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위기를 맞은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심의 및 조직 혁신에 들어간다. 게임위는 29일 서울 충정로 사무실에서 ‘청렴 및 조직혁신 실천다짐대회’를 갖고 현행 등급분류 방식과 조직구성 개편에 대해 설명했다. 등급분류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개인의 윤리성도 강화하겠다는 대대적인 변화다. 대대적인 혁신이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게임위의 조직혁신 발표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폐지 논란 게임위 쇄신안 발표 기사목록
■ 연이은 신뢰도 저하에 따른 혁신이 필요
게임위가 혁신을 발표한 것은 최근 논란이 잇따르면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물 등급분류는 들쭉날쭉한 분류로 인한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녹취록이 공개되며 비리의혹을 받은 간부도 있다.
청소년 이용불가 아케이드 게임물의 평균 처리기간이 90일이 넘는 것도 문제다. 반면 단속사례 중 개·변조 게임물의 사행적 운영이 2011년 89.3%에 달할 만큼 개·변조 게임에 취약하다.
대외적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게임위에는 민간기구로 등급분류를 위탁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관리 감독 등을 해야하는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11월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 따라 사감위가 사행성게임 감시기능을 하기 위한 업무분장도 필요하다.
여기에 게임 과몰입 예방제도에 따라 게임시간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 구축과 이행 여부 등에 대한 모니터링까지 대처하려면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 게임위의 주장이다.
■ 등급분류, 추천등급제 폐지도 투명성 확보
게임위의 혁신은 크게 ‘등급분류 기능의 신뢰성 확보’, ‘사후관리 임무의 철저한 수행’, ‘조직개편 및 개인의 윤리성 강화’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등급분류의 신뢰성 확보에서는 먼저 유착 의혹을 받는 등급분류의 신청 대행과 추천등급제가 사라진다. 지금까지 게임물 등급분류는 다른 업자가 대신 신청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게임위와 대행업자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곳도 있다.
추천등급제도 사라진다. 게임위는 지금까지 2명의 전문위원이 게임을 검토한 후 등급을 내려 일치하면 등급분류 회의 없이 곧바로 등급을 배정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위원의 역할을 등급결정의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검토를 맡은 전문위원의 실명을 공개하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를 최대한 줄인다.
등급분류의 속도도 높인다. 등급분류의 심사요소와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객관화해 배포함으로써 미리 등급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고, 등급분류가 늦어질 경우 그 사유와 다음 심의 예정일을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현재 주 2회로 운영되는 심의회의도 주 3회로 늘릴 계획이다.
아케이드게임에서는 사행성 요소 검사에 자동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현재 30일의 사행성 요소 검사기간을 20일로 단축할 계획이다. 여기에 아케이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술심의 소위를 설치해 개·변조 가능성을 사전에 검토한다.
■ 모니터링 강화, 사후관리 임무의 철저한 수행
사후관리 임무도 한층 강화된다. 먼저 개·변조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수사의뢰와 더불어 영업장 폐쇄 등의 행정제재를 병행한다. 개조 우려가 높은 게임들을 사후관리 중점대상으로 놓고 상시 확인할 계획이다.
예산문제로 규정액보다 적었던 신고 포상제도 역시 예산을 다시 검토해 포상액을 늘리고 현장에서 직접 촬영해서 신고할 수 있도록 모바일 신고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민간으로 이양되는 청소년용 게임물의 등급분류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지도감사와 교육을 실시하며 온라인게임의 사행적인 운영도 집중 점검한다. 특히 사행화 우려가 있는 웹보드게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다.
게임 과몰입 예방제도에 맞춰 청소년용 게임 및 신규 출시 게임을 중심으로 ‘게임 과몰입 및 중독에 대한 예방제도 시행 여부’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게임시간선택제 도입 여부와 이행상황 등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 징계수위 UP, 조직개편 및 개인의 윤리성 강화
조직개편도 이어진다. 상설 감사팀을 신설해 게임위의 업무전반을 감사하고 전문위원실을 폐지해 자의적인 등급분류 검토를 없앤다. 대신 심의지원부의 기능을 강화해 더욱 빠른 등급분류를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다. 게임 중독 혹은 사행성에 피해를 입은 유저들이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는 고객보호부도 신설한다.
간부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는 징계수위를 한 단계씩 올리고 제 3의 기관을 통한 청렴도 측정을 주기적으로 시행해 윤리성을 강화한다. 문제가 됐던 업자와의 사적인 접촉도 전면 금지하고 적발될 경우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
또, 게임위원장 직속의 자체클린 신고센터를 운영해 부패나 금품수수, 청탁알선, 공금횡령 등의 의혹이 보이면 누구나 신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게임위의 혁신과제는 올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며 오는 2013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수행평가 및 결과가 보고될 예정이다.
■ 왜 이제서야? 뒤늦은 행동에 대한 비판 쏟아져
오늘 행사에서는 게임위의 뒤늦은 쇄신안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비리의혹과 예산안 취소, 폐지론 등이 거론된 이후에야 나온 ‘보여 주기식 쇄신안’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게임위에서 오늘 제시한 쇄신안은 대부분 현행법을 바꾸지 않고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게임위에서 마음만 먹었다면 이전에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게임위 전창준 부장은 “이번에 생긴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각오를 다지는 것일 뿐 변신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쇄신안과 함께 발표된 사행성이 의심되는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강화 역시 다른 게임의 저작권과 관련되는 일이 많은 만큼 이를 확인하고 저작권협회 등과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아래는 게임위와의 일문일답이다.
Q. 혁신도 좋은데 일단 존폐 위기가 먼저다. 내부적인 대책은 없나?
당장 내년부터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이다. 그런 사태를 막아야겠다는 뜻에서 관련법과 예산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줄 수 있도록 문화부에서 노력하고 있다. 대선에 가려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관계법 개정안이나 예산안 없이 새해를 맞는다면 사실 방법이 없다. 그 때는 문화부에서 비상대책을 고민할 것으로 안다. 국회에서도 그런 사태까지 끌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중이다.
Q. 당초 게임위는 한시적인 운영조직이었다. 덕분에 매년 예산이나 등급분류와 관련해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시적 기구라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위에서는 어찌할 방법은 없다. 내부적인 변신의 노력은 계속해 왔다. 이번 문제를 일종의 기회로 삼아 거듭나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Q. 게임위는 유일하게 입법사법행정권을 다 갖고 있는 조직이다. 그중 하나라도 위임하는 게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법에서 다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구체적인 것을 위임되는 범위 안에서 일임하는 것이다. 이것을 입법기능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행정권을 가진 조직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처벌을 미루지 않는 만큼 게임위 역시 다양한 내부적인 처벌이나 감시를 두고 있다.
게임위에서도 차라리 다른 외부기관에서 심의기준이나 적용방법 등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번 변화하는 게임에 대해 기준을 세우고 해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맡겨진 책무라고 생각할 뿐, 권한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Q. 아케이드게임의 개·변조 비율 높은데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없나?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많다. 일단 이전에도 소개됐던 자동 버튼조작 장치를 이용한 방식에 대한 규제근거가 없다. 이를 이용하면 한 사람이 몇 대의 게임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행성도 그만큼 조장된다.
조사관이 현장에 나갔을 때 업주가 전원을 차단하거나 판독 프로그램을 꽂으면 장비가 멈추게 하는 식으로 방해할 때가 많은데 그에 대한 처벌도 없다. 조사원의 직접조사권한이 없어서 실태 조사만 거친 후 나머지는 경찰 등에 위임해야 하는 상황도 문제다.
개·변조가 뻔한 게임들도 있지만 사고를 치고 나서 가둬야지 사고 치기 전에 예단해서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게임산업진흥법 안에 게임이 아닌 것이 들어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건전한 게임이 아닌데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게임위는 게임이 아니라고 거부할 권리가 없다.
Q. 민간에 100% 넘기면 되지 않나?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공공기관보다는 업계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사후관리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사법경찰권이 생기면 당연히 좋겠지만 법체계상 쉽지 않다. 경찰에서도 반대가 심한 걸로 알고 있다.
참고로 다른 나라에서는 사행성은 사법기관에서 맡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게임위가 사행성을 관리하라고 정부에서 지정했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가능한 일이라면, 과연 게임성보다는 개·변조의 우려가 높고 문제를 일으키기 딱 알맞은 기기들이 법적인 표현물이나 창작물로 인식돼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어떤 공감대를 형성해 줬으면 한다. 게임위든 아니든 심의가 한층 편하고 공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