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 22일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게임위가 오히려 게임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전 의원은 게임위 및 관련 법안의 폐지와 함께 민간기구를 갖추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서 사후관리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지난 9월 26일 정부에서 발의한 게임위 존속 및 사후관리 내용을 담은 개정안과 정반대의 내용이다. 같은 조직에 대한 두 개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 각각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앞으로의 게임물 등급심의에는 문제가 없을지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논점 ① 게임위 존속 VS 게임위 폐지
두 개정안의 가장 큰 차이는 게임위의 존속 여부다. 게임위는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게임물 등급분류 업무를 이관받으며 설립됐다. (관련기사)
2006년 설립된 게임위 현판식 모습.
당시에는 2년 동안 정부의 국고를 지원받으며 활동한 후 등급분류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거칠 예정이었으나, 논의가 늦어지고 마땅한 민간기관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매년 게임위에 대한 국고지원 기한이 연장됐다.
지난 9월 26일 정부에서 발의한 개정안은 게임위의 역할을 등급분류 중심에서 사후관리 중심으로 바꾸고 국고지원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의 내용은 ▲게임산업에 대한 민간 자율성 강화를 위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제외한 등급분류를 문화부 장관이 지정하는 법인에 위탁하고 ▲등급분류 업무축소에 맞춰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명칭을 게임물위원회로 변경하며 ▲2012년 12월 31일까지로 되어 있는 국고지원 규정을 삭제해 게임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게임위를 폐지하고 남은 업무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의 내용은 크게 ▲게임위 및 관련 법률안을 폐지하고 ▲실효성 있는 심의를 위해 문화부에서 매년 새로운 심의기준을 고시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인력 및 시설을 갖춘 법인을 새로운 등급분류기관으로 지정하고 ▲등급분류의 사후관리와 불법게임물 관리 업무를 문화부 내의 게임물관리센터에 신설하는 네 가지다.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의 등급분류를 민간기관에 넘기고 사후관리 역시 문화부에 신설되는 게임물관리센터에 맡기면서 게임위의 모든 역할을 이관시키고 폐지하는 방안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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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정안 |
전병헌 의원 개정안 |
게임물등급위원회 |
게임물위원회로 이름 바꾸며 존속 |
폐지 |
등급분류 국고지원 |
기한 없이 유지 |
중지 |
등급분류 민간이양 |
청소년 이용불가 제외 |
청소년 이용불가 포함 |
사후관리 |
게임물위원회가 담당 |
문화부에 게임물 관리센터 신설 |
단속 |
경찰과 게임위 공조 |
관리센터 인력에 사법경찰권 부여 |
심의기준 |
유지 |
문화부에서 매년 새롭게 고시 |
논점 ② 안정성 VS 빠른 대응
정부에서 발의한 개정안의 장점은 안정성이다. 만약 정부의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게임위는 존속되고 민간이양을 포함한 업무 역시 현행대로 처리된다. 등급분류와 사후관리에 대한 노하우는 유지되며 게임위에서 구축한 시스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장점은 빠른 대응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을 포함한 모든 등급분류를 민간에 이관하고 문화부에서 매년 1회 이상 새로운 심의규정을 만들게 된다. 민간주도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등급분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국내 게임물 등급분류에서 오픈마켓에 1년 가까이 대응하지 못했던 일이나, 개인 블로그에 올린 플래시게임까지 심의해야 하는 상황, 해외의 기준과 달라 논란을 빚었던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전 의원의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관련기사)
논점 ③ 사행성 우려 VS 게임위 비리 문제
사행성도 관건이다. 게임위는 폐지설이 나올 때마다 사행성 문제를 카드로 내세웠다. 실제로 게임위는 지난 2011년 총 358건의 아케이드게임 위법행위를 적발했다. 적발되지 않은 건수나 중복 적발을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등급분류 단계에서 거부된 게임만 수백여 개에 달한다.
게임위에서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의 등급분류만큼은 민간이양을 하지 않는 이유다. 정부의 개정안에서도 게임위의 역할을 사행성 방지와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위는 현재 지역경찰과 공조해 사행성 게임물을 단속 중이다. (관련기사)
게임위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
반면에 전 의원은 게임위 자체의 비리를 문제로 삼았다. 전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현장에서 게임위 심의지원부장과 아케이드 업자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아케이드 업자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게임위 부장의 발언이 담겨 있었다.
비리 의혹을 받는 단체에서 사행성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 의원의 주장이다. 그 대신 전 의원은 문화부에 게임물관리센터를 두고 여기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사법경찰의 권한을 부여해 단속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관련기사)
논점 ④ 게임위의 ‘당장 폐지’는 무리. 문제는 심의공백
둘 중에 어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게임위가 당장 사라지기는 어렵다. 문화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을 제외한 게임물 등급분류를 민간기관에 이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유일한 신청자인 게임문화재단이 탈락했고, 현재 2차 모집 및 심의가 진행 중이다.
게임문화재단 이외의 기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게임위가 매년 정부에서 지원받는 비용은 약 50억 원. 그중 대부분이 등급분류와 사후관리 비용으로 지출된다. 1년에 최소 20억 원 이상이 필요한데, 게임문화재단의 탈락 역시 자금문제가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만일 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의 등급분류에 대한 추가비용까지 발생한다. 민간이양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고 심의공백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게임위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두 개정안이 모두 연말까지 통과되지 않을 경우다. 정부의 개정안은 지난 9월 26일 위원회 심사에 오른 후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개정안 처리를 예상해 편성된 예산안 역시 전 의원의 의견에 따라 예산안심사에서 전액 삭감됐다. (관련기사)
여기에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 이슈가 겹치고 전 의원의 개정안까지 나오면서 두 개정안의 통과 여부는 올해 안에 결정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만약 개정안이 오는 12월 31일까지 통과되지 않는다면 게임위는 국고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민간심의기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곧 심의 파행으로 이어진다. 게임위에서는 국고지원 없이 등급분류가 가능한 기간은 약 두세 달이며, 사후관리 역시 상당부분 정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