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평가를 하는 이유는 구성원의 의욕을 북돋우고 분발시켜 더 나은 효율과 매출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평가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받는 이를 실망시키는 평가는 도리어 구성원들의 의욕을 잃게 하고 급기야 이탈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개발자는 평가가 낮아 우울하고, 평가자는 개발자가 불만이 많이 우울하고, 회사는 평가를 해도 효율이 떨어져 우울하다.
과연 회사와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가란 없는 걸까? 개발자로 시작해 중견·대형업체의 관리자, 그리고 지금은 개발사 노리아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정주 대표의 제언을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개발자들이여, 영악해져라
김 대표는 좋은 평가를 원하는 개발자에게 영악해질 것을 주문했다. 그가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많은 것을 양보하고 들어온다. 낮은 연봉도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감수하고, 낮은 평가도 다음엔 더 나아질 것을 기약하며 감수한다.
하지만 그가 그간 겪어온 바에 의하면 이런 우직한 개발자보다는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는 까칠한(?) 개발자가 더 인정받고 더 빨리 진급한다. 그는 개발자들에게 회사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리라 기대하지 말고, 할 말은 해 가며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정당한 평가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그는 ‘포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회사가 커질수록 구성원 한 사람에게 가는 관리자의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야근하고 주말을 반납해도 관리자가 칼 같이 퇴근하면 이런 노력은 전달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긴 업무로 지친 몸 상태 때문에 무기력하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때문에 회사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한다면 적절한 포장 스킬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조언한 것은 평가자의 특성을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설정기획자로 유명한 관리자라면 작문이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난 팀원이 상대적으로 후한 평을 받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자신 있는 분야에 한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평가자가 자신 있는 분야엔 그만큼 확고한 기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대 수준만 충족시킨다면 개발자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평가자가 전문적이지 않은 분야는 평가자 자신부터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기 쉬워진다. 해당 분야의 성과보다는 근무태도나 동료들의 평이 오히려 평가를 좌우할 확률이 높다. 앞서 말한 포장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성실한 개발자를 높이 평가하라
많은 평가자들이 개발자들의 불만이 없을 평가를 원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다. 사람의 가치관이나 입장의 차이를 떠나 평가자들의 선택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평가자에겐 프로젝트 진행에 필수적인 핵심인력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때문에 상대평가의 특등석은 대게 이들에게 예약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평가자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김 대표는 먼저 성실한 개발자를 대우해 줄 것을 권했다. 물론 성실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가장 안타까워하는 이는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나 나쁜 그 자신이다. 이런 이에게 평가까지 나쁘다면 오히려 의욕을 잃고 위축되기 십상이다.
김 대표는 오히려 이런 이일수록 성실한 자세를 유지시켜 좋은 개발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런 평가방법은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팀원 모두 업무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전반적인 일의 효율 또한 좋아지기 때문이다.
사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높은 평가를 자제하는 것도 평가 받는 이들의 불만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가결과에 대한 이유를 정치적 이유나 친분과 같은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만약 평가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그 평가가 합당하다지 할지라도 사람들은 평가자와 당사자를 의심하기 쉽다.
때로는 평가자가 아니라 평가 받는 이의 입장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 평가를 하는 이들에게 무기명 등 안전장치(?)를 보장하고 역평가를 받으면, 평가자가 그 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의 낮은 평가결과에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팀원들의 위치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 결국 수당이 해결의 열쇠?
많은 회사들이 평가를 통해 인재를 중용하고 구성원들의 업무효율을 향상시키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발자들이 평가를 부담스러워하는 까닭은 평가로 수당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정한 평가도 누군가에겐 가혹한 결과입니다. 결국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수당을 좌우하는 회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김 대표는 이러한 해결책으로 평가와 연봉의 분리를 제안했다. 연봉기준표에 의거한 연봉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연봉기준표란 구성원의 연봉을 규정하는 데 회사가 참고하는 기준을 말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근속연수와 직무 별로 연봉선정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연봉이 측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핵심인력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들은 특정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은 다시 연봉에 영향을 끼친다. 결국 몇몇 핵심인원들의 연봉만 급상승을 하는 구조다. 그렇지만 평가와 연봉을 분리시켜 연봉기준표에 따라 연봉을 지급하면 이러한 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그 동안 소외됐던 신입·주니어 개발자에겐 활로가 열리는 셈이다.
물론 이는 구성원의 동기부여 문제나 기존 핵심인력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프로젝트 인센티브(P.I) 제도의 강화를 제시했다. P.I는 프로젝트가 거둔 수익의 일부를 프로젝트 참가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P.I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의 성과에 의해 추가수당이 결정되기 때문에 동기부여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 또한 프로젝트 기여도나 근속월수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핵심인력의 불만도 무마할 수 있다.
또한 김 대표는 사람을 도구로 보지 않는 회사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지만 이를 지키는 회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기술력이란 회사가 아닌 사람이 가진 것이기에 이처럼 개발자의 이동이 잦은 회사는 언젠가 허점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때문에 회사는 사람을 도구처럼 써 사람에게 버려지지 말고, 오히려 사람에게 선택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래를 기약해주는 진정한 평가는 회사의 평가가 아니라 동료의 평가다. 동료로부터 지적받고 배우는 하나하나가 나중에 수천만 유저의 환성으로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조언하며 강연을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