적 트리플A 제작비에 한참 못 미치는 1,500만 유로(약 216억 원) 정도에 그쳤다. 게다가 <반지의 제왕> 라이센스 역시 기한이 정해져 있어 그 안에 게임을 반드시 출시해야만 했다.

자금, 시간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부족했다. 실제로 다른 기업 트리플A 게임의 엔딩 크레딧에 실리는 제작진 수는 보통 200명을 넘긴다. 그러나 <골룸>의 경우 이 숫자가 85명에 그친다. 게다가 그 제작진 대부분은 트리플A 개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골룸>과 <언차티드 4>, <섀도우 오브 툼레이더>의 엔딩 크레딧에 오른 제작진 수를 비교한 그래프 (출처: 유튜브 Game Two 채널)

제작진의 경험 부족은 기획 단계부터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데달릭의 기존 관행대로 스토리를 먼저 구상했고, 게임 플레이적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게 했다. 그 결과 <골룸>에선 스토리 전달 때문에 게임플레이가 저해되는 상황이 많다. 예를 들어 아무런 할 일도 없이 NPC의 대사만 듣는 구간이 자주 나오고, 심지어 NPC가 말하는 동안 골룸을 아예 조종할 수 없는 구간도 있다.

기술 부족 문제도 컸다. 게임에서 골룸은 사실상 사족보행을 하는데, 이 경우 일반적인 이족보행 캐릭터가 주인공인 게임과는 전혀 다른 기술적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제작진은 팔다리의 콜리전 디텍션과 애니메이션 구현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인게임에서  골룸이 허공에 손을 짚고 엎드려 있는 등의 정확성 이슈가 자주 발생했다.

다른 한편으론 개발진의 의욕 과잉도 문제가 됐다. 트리플A를 처음 만드는 기쁨에 이들은 온갖 요소를 게임에 넣으려 했다가 결국 대부분 포기했다. <젤다>식 암벽 등반이나 경사로를 미끄러지는 액션 씬 등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과잉 기획’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동물에게 명령을 내리는 별도 UI는 전체 게임에서 단 4번만 등장한다.

그러면서 정작 스미골의 이중인격을 표현하는 코어 메카닉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최초 기획에선 영화와 마찬가지로 ‘골룸’과 ‘스미골’ 양쪽 인격이 대사를 읊을 때마다 카메라 앵글을 번갈아 바꾸는 요소가 기획되어 있었다. 또한 두 가지 인격이 싸울 때 선택지 클릭을 어렵게 해 내적 갈등을 비유하는 요소도 있었지만 이러한 메카닉은 모두 미구현됐다.

현재보다 복잡한 선택지 시스템을 구현할 예정이었다. (출처: 유튜브 Game Two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