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어즈 주식 액면가격이 500만 원?”
게임업체 엔도어즈는 작년 11월, 1 주에 500 원인 주식 1만 주를 합치는 ‘주식액면병합’ 관련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500 원 X 10,000 = 500만 원짜리 주식이 탄생했고, 엔도어즈의 발행주식은 1,891만여 주에서 1,880 주로 대폭 줄었다.
그야말로 시가가 아닌, 액면가 500만 원짜리 주식이 한국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엔도어즈의 최대주주 넥슨이 주식액면병합에 앞서 소액주주에게 주당 액면가의 10배인 5,000 원씩에 팔 것을 제안한 것을 감안하면, 엔도어즈 1 주의 가격은 5,000만 원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일 기준으로 99만7,000 원을 기록, 한국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가장 높은 삼성전자의 시가보다 50배 이상 높다. 증권업계에서도 엔도어즈의 액면가 500만 원 주식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치”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이미 넥슨은 엔도어즈 전체 주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즉, 엔도어즈의 증권시장 상장 가능성은 극히 낮다. 엔도어즈의 개발력을 높이 평가해 인수한 넥슨이 당장 엔도어즈를 매물로 내놓을 리도 없다. 그런 가운데 단행된 주식액면병합은 그 배경에 관심이 더 쏠린다.
이에 대해 엔도어즈의 모회사인 넥슨의 최현우 홍보실장은 “엔도어즈가 본연의 회사 업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효율적인 경영관리를 하고자 임시주총을 실시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주식액면병합을 통해 엔도어즈는 주주의 수를 줄임으로써 주주관리를 포함한 공시 등의 업무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 10,000:1 주식병합, 어떻게 일어났나?
이번 주식액면병합의 시작은 2009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엔도어즈는 당시 자사 주식의 액면가를 5,000 원에서 500 원으로 낮추는 ‘액면분할’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엔도어즈의 주식은 10배가 늘어났다. ‘주식액면분할’은 소액 투자자의 주식 구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 실시한 것으로, 주식상장 이전에 주로 실시된다.
추가 증자를 실시한 엔도어즈의 주식 수는 2008년 말 168만 주에서 2009년 말 1,824만 주로 크게 늘어났다. 소액 주주도 1년 만에 207명에서 230명으로 다소 늘었다.
이후 넥슨은 2010년 5월 최대주주인 권성문 회장 지분을 포함한 엔도어즈의 지분 67%를 인수, 엔도어즈의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확보했다. 넥슨은 계속 엔도어즈 지분을 확보해 2010년 9월 말 기준으로 90%가 넘는 엔도어즈 주식을 확보했다.
지분 매입 과정에서 넥슨은 엔도어즈의 주식을 주당 액면가(500 원)의 10배인 5,000 원으로 산정해서 구입하겠다고 소액 주주들에게 제안했고, 소액주주의 상당수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소액 주주의 엔도어즈 지분율은 7.1%에서 2.0%로 떨어졌다.
그런데 엔도어즈가 2010년 11월 임시주총을 열고 주식 수를 1만분의 1로 줄이는 주식액면병합을 결의했다. 10배로 액면분할한 지 1년 반 만에 1만배로 주식수를 줄여 버린 것이다.
엔도어즈의 주식 수는 1,880 주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1만 주 이하를 갖고 있던 소액 주주들은 어떻게 됐을까? 엔도어즈는 비상장 주식의 평가방법 중에 하나인 ‘상속증여세법의 주식평가방법’을 적용해 주당 3,840 원에 소액 주주의 주식을 사들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엔도어즈의 주주 수는 10여 명으로 확 줄었다. ‘주주 수가 25 명 이하가 되면 공시 의무가 없어진다’는 자격에 부합하게 된 것이다.
■ 단주 처리된 소액 주주들, 소송으로 대응
단주로 처리된 엔도어즈 소액 주주들 중 일부는 작년 12월 법원에 자본감소무효 확인 소송을 내고, 엔도어즈 대표이사와 임원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 단주(端株): 증권 거래의 단위에 미달하는, 단위 미만의 주.
소액 주주들은 주식액면병합 이전의 엔도어즈 주식이 1만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엔도어즈가 개발한 <아틀란티카>가 국내와 북미,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수익을 거둬들였고, 넥슨이 엔도어즈를 인수할 당시의 가격이 그 수준인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액 주주들은 엔도어즈의 주식 가치가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넥슨이 제시한 금액은 예상가격의 절반인 5,000 원에 머물렀고, 결국 단주로 처리돼 3,840 원에 거래됐다. 소액 주주가 예상한 금액(1만 원)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팔게 된 것이다.
소액 주주들은 “특별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넥슨이 엔도어즈의 지분을 확보하고 소액 주주를 내쫓기 위해 10,000:1이라는 비정상적인 비율로 주식을 병합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 주식액면병합은 넥슨의 ‘순혈주의’ 따르기?
주식액면병합에 대해 엔도어즈는 “경영상의 이유을 목적으로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그 배경에는 넥슨의 ‘순혈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9년 전 세계 매출 기준으로 국내 게임업계 1위를 차지한 넥슨은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지 않다. (한국의) ‘넥슨’은 넥슨 일본법인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넥슨은 넥슨모바일, 넥슨네트웍스, 넥슨노바, 네오플, 실버포션, 코퍼슨스, 시메트릭스페이스, 이엑스씨게임즈 등 지분을 확보한 회사들의 주식 100%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 인수한 게임하이와 엔도어즈는 주식 100%를 갖고 있지 않다. 게임하이는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상태이므로, 사실상 넥슨이 게임하이의 주식 100%를 보유하기는 힘든 상태다.
엔도어즈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아직 증권시장에 상장되진 않았지만, 소액 주주의 수가 적기 때문에 넥슨이 마음만 먹으면 엔도어즈의 주식 수를 모두 확보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소액 주주를 대폭 줄인 엔도어즈는 2010년을 넘기지 않고 임시주총을 실시함으로써 올해 2월에 예정된 연말 분기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이제 엔도어즈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전대미문의 주당 액면가 500만 원짜리 회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