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협업과 필러가 필요하다.”
유비소프트 싱가포르 스튜디오의 이안Ng PM과 프랑소와 다우베 레벨 디자인 기술 디렉터는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GC 2012에서 대규모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발표했다.
<어쌔신 크리드 레벌레이션>의 디자인을 맡은 그들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리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러’와 빠르게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유비소프트 싱가포르의 프랑소와 다우베 기술 디렉터.
발표와 함께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3> 영상
■ 일관성을 유지하는 필러
고전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의 스핀오프로 시작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현대에서부터 르네상스, 고대 로마, 미국 독립전쟁 등 다양한 시대와 지역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또한 단순히 게임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소설, 코믹스, 각종 상품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다.
프랑소와 다우베 기술 디렉터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와 스토리에 일관성을 불어넣는 근본이 되는 콘셉트가 ‘필러(pillar, 기둥)’라고 설명했다.
그는 “필러는 <어쌔신 크리드> 1편이 만들어질 초기에 당시 크레이티브 디렉터와 팀이 만든 것이다. 일부에서는 틀이 정해져 있는 만큼 창의력을 제한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의 필러는 역사와 사회를 배경으로 한 ‘느슨한 틀’이다. 얼마든지 새로운 콘텐츠와 이야기를 추가할 수 있는 구조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일관된 작업을 할 수 있고 혁신과 함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게임, 코믹스,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줄 기본적인 콘셉트가 중요하다.
■ <어쌔신 크리드>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브랜드 필러’
<어쌔신 크리드> 브랜드를 대표하는 필러는 역사적 장소와 이벤트, 어쌔신과 템플러의 대결, DNA를 통해 선조의 과거를 알아내는 애니머스 같은 새로운 기술 그리고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로 제공되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 가서 그들의 문화를 느끼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출물이나 지역에 유저가 직접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현재 명칭은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의 경우도 벽지의 문양을 그대로 살리는 등 게임에 실제 지형의 느낌을 최대한 담았다.
실제 그랜드 바자르의 벽화(왼쪽)와 게임 속 이미지(오른쪽).
콘스탄티노플은 단순히 하나로 통합된 맵이 아니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를 통해 귀족과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이 다르고 통제지역으로 구분 되는 등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프랑소와 다우베 기술 디렉터는 “우리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역사를 배운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게임성을 위해 역사에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게임에서 본 건물이나 지역, 인물을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하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현실과의 연관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도시를 구현하고 그 안에서 유저가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템플러와 자유 의지를 위해 싸우는 어쌔신의 갈등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스토리다.
주인공이 어쌔신의 편이긴 하지만 어쌔신, 템플러 어느 한쪽을 악이라고 구분 지을 수는 없다. 개발팀은 유저가 두 세력간의 전쟁에 휩싸인 존재가 되도록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유저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가 아닌,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도록 계획한 것이다.
DNA를 통해 선조의 기억을 읽어내는 애니머스는 <어쌔신 크리드> 세계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 <어쌔신 크리드>는 고대 로마부터 미국독립전쟁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스토리를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또한 애니머스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읽는다는 콘셉트였기 때문에 체력 게이지나 도움말 등의 UI도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어쌔신 크리드> 게임을 통해서는 고대 로마시대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비주얼 노블로 나왔으며 이 밖에도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에 등장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방면의 사람들에게 <어쌔신 크리드>의 브랜드를 알리는 것 역시 중요 필러 중 하나다.
■ 게임성의 일관성을 위한 ‘디자인 필러’
<어쌔신 크리드>는 디자인(기획) 부분에서도 처음부터 중요한 필러를 정했다.
먼저 <어쌔신 크리드>에서 네비게이션은 파쿠르(건물과 건물 사이를 맨몸으로 움직이는 익스트림스포츠, 프리러닝)를 염두에 두고 개발됐다.
항상 빠른 속도로 뛰어가야 하고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고 벽을 기어올라가고 줄을 타는 등 파쿠르 동작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개발 단계부터 어디를 어떻게 밟고 지나갈지 캐릭터의 이동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춰 몇 중으로 건물을 디자인했다.
건물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이동할지 구조를 미리 만들고 여러 층으로 맵을 구성한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유저가 중심이 아닌 도시자체로 유지되고 움직이는 살아 있는 형태가 되길 원했다. 군중은 물건을 사기 위해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대화하거나 구걸하기도 한다. NPC들은 대부분 유저를 신경 쓰지 않으며 각자 행동한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유저의 소매치기하는 등 약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의 공간을 창출했다.
시리즈에 따라 바뀌는 주인공 알테어, 에지오, 데스몬드 등의 연관성을 짓기 위해서 후드의 형태를 통일했다. 또한 후드의 모습은 독수리를 본딴 것으로 암살자의 상징적인 이미지기도 하다. 이 밖에도 암살자의 특징인 히든 블레이드와 로고 역시 시리즈를 이어가는 디자인 필러다.
■ 필러에 맞춰 새롭게 만든 ‘훅 블레이드’
<어쌔신 크리드: 레벌레이션>을 개발하면서 필요했던 것은 고정된 필러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중동인 콘스탄티노플로 지역이 바뀌면서 캐릭터의 이동경로인 건물의 형태와 지형도 달라졌다. 기존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지붕이 평평했던 반면 <레벌레이션>에서는 지붕의 경사가 깊어지고 돔 형태의 지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12미터 이상의 대로가 많았던 반면 콘스탄티노플은 3미터 이내의 좁은 골목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건물의 지붕이 벽보다 넓었기 때문에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1미터 이내가 됐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은 평지가 아닌 언덕이었기 때문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높이 차이가 심했다.
전체적으로 평평했던 전작(위)과 달리 <레벌레이션>(아래)은 높이의 차가 심해졌다.
전체적인 맵의 구조가 바뀌면서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건물을 오르내리는 상황이 더욱 많아지게 됐고 올라가는 높이도 늘어났다. 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훅(HOOK) 블레이드’다.
훅 블레이드는 어쌔신들의 무기인 히든 블레이드의 변형으로 기존에 비해 4배 가까이 빠르게 건물을 오를 수 있고, 낮은 곳으로 이동할 때에는 건물에 연결된 줄에 히든블레이드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장치다.
이안Ng PM은 “<레벌레이션>을 개발할 때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싶었다. 평지에서 달리는 것은 얼마든지 빠르게 할 수 있었는데 건물을 올라가는 것은 매우 느렸다. 그래서 이것을 맞춰주기 위해 훅 블레이드를 개발했는데, 필러에 합당하면서도 새롭게 만든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
프랑소와 다우베 기술 디렉터와 이안Ng PM은 필러와 함께 개발에 중요한 것으로 협력을 꼽았다.
이안Ng PM은 “<어쌔신 크리드>는 넓은 맵에서 수많은 스토리와 콘텐츠가 있고 멀티플레이 등 다양한 모드가 포함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런 대규모 작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스튜디오가 함께 협력해야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쌔신 크리드> 개발의 리드는 몬트리올 스튜디오가 담당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스튜디오는 오픈월드 도시와 숨겨진 지역을, 퀘벡 스튜디오에서는 디버그와 엑조틱 개발환경을 담당하는 식이다. 스튜디오가 나눠져 있는 만큼 각 스튜디오의 장점에 맞춰 게임을 나눠 개발할 수 있고 그만큼 개발 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다.
다만 전 세계에 개발 스튜디오가 퍼져 있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를 알리는 데 딜레이가 생길 수 있고, 언어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팀은 개발 정보를 위키로 만들어 업로드하고 정기적으로 컨퍼런스콜을 진행해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초반에는 서로 다른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프랑소와 디렉터는 “개발 분야를 스튜디오별로 나눌 때 최대한 다른 스튜디오에 의존하지 않는 범위로 나눈다. 예를 들어 한쪽이 멀티플레이를 담당한다면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함께 맡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한쪽에서는 개발한 것을 테스트하기 위해, 다른 스튜디오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을 기다려야 하는 식의 무의미한 딜레이가 생기기 때문이다”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