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아스팔트에서 상어가 튀어 나오고, 갱스터들이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갑자기 외계인과 좀비가 도시를 습격한다. 정신 나간 세계관과 자유로운 오픈월드로 유명한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이하 세인츠 로우 3)는 출시 한 달 만에 380만 장이 팔린 타이틀이다.
개성 넘치는 소재들의 융합과 오픈월드의 자유로움을 한데 묶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세인츠 로우>를 개발한 볼리션의 디자인 디렉터 스캇 필립스(Scott Phillips)는 9일 KGC 2012에서 <세인츠 로우 3>의 개발 노하우를 공개했다. 자유분방한 게임의 분위기와 달리 그의 조언은 철저하게 기본에 기초하고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콘셉트와 스타일부터 확정하라
“팀원들이 게임의 톤과 비전을 이해한다면 개발은 끝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스캇은 게임의 톤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그 안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녹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톤’이란 게임의 특성이나 콘셉트, 분위기 등을 의미한다. 팀원들이 게임의 톤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아이디어가 나와도 하나의 톤 안에 조화롭게 녹아드는데 반해, 만약 서로 이해하고 있는 톤이 다르면 비슷한 아이디어라도 지향하는 바가 달라 전체적인 조화를 흐트러트리게 된다.
그는 잘못된 톤 설정의 예로 그가 개발한 <세인츠 로우 2>를 들었다. 이 게임은 시리즈의 개성을 확립한 중요한 타이틀이었지만 일관된 톤의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심각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의 끝에 미치광이 같은 보상을 주는 등 톤의 흐름이 일관되지 못해 고생해서 만든 콘텐츠가 다른 요소에 묻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인츠 로우 3>에서도 이런 실수를 되풀이할 뻔했다. 전작을 개발했던 많은 팀원들이 회사를 떠났고, 팀원들이 이해하는 게임의 콘셉트 또한 각각 달랐다. 3개월 가량을 허비한 개발팀은 톤에 집중하기로 하고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다.
먼저 일정한 주기로 ‘브레인스토밍 미팅’을 열어 팀원끼리 톤과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이를 ‘팀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해 공론화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톤을 확정하기 위해 괜찮은 영상물이나 스케치가 있다면 모든 팀원들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눴다. <세인츠 로우 3>의 독특한 분위기는 개발팀의 이런 노력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 퀄리티를 위해 끊임없이 테스트하라
아무리 부유한 개발사라도 하나의 타이틀을 만드는 데 투입하는 자원은 한정돼 있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자원 속에서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얻을 수 있을까? 스캇은 끝없는 테스트 속에 답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가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은 아이디어 적용 전 시안(試案)을 만들어 보는 ‘사전 시각화’ 작업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막상 게임에 적용하면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아이디어를 적용했을 때는 그만큼의 자원이 소모된 상태다.
사전 시각화는 아이디어 적용 전 간단하게 시안을 만들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영상일수도 있고 스케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팀원들이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다.
콘텐츠의 페이스 조절은 게이머가 게임 중 지속적으로, 혹은 점점 더 큰 재미를 얻게 하는 콘텐츠 배치 작업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훌륭해도 이를 적절히 배치하지 않으면 게임은 밋밋해진다.
<세인츠 로우 3> 개발팀은 페이스 조절을 위해 사전 시각화와 페이스 구성표를 이용했다. 먼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은 적절한 페이스 구성표를 만든 뒤 사전 시각화를 통해 미션의 진행을 점검하는 방식이었다. 사전 시각화로 미션의 구성을 테스트한 후에야 본격적인 미션 개발을 시작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플레이 테스트는 완성이 임박한 게임을 직원들이나 테스터들을 동원해 직접 플레이하는 절차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다양한 테스트 군이다. 게임을 개발한 개발팀은 물론, 사내 다른 개발팀, 전문 테스터나 지역의 일반 게이머, 그리고 수천 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테스트까지. 스캇은 “테스트 군이 다양할수록 게임의 오류를 발견하기 쉽다”며 플레이 테스트에 인색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 역량 이상의 아이디어는 독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도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아이디어는 가차없이 자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인트 로우 2>의 개발 철학은 ‘필요한 것은 다 넣는다’였다. 덕분에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지만, 역량 이상의 업무들로 개발 중 마무리가 허술했다. 스캇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불필요한 아이디어를 솎아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인츠 로우 3> 개발팀은 한 달 단위로 디렉터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잘라 내는’ 회의를 했다. 스캇은 “개발과정 중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첨언했다. 다들 개발자인만큼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강하고, 사람마다 우선적으로 여기는 가치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을 위해서는 ‘톤’에 대한 이해와 개발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였다.
이 제안은 게임의 콘셉트와도 어긋나지 않는 아이디어였지만, 당시 개발팀의 역량 문제로 폐기됐다. 스캇은 “좋은 아이디어를 버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좋은 게임도 버릴 수밖에 없다”며 아이디어를 솎아 내는 작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스캇은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어떤 상상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개발자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모여 만든 작품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이 진정 재미있게 개발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라”고 격려하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