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무트: 배틀 오브 레전드>와 <확산성 밀리언아서>의 성공 이후 많은 개발사가 카드배틀게임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이 쉽고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만으로는 개발을 시작한 후 3개월도 이기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접을 뿐입니다.”
카드배틀게임을 개발 중인 비트레인의 박준호 공동대표는 1일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열린 모바일게임 컨퍼런스 ‘게임 넥스트: 올스타즈’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카드배틀(TCG, CCG)의 핵심을 둘러싼 오해들, 그리고 우리의 해법’이라는 강연에서 카드배틀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지적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비트레인 박준호 공동대표
■ “카드배틀 개발은 결코 쉽지 않다”
박 대표는 카드배틀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로 ‘만들기 쉬운 게임’이라는 인식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카드배틀게임은 그림(=카드) 한 장으로 콘텐츠가 수급되기 때문에 개발이 쉽고 저렴한 장르로 인식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한 개발사가 한 달에 한 게임을 내놓을 정도로 잦았던 게임 론칭,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이 웹기술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앱인 것도 이러한 인식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체험한 카드배틀은 개발이 결코 쉬운 게임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카드배틀게임의 핵심인 일러스트의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중위권 유지를 꿈꾸는 게임은 100 세트, 톱10 진출을 노리는 게임이라면 200~250 세트의 일러스트를 갖고 시작한다. 하지만 일러스트 200 세트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2억 원. 중소개발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개발기간도 결코 짧은 편이 아니다. 카드배틀게임은 론칭 못지않게 운영이 중요한 만큼, 개발 단계에서부터 운영 툴에 대한 심도 깊은 고려가 들어가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개발기간의 지연을 가져온다. 한 개발사가 한 달에 한 게임씩 찍어냈다는 일본의 사례도 사실을 알고 보면 게임의 수명이 다해 개발사가 급히 만들어낸 고육책에 가깝다.
넘쳐나는 경쟁작도 문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 카드배틀게임의 공급은 매우 적었지만 <바하무트>나 <밀리언아서>의 성공으로 사정은 달라졌다. 이제는 놀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개발사들이 카드배틀을 개발하고 있고, 이는 곧 론칭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카드배틀에 대한 이해 없이 개발을 시작한 업체들은 시작하고 3개월을 전후로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다시 시작한다. 이 중에서 론칭까지 개발을 완주하는 업체는 많아 봐야 10%에 불과하다”며 카드배틀 개발에 신중히 접근할 것을 충고했다.
■ 그림은 어리거나 풍만하고 벗겨야 한다?
“많은 개발사들이 카드배틀의 일러스트는 마니아들의 기호에 맞게 어린 캐릭터를 그리거나 여성 캐릭터를 벗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카드배틀은 카드가 강해질수록 캐릭터를 벗기거나 신체의 일부를 키우는 식이죠. 하지만 의외로 마니아들이 중시하는 것은 그림보다는 별의 숫자(등급)입니다.”
박 대표는 카드배틀게임에 대한 또 다른 오해로 그림체를 꼽았다. 국내에서 흥행한 대부분의 카드배틀게임의 화풍이 특정한 코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카드배틀 개발사 또한 그런 코드에 맞춰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트레인이 90여 명을 대상으로 세 차례 실시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따르면 모든 게이머가 그러한 코드를 가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카드배틀게임에 경험이 많은 게이머들은 의외로 그림체를 중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카드에 표시된 등급이 높으면 그 카드의 그림 또한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그들이 사실적인 일러스트보다 화려하고 복잡한 화풍을 선호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굳이 캐릭터의 노출이나 섹시어필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카드배틀에 경험이 없는 게이머들은 정적인 그림보다는 동적인 그림을 선호하고,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경험이 없는 이들은 단순한 화풍의 예쁜 카드나 복잡한 효과의 강해 보이는 카드로 취향이 양분된다. 게임 경험에 따라 게이머들의 취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높은 등급의 카드가 일러스트의 품질이 더 좋아야 한다는 것도 개발자들이 갖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카드게임이 높은 등급 카드와 낮은 등급 카드 사이의 일러스트 품질 차이가 크지 않고, 유저 또한 카드의 일러스트 자체보다는 일러스트와 등급을 같이 고려하는 경향을 보인다.
■ “전략과 트레이딩은 카드배틀의 독”
“많은 개발자들이 TCG(Trading Card Game)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카드배틀게임에 전략과 트레이드를 추가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게임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수명을 단축시킬 뿐입니다.”
박 대표는 개발자들이 카드배틀에 대해 시도하는 위험한(?) 기획으로 과거 TCG에서 유래된 전략과 트레이딩 요소의 도입을 꼽았다. 적지 않은 개발자들이 카드배틀에 전략적인 요소를 넣어 보다 역동적인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전략성으로 마니아를 늘리려는 시도는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실제로 현재 매출이 높은 카드배틀 중 전투의 전략성을 강조한 게임은 하나도 없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게임의 접근성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카드배틀게임은 미려한 일러스트와 낮은 학습 난이도로 게이머를 유입시킨다. 하지만 전투의 전략성을 강조하는 순간 카드배틀게임의 낮은 진입장벽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미드코어 게임인 카드배틀이 하드코어를 추구하는 순간 발생하는 딜레마다.
비슷한 이유로 카드배틀게임에서 PvP의 비중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도 경계해야 할 시도 중 하나다. PvP가 강조되는 순간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유저의 평균 결제액이 증가하지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고 나면 패배한 이들이 게임을 떠나 전체적인 매출은 오히려 줄게 된다. 카드를 수집하기 위해 유입된 이들을 전투에 내몰아 불필요하게 굴욕감을 선사한 결과다.
한때 장르의 이름을 결정지었던 트레이드 요소 또한 유저들의 접촉이 자유로운 네트워크상에서는 독에 가깝다. 카드배틀게임에서는 카드를 얻는 과정 자체가 재미의 핵심이지만,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면 그 과정이 급속도로 축약돼 게임의 생명력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TCG에서 트레이딩이라는 요소가 흥할 수 있었던 것은 유저간 접촉이 자유롭지 않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한 카드배틀게임에서 트레이딩이라는 요소는 오프라인 산업의 추억에 불과하다”며 무계획적인 트레이드 요소 추가의 위험을 경고했다.
■ “레어카드가 레어(rare)해선 안 된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좋은 카드를 얻기 힘들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카드배틀을 만드는 개발자 대부분은 카드의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거나 높은 결제율을 유도하기 위해 좋은 카드를 얻기 힘들게 설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유저들의 플레이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디자인이다. 일반적으로 유저들이 게임을 계속하는 데에는 지속적인 성장이 필수적이다. 자신이 노력하면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믿음은 게이머가 게임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이러한 성장치는 유저의 성향에 따라 각기 요구하는 바가 다르다. 무료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는 성장이 둔해지면 금방 게임을 그만두는데, 결제를 아끼지 않는 헤비유저는 능력치 1을 올리기 위해 수십만 원의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청중들에게 무과금 유저에게는 고급카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으로 고급카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만 게임의 유저풀이 유지되고, 무과금 유저를 과금 유저로 만들 기회 또한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는 과금 유저가 게임을 지속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만약 과금 유저의 캐릭터가 막대한 결제를 통해 게임 내 최강이 된다면 과금 유저로서는 더 이상 게임을 계속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미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과금 유저들에게도 고급카드가 풀려 수시로 왕좌가 위협받는다면 과금 유저는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플레이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좋은 카드를 묶어 놓기만 한다면 유저들이 흥미를 잃고 게임을 떠날 뿐입니다. 특히 PvP나 트레이드 요소가 희박한 최근의 카드배틀게임에서는 좋은 카드의 유통은 곧 게임 내 활력소와 같습니다”라며 레어카드를 ‘레어(rare)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