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아직 허약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힘을 만들기 위해서 성장하는 단계다.”
KOG는 6일 대구 문화동 노보텔 대구시티센터에서 ‘KOG 아카데미’ 행사 50회를 맞아 넥슨을 창업한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 초청강연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KOG 임직원들 외에 서울 게임스쿨, 대구 계명문화대학, 대구 게임아카데미 등에서 약 5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대표는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KOG 아카데미에서 직접 강연을 한다는 소식이 관심을 모았다.
KOG 이종원 대표는 “KOG 아카데미는 좋은 사람들을 함께 만나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그동안 사람들을 모시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끈질기게 해서 50회까지 왔다. 김정주 대표는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선진국이 따라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강연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강연은 이 대표가 질문을 하고 김 대표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구=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KOG 이종원 대표(왼쪽)와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
이종원(이하 이): 몇 년 전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다. 전문 연주가들도 받기 어렵다고 하던데.
김정주(이하 김): 아주 옛날 이야기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연도로 따지면 81년쯤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비치된 애플 복제품으로 기억한다. 그전까지는 주로 악기를 연주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피아노를 치고 5·6학년에는 바이올린을 켰다. 지금은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사업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인생에서 힘들 때 휴식처가 돼주곤 한다. 악기 연주처럼 다른 취미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온라인게임, 인수합병(M&A), 부분유료화, 세계시장 진출 등 새로운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게임이 정말 좋아서 게임을 갖고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팀워크 자체가 좋고, 성장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거대한 공장에서는 어떻게 조금 더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지에 대한 혁신이 있겠지만, 게임은 그런 산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조금만 고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나도 자주 하는데 이건 정말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이게 정말 될까?’, ‘과금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롭고 누구도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카카오 김범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카카오톡이 이모티콘을 팔아서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초기에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걱정을 하고 우유부단하게 생각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대표는 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벗어버리고 남들이 하지 않을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본 주식시장에 넥슨을 상장한 후 ‘일본에 회사를 팔았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왜 그런 것인가?
김: 이미 여러 차례 답변한 것 같은데, 일단 국내시장이 작다. KOG도 브라질에서 게임이 잘됐기 때문에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매출액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만큼이면 성공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고 평가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SM 이수만 회장이 말한 것처럼 현지 유저를 위해 만들어서 성공한 것은 아직 없다. 다만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 그 시장에서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 KOG 모두 미국의 대형기업이 제대로 상품을 만들어서 우리와 경쟁한다고 했을 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힘을 만들기 위해 성장하는 단계라고 본다.
일본에 회사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여러 국가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들의 모임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런 회사를 설립하려고 할 때 우리나라 시장의 규모에 비해 일본이나 미국 시장이 몇 배 이상 크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세운 목표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일본에 회사를 상장한 것이다.
넥슨의 창업주인 엔엑스씨 김정주 대표.
이: 낮에는 예술학교를 다니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안 보이는 등 겉으로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며 일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다. 그렇게 모습을 숨기는 이유가 있나?
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의 규격’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답변을 조금 다르게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나는 정말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만든다.
밖에서 보기에는 업무시간인 10시에 회사가 텅텅 비어 있거나 자고 있는 사람들만 넘쳐나는 이상한 회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밤을 새우며 일한다. 그게 더 효율이 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주로 야간에 게임을 하고 그만큼 그 시간대에 많은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내가 지켜야 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공장장이고 매일 같은 시간에 공장을 돌려야 한다면 항상 공장에 붙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004년부터 내 자리가 없어지고 붙박이로 출근하는 곳이 없어졌다. 이후에는 세계 곳곳에 있는 지사나 개발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하고 있다. 나는 이 방식을 굉장히 즐기고 있다.
나는 내가 은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나빴다면 아마 지금처럼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회사를 만나면 덩달아 나도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랑 같이 일하는 회사 중에 시애틀의 밸브 같은 곳에 가면 정말 감동스럽다. 오늘 강연에 온 이유도 KOG에서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서다.
김: 사람의 숫자로 평가하긴 그렇지만 두세 명으로 시작해서 1,000 명 이상이 일하는 규모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회사가 많이 커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회사가 너무 허약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게임이 약 60 종이다. 그중에 돈을 버는 것은 7~8개다. 게다가 모두 월드클래스는 아니다. 몇몇 게임만이 세계시장에서 잘되고 있다. 아마 그중에 몇 개의 순위가 내려가면 지금 넥슨의 위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반면에 소니나 EA 등 해외업체의 게임 라인업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럽다. 단 하나의 게임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게임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타이틀이 다수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본다.
게임산업처럼 부침이 심한 곳이 없다. 예전에 잘나가던 회사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닌텐도 같은 대형 업체도 한순간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대표도 나도 열심히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인 만큼 앞으로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 M&A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투자하고, 어떤 회사를 인수하는지 기준이 있다면?
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숫자’일 것이다. 숫자가 좋아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숨겨진 진주 같은 게임이 있거나, 해외에 나가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게임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은데,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단번에 보고 판단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이 대표를 만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기간 정도는 돼야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다. 그 10년 동안 만나고 더 관계가 깊어지던 중에 이야기가 통하면 투자가 되기도 하고, 회사의 숫자가 나빠도 오래 함께 일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