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앤소울>, <아키에이지>급이 아니면 눈길도 안 줘요”
올해 신작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할 예정인 중견 게임개발사 마케터 A씨의 하소연이다. 마케터 A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뛰어난 그래픽을 앞세운 <테라>의 후폭풍이 지나가나 싶더니 이번에는 <블레이드앤소울>과 <아키에이지>가 연내서비스와 베타테스트를 계획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사의 게임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개발비와 뛰어난 그래픽, 스케일을 앞세운 ‘때깔 좋은 게임들’ 속에서도 유저들이 자신의 게임을 바라봐줄 지는 의문이다. A씨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져 간다.
이는 비단 A씨만의 고민은 아니다. 올해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앞둔 개발사의 마케터들은 대부분 한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테라>에서 <블레이드앤소울>과 <아키에이지>로 이어지는 대작라인업 속에서 자신의 게임 존재를 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줄이은 대작게임으로 인해 괜찮은 게임 신작들도 이른바 ‘오징어’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다.
■ 그래픽, 액션, 자유도, 연출 ‘남은 게 없다’
중소게임의 가장 큰 난관은 그래픽이다. 업계관계자들은 “<테라>의 서비스 이전과 이후 유저들이 그래픽을 보는 눈높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언리얼엔진 3을 사용하고 대형 개발사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개발자들이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만든 <테라>. 이 게임이 그래픽을 앞세워 홍보하면서 유저들의 ‘잘 만든 그래픽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거기에 <블레이드앤소울>이 영상미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유저들의 눈높이는 한층 높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라> 이후 그래픽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가 됐다” 며 “시대에 뒤쳐진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그래픽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면서도 그래픽을 내세우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밝혔다.
그래픽 이외의 장점도 쉽게 내세울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올해 이후 서비스예정인 대작들이 각각 다른 특징을 내세우면서 중복을 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라>는 프리타겟팅 전투를 통한 액션을, <블레이드앤소울>은 영화와 같은 연출을, <아키에이지>는 뛰어난 자유도를 내세우고 있다. 세계관도 정통판타지부터 무협까지 다양하다.
온라인게임에서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골고루 가져간 셈이다. <마비노기 영웅전>과 <드래곤네스트>, <C9>의 MORPG 3인방이나 <아이온>, <프리우스> 등의 정통MMORPG 경쟁처럼 비슷한 장르와 비슷한 특성의 게임이 격돌하던 예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결국 “세 게임이 내세운 특징을 빼면 마땅히 내세울 만한 장점이 없다”는 게 중소게임을 서비스 해야 하는 마케터들의 고민이다.
올해 대작들은 장르와 게임 특성이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다.
■ 낄까? 말까? 계속되는 고민들
대작들 사이에서 마케터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작게임을 이용한 홍보’다. <블레이드앤소울>과 <아키에이지>에 자신들의 게임을 묶음으로서 새로운 ‘BIG 3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르카닉스>는 대작들 사이에 끼는 홍보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다. <블레이드앤소울>이 무협을, <아키에이지>가 판타지를 내세운 만큼 SF를 앞세운 <베르카닉스>의 세계관으로 3파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대작과의 정면 충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된다.
반면 타깃층에 맞춘 게임으로 틈새시장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게임도 있다. <러스티하츠>는 체감형 애니메이션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무겁지 않은 스토리에 웹툰과 소설 등 다양한 부가 콘텐츠로 젊은 유저층에 어필하겠다는 생각이다.
<열혈강호 2>는 정통무협이라는 소재를 통해 조금은 높은 연령층을 겨냥하고 있다. <블레이드앤소울>이 무협색을 지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열혈강호 2>는 반대로 무협을 더욱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한 업체관계자는 “어차피 매년 빅3라 불리는 대작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꼭 대작만 성공한 것도 아니다”라며 중소게임들이 지나치게 대작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올해 이후에도 <프로젝트 노아>, <프로젝트 R2> 등 유명 개발진과 큰 개발비가 투자된 대작 온라인게임이 계속해서 서비스를 준비 중인 만큼 중소게임을 서비스하는 개발사의 고민은 날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