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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암을 이긴 게임음악가, Croove

EZ2DJ와 DJ맥스의 음악감독 류휘만

임상훈(시몬) 2005-03-11 21:29:57

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2.17 ~ 1827.3.26). 나이 서른에 청각을 완전히 잃었다. 2세기 뒤, 한국의 한 게임음악가도 비슷한 시련을 연거푸 겪게 된다. 청각과민증귀울림 그리고 급성염좌. 거기에 암까지. 하지만 그는 오늘도 게임음악을 만들고 있다.

 

 

 

<DJ맥스>(www.djmax.co.kr)의 음악감독 류휘만(31). 본명보다는 ‘Croove’라는 닉네임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 더 알려진 인물이다. 99년 아케이드 게임계를 뒤흔들었던 <EZ2DJ>로 시작해 줄곧 열악한 게임음악 작업에 혹사해온 탓이었을까, 해외까지 팬을 확보한 음악가였지만, 그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2003 2월 무렵 찾아온 청각과민증과 귀울림. 게임음악에 미쳐 10대와 20대를 온전히 바쳐온 이에게 너무 가혹한 운명이었다. 음이 왜곡돼서 들리고, 귀 속에서 ‘환풍기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 어찌 곡을 만들 수 있을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 11월말, 몸을 추스리고 <DJ맥스> 업데이트 준비로 곡작업에 매달리던 때였다. 병원에서 날벼락이 날아왔다. 암 판정. 일에 미쳐있던 환자는 의사에게 물었다. “몇주 있다 입원해도 되겠습니까?.

 

 

 

음악가, 귀가 망가지다


어뮤즈월드(EZ2DJ 개발사)를 퇴사한 지 한달 반 후, 듣지도보지도 못한 청각과민증과 귀울림을 앓기 시작했다. 사람은 적고 할일은 쌓여있던 <EZ2DJ> 시절, 4년간 밤샘을 밥 먹듯 하며 음악 만들기에 온몸을 던진 후유증이었다.

 

청각과민증은 귀가 극도로 민감해지는 질병이다. 덕분에 형광등의 고주파 같은 보통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고음역의 소리를 감지해, 그로 인해 더 고통을 받는다. “음악에서 벨소리 등이 예쁘게 들리지 않고 잡음이 껴서 들렸죠. 음이 약간 높아지면 심하게 뒤틀려 소음으로 들렸고요.” 또 귀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도 났다. 일명 이명(耳鳴)이라 불리는 ‘귀울림’ 증세. “보통 때는 ‘삐~’ 하는 소리가 여러 음으로 양쪽 귀에서 계속 울리죠. 심할 때는 ‘환풍기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좋은 음악은 좋은 악기나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좋은 귀’가 먼저다. 귀가 망가졌다는 것은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게다가 청각과민증이나 귀울림은 확실한 치료방법이 없고 완치도 안 되는 고약한 질병이다.

 

음악이 그에게 팬들을 안겨줬지만, 그는 폐인이 되었다. 류 감독은 음악을 접어야 했다.

 


 

컴백, 밤샘작업, 재발


그후 8개월, 어느 정도 귀가 좋아졌다.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함께 <EZ2DJ>를 만들던 멤버들과 펜타비전을 세우고 전부터 꿈꿔오던 온라인 음악게임 <DJ맥스>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 게임을 만드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3월부터 담배 연기 가득한 사무실에서 다시 ‘우리 집이 어디더라?’ 모드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두번 집에 들어가는 생활. 침실은 딱딱한 사무실 바닥이고 이불은 달랑 박스 한 장이었다.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었죠. 마음이 급하니 그것도 급하게 대충 먹었습니다.” 시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일을 계속 했지만 진도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쌓이는 일감만큼 스트레스도 쌓였다. 그렇게 6개월, 10월께 ‘마사이(MASAI)’라는 곡을 작업하던 중 청각과민증이 재발했다.

 

“곡을 마무리할 무렵이어서 물러설 수 없었죠. 귀에 이상 징후를 느꼈지만 무리해서라도 작업을 끝내야 했는데, 소리가 더욱 왜곡되서 들리더라구요. 3일 동안 밤샘작업을 하며 자극적인 전자음을 듣고 또 들어야 했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카페인이 많은 진한 커피와 자양강장음료를 계속 마신 것도 귀에 안 좋았다.

 

몸이 그렇게 되니 고민을 했다. 음악이나 작곡을 관두고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철야를 밥먹듯하는 게임 관련된 직업에서도 아예 손을 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청소년기 이후 게임과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쳐온 그였다.

 

 

 

암, 수술, 그리고 곡


재발 뒤 두세달 동안 청각과민증에 시달려야 했다. 증세가 다소 잠잠해지자 다시 일에 매달렸다. 개발자들에게 코 앞에 둔 업데이트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밤새 일을 하다가 급성염좌에 걸리기까지 했다.

 

밤샘하며 누적된 피로,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신 카페인, 급하게 먹는 식사습관, 그리고 빡빡한 일정과 부진한 진도 속에 쌓인 스트레스... 11월말 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았다. “벙쪘죠. 하지만 회사 일이 워낙 바빠서 의사 선생님한테 ‘몇주 후에 입원해도 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에 놀랐을 의사, 바로 입원해 수술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악성 종양이 퍼진 부분이 생존률이 가장 높다는 갑상선과 임파선이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났고 보름 정도 쉬었다. 그리고 올 1월 중순에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6개월마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암 수술을 끝내고 항암 치료를 받는 사이, 그는 회사의 장비를 집으로 옮겨왔다. 업데이트를 앞두고 4~5개의 곡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람이다. 암 투병 중에 마무리한 곡들은 이달 안에 <DJ맥스>의 업데이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 암투병 중에 마무리한 미발표곡 'Sunny Side'



 

현재 류 감독은 집에서 요양하며 음악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청각과민증은 잠잠해졌지만, 귀울림 증세는 약하게나마 그를 계속 괴롭힌다.


암 수술을 하며 갑상선은 떼어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조금 높은 음의 노래는 부를 수 없게 됐다. ‘유재하 음악경연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던 그의 노래 실력을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음악과 가장 밀접한 두 신체기관, 귀와 목이 모두 음악 때문에 망가진 류휘만 감독, 하지만 그는 오늘도 게임음악을 만들고 있다.

 

 

 

류감독은 "저와 똑같이 밤샘하며 고생했는데 이철희 실장 등 다른 동료들은 멀쩡한 게 참 이상해요"라고 말했다. <DJ맥스>의 제작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상우(Tiger Brothers, 패턴 디자이너) 함경민(Planet Boom, 사운드 디자이너/기타리스트) 류휘만 감독(Croove, 사운드 디자이너/컴포저) 노상원(Tiger Brothers, 패턴 디자이너) 백승철 팀장(Gonzo, 사운드 디자이너/베이시스트) 이철희 실장(Forte Escape, 사운드 디자이너/컴포저) 신봉건 이사(Ponglow, 게임프로듀서/그래픽 디자이너김진영(harlemkey, 사운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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