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가 액션 RPG <디아블로 3>의 발매 하루를 앞둔 14일 서울 왕십리역 광장에서 D-1 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먼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13일 오전부터 사람들이 늘어서는 등 뜨거운 열기가 이어졌습니다.
오늘 이벤트는 게임업계 행사로는 이례적인 장관을 연출해 근처 주민들과 경찰 관계자, 길을 가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24시간 이상 기다린 끝에 <디아블로 3> 한정판을 손에 넣은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디스이즈게임이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김진수 기자
■ 139번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던 취업 준비생 공모 씨(21세)
“인천에서 출발해 13일 저녁 6시 행사장에 도착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그냥 밤을 새우고 현장에서 계속 기다렸다.
행사장에서 번호표를 지급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불만이다. 혼자 온 게 아니라 일행이 있었는데, 행사 주최측은 일행 중 한 명만 임시 번호표를 받으면 나중에 팔찌로 된 정식 번호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정식 번호표를 나눠줄 때 임시 번호표가 없다면서 발급해주지 않았다. 결국 20분 정도 항의해 정식 번호표를 받았지만, 번호는 300번대였다. 조금 늦게 구매하더라도 참을 수는 있지만, 미숙한 행사 진행에 대해 유저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화가 났다.”
■ 대기표를 받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문모 씨(32세)
“<디아블로 3> 한정판을 사기 위해 월차를 내고 안성에서 4시간 걸려 14일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행사장을 관리하던 사람은 ‘수량을 준비하고 있어서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구매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확실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고 나중에 못 사면 어떻게 할지 눈앞이 깜깜하고, 마치 사람을 갖고 노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마케팅의 도구로 이용당한 것 같아 더 기분 더 나쁘다.
같이 온 일행들은 나이도 많은데 월차를 내고 왔다가 구매를 기약할 수 없어서 돌아갔다. 나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희망고문 그만하고 구매할 수 없으면 그냥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한정판을 구매하지 못하면 일반판이라도 사서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일반판이라도 사서 게임을 할 것이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쁠 것 같다.”
■ 유모차를 끌고 주변을 서성이던 왕십리역 인근 주민
“남편이 <디아블로 3>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한정판을 구매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나왔다.
하지만 어제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기다릴 줄은 몰랐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엄청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이 지역 주민으로 소음공해 등이 심해 다소 불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여기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노숙을 해가며 게임을 살 필요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 행사장 옆 편의점 직원 지모 씨
“평소보다 2배 정도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몰리고 있다. 왕십리역 인근에 있는 점포라 평소에도 시간당 40~60명 정도의 손님들이 찾지만, 오늘은 시간당 100명 이상은 몰리는 것 같다. 시간당 100명이라고 하면 쉬울 것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직원은 정말 정신이 없다.
여기에서 <디아블로 3> 전야제가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빨라 봐야 오늘 아침 첫차 시간(새벽 6시쯤)부터 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어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편의점은 비상사태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른 직원들은 계속 교대하지만 점장과 나는 어제 아침부터 계속 근무하고 있다. 피곤해서 죽을 맛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전과 점심 때 많은 물량을 공급받았지만 도시락이나 김밥 등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왕십리역 광장에 모인 것은 정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처음인 것 같다.”
■ 행사 경비를 보던 성동 경찰서 경비과 직원
“사실 왕십리역 광장은 대규모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은 아니고, 기껏해야 소규모 공연이 가끔 열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광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2010년 월드컵 이후 정말 처음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 길거리 응원을 나온 사람들보다 지금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행사 때문에 타격대와 교통경찰 인원을 합쳐 2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189(방범순찰대 중대번호) 중대가 긴급 출동할 예정이다. (즉 출동대기 중이다.) 하지만 별일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사건사고가 접수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줄을 만들어 질서를 형성하는 모습이 놀랍다.
다만, 솔직히 말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게임 하나 사려고 모였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나는 나이가 든 사람이고, 게임을 하지 않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을 위해 노숙까지 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뭐라고 할까? 납득이 되질 않는다.”
■ 대기표 96번, 한정판 구입에 성공한 40대 남성
“어제(13일) 오후 4시부터 와서 기다렸고, 드디어 지금 막 <디아블로 3> 한정판 구매에 성공했다. 피곤하고, 아침에 비도 와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하지만 드디어 한정판을 구매해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이벤트 무대에 오른 <디아블로 3> 개발자들이 성역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나는 오늘 집에 돌아가서 바로 12시부터 성역에 접속할 것이다.
이렇게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은 것은 사실 하루 기다려서 <디아블로 3> 한정판을 구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디아블로 3>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몇 년 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말 오래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기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