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사전적인 의미로는 한 분야에 열중한 마니아보다 더 심취한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을 개발할 때도 오타쿠 요소를 포함시키자고 의견을 낼 경우, 대부분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오타쿠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 가야 하는가? 1일 있었던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 강연의 주제는 ‘편견 속에 감춰진 오타쿠의 이야기’였다.
강연자로 나선 넥슨 김현석 책임 연구원은 오타쿠가 가진 속성 중 장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편견에 가려진 오타쿠 문화의 장점은 무엇일까?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넥슨 신규개발 2본부 김현석 책임 연구원.
■ 다양한 오타쿠 문화, 그 속에 감춰진 편견
김현석 연구원은 진짜 오타쿠들과 만나면 평범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말한다). 관련된 지식도 얕고 그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오면 남들은 그를 오타쿠라고 부른다.
강연의 진짜 목적은 편견 속에 감춰진 오타쿠 문화의 장점.
프레젠테이션의 그림 한 장 차이로 거부감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생긴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 코스프레를 즐기는 이가 있다. 일반회사의 관리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차원이다. 그런데 그녀가 코스프레를 한 사진이 인터넷에 알려지고 나서 그녀는 사진을 지우는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숨겼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회사에 알려지면 안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감추려고 했다.” 즉 자신이 오타쿠라는 인식이 생기면 일반집단에서 밀려날까 불안했던 것이다.
바로 편견 때문이다. 헬스 트레이너, 교수, 노숙자라는 단어를 보여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어마다 고정된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트레이너는 근육질의 몸매, 교수는 머리는 좋지만 허약한 모습, 노숙자는 인생의 실패자라는 이미지다.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스즈미야 하루히>를 보는 것과 <마루밑 아루에티> 또는 <쿵푸팬더> 등을 보는 걸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인식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편견으로, 소속집단에 관련된 채색된 판단이다. 또한 오타쿠는 주관적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
■ 편견 속에 감춰진 이야기
김현석 연구원은 오타쿠에 대한 편견 속 감춰진 장점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산업적인 예를 들어 가며 풀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만화 <원피스>였다. 최근 62권이 발매된 <원피스>는 초판이 380만 부 발행됐다. 이를 수익으로 계산하면 작가는 1년에 31억2,228만 엔을 버는 결과가 나온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4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음반 시장의 불황 속에서 <케이온>의 앨범은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고 100만 장이 팔려 나갔다. 건담의 경우도 오다이바에 1:1 사이즈의 실물 건담 모형을 세울 만큼 산업적 가치가 있고 그 규모도 크다.
현재 오타쿠 시장의 키워드는 ‘모에’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 단어는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미디어믹스가 일어날 정도로 그 반향이 크다고 말한다. 소설이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음반으로, 콘서트로, 그리고 피규어로 만들어지면서 거대한 시장을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오타쿠 시장이 일반적 콘텐츠와 같은 장르면서, 동시에 그들과 경쟁하지 않고 독립적인 시장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연시’라고 불리는 성인게임(에로게)들이다.
게임은 흔히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콘솔게임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성인게임은 다른 장르와 경쟁하지 않고 ‘에로게’라는 독자 플랫폼에서 그들끼리 경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복잡하고 끼어들기 힘든 기존 게임시장과 달리 독점적인 시장을 만들어서 자립할 수 있다.
또 에로게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낸다. 헤드 트래킹을 게임에 사용한 것도 <TECH 48>이라는 성인게임이 최초였다. 처음에는 다들 무시하며 ‘오타쿠의 신기술’이라고 놀렸지만 지금은 <그란투리스모> 최신작 등에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김현석 연구원은 “오타쿠의 문화는 새로운 기회와 장르를 만들어 낸다, 또 기술의 응용과 적용도 가장 빨리 일어난다. 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가능성과 기회의 학습 효과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고정관념에 따른 편견을 버려라
동일 인물이 소녀시대와 같은 연예인 복장을 따라서 입으면 문화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옷을 입으면 오타쿠로 인식한다. 대표적인 편견이다.
이런 편견의 중심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있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정의를 수락하고 이를 이완시키면 ‘만화를 보는 어른들은 아이와 같은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으로 수렴해 버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고정관념에 따른 편견이다.
이는 게임의 사례에도 나와 있다. <모던 워페어 2>와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를 비교해 보면 명확하다. <모던 워페어 2>는 첫째 주에 178만 장이 팔렸다. PC, Xbox360, PS3 세 가지 플랫폼을 합친 수치다. 반면, 단일 플랫폼(PSP)로 나온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는 4일 만에 200만 장을 돌파했다.
초기 판매량 비교만으로 본다면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가 <모던 워페어 2>보다 대단한 게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몬스터헌터 포터블 3rd>는 ‘마니아’ 게임, <모던 워페어 2>는 ‘대단한’ 게임으로 인식한다.
즉 오타쿠는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부정적인 편견에 의해 객관화되고 있다. 편견은 고정관념에서 기인하며 사회심리의 버프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마디로 인간은 고정관념에 맞는 것만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김현석 연구원은 “냉장고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배고플 때 냉장고 안에 있는 것만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개발자라면 배가 고플때 마트에 가서 재료를 보고 식당에 가서 누가 어떤 것을 먹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형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임 개발자가 마음의 편견을 가진 상태로 게임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