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전 세계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13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WCS) 출범식이 열렸다. 바로 다음날인 4월 4일 2013 WCS 코리아 시즌1 GSL 코드S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많은 한국 스타2 선수들은 포인트를 획득할 지역을 설정했고, 북미와 유럽에서도 WCS의 시동을 걸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북미·유럽 지역 대회를 바탕으로 세 번의 시즌 파이널을 치르고 포인트 랭킹을 통해 블리즈컨에서 열릴 글로벌 파이널까지 가는 큰 그림은 마련됐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출범한 WCS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e스포츠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은 긴급진단을 통해 현재 WCS 시스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더 나은 대회를 위해 제안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디스이즈게임 김경현, 안영훈 기자
■ 블리자드, 지역선택 변경 번복 또 번복? |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부분은 블리자드 코리아의 행정력 부재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디스이즈게임의 취재 결과, 한국 선수들이 WCS 지역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4월 3일 출범식 당시 블리자드는 “시즌1 종료 후 포인트를 획득할 지역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블리자드 코리아가 지난 4월 5일 한국e스포츠협회와 이스포츠 연맹에게 통보한 내용은 달랐다. 한국 선수들은 4월 9일까지 올해 자신이 참가할 WCS 지역을 설정해야 하고,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WCS 지역이 한국으로 고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WCS 시즌1 GSL 코드S에 출전하는 선수는 시즌1 종료 후 지역을 변경할 수 있지만, 코드A(챌린저 리그)와 코드B(예선) 출전 선수는 계속 한국 지역에 출전해야 한다는 방침도 내려왔다.
이는 지난 4월 3일 발표한 지역 변경 제도와 다른 이야기였다. 블리자드 코리아가 시즌1으로 명명된 이번 챌린저 리그와 예선을 시즌2 프리미어 리그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대회로만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시즌1이지만 블리자드의 해석은 시즌2였다는 뜻이다.
시즌1 종료 이후 지역을 변경할 수 있는 줄 알았던 게임단과 선수들은 크게 반발했고, 한국 대회를 진행하는 주최측이 블리자드 코리아에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했다. 결국 블리자드 코리아는 4월 9일 오전 9시에 긴급 회의를 갖고 “시즌1 종료 이후 모든 선수가 지역을 변경할 수 있다”고 재통보했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이 느꼈던 불안감과 고민은 상상 이상이었다. 블리자드의 재통보를 전달받은 한 선수는 “애초에 지역 설정 제도를 듣고 실망과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즌1 이후 지역을 새로 설정할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해외 대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극심한 고민에 빠졌던 지난 며칠이 너무도 허탈하다”고 말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는 지역 변경제 정책에 대한 공지가 협회, 연맹 소속 게임단에만 전달됐다는 것이다.
북미 게임단에 소속돼 있는 우경철(루츠게이밍) 선수는 10일 예선 현장에 와서 e스포츠 관계자들에게 지역 설정 및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문의한 뒤, 부랴부랴 블리자드 코리아에 문의를 넣어 예선 접수 직전에 북미로 지역을 설정했다. 우경철 선수는 “지역 설정 및 변경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거의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예선장을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지역 변경권,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우여곡절 끝에 선수들은 시즌1 종료 후 지역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리그 진행 방식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변수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리그 시스템은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된 후 챌린저 예선이 진행되고 챌린저 리그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시즌1 파이널이 끝난 후 지역을 변경한 선수들은 시즌2 예선부터 승리를 이어가더라도 시즌3에서야 프리미어 리그에 진입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지역 변경권을 사용해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선수들은 이번 예선에서 탈락했거나 각 지역 프리미어 리그 상위 5위에 들어 다량의 포인트를 확보하는 선수들이다.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어차피 시즌2에서도 예선을 통해 시즌3 프리미어 리그를 노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조금이라도 낮은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이번 시즌1에 많은 포인트를 확보한 해외 지역 설정 선수 중 일부는 상금에 대한 세금과 체류 비용의 문제 등으로 다시 한국에 올 가능성이 있다.
상금에 대한 세율이 4% 미만인 한국과 달리 유럽과 미국은 상금의 30~40%에 가까운 돈이 세금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체류비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EG, 엑시옴, 퀀틱게이밍 등 해외 팀들은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임재덕, 정종현(이상 LG-IM) 등 한국 팀 소속 선수들은 장기간 해외에 머무를수록 비용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지역 변경 제도는 시즌1 예선 탈락자와 프리미어 리그 상위 입상자들에게만 유리한 선택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챌린저 리그에 잔류하고 있는 선수들이 다른 지역을 선택할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 셈이다. 지역을 변경하면 해당 지역의 예선부터 대회를 시작해야 한다.
■ 시즌3 예선, 챌린저 리그의 의미는? |
리그의 진행 흐름을 살펴보면, WCS 한국 지역 대회는 2013년 마지막 시즌 때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즌3에서는 예선과 챌린저리그를 진행할 이유가 사라질 수도 있다.
WCS 시즌1을 프리미어 리그로 시작한 한국 지역은 예선에 이어 챌린저 리그를 진행해 차기 시즌 프리미어 리그 진출자의 향방을 가리는 승격강등전을 치르게 된다. 이런 흐름이라면 올해 마지막 시즌인 시즌3의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되면 챌린저 리그와 예선전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2013년 시즌 숫자는 3개지만 제대로 의미를 갖는 예선과 챌린저 리그는 시즌1, 시즌2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즌3 프리미어 리그 진출자들만 시즌3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블리즈컨 2013에서 열릴 글로벌 파이널 이후에는 2013년 포인트가 소멸되기 때문에 시즌3의 챌린저 리그와 예선은 굳이 안 해도 되는 대회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올해 WCS 한국 지역 진행 방식.
올해 WCS 북미 지역 진행 방식.(공개된 일정 참고, 유럽은 시즌1 이후 일정이 공개되지 않음)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한국 지역 WCS가 GSL의 방식을 그대로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주최사들의 시즌2 리그 방안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블리자드가 발표한 대로라면 한국과 동일한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WCS 포인트 때문이다. 32명의 선수로만 제한되는 프리미어 리그와 달리 챌린저 리그는 각 주최사에 따라 리그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챌린저 리그 1, 2, 3라운드 순위에 따라 포인트가 주어지게 된다면 해외 역시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해 포인트를 산정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WCS의 포인트 체계다. 블리자드는 아직까지 포인트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그렇다면 대안은? |
4월 3일 있었던 출범식 이후 디스이즈게임은 프로게이머, 게임단, 해외 매체, 해외 주최사의 반응과 정보를 취합해 WCS의 시스템을 검토했다. 그 결과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몇 가지 문제와 우려되는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WCS는 어떻게 보완돼야 더욱 발전할 수 있을까?
일단 한국·북미·유럽의 지역 대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 → 챌린저 리그 → 예선 순으로 대회를 진행하지 말고 예선 → 챌린저 리그 → 프리미어 리그 순으로 대회를 진행해야 한다. 예선과 챌린저 리그가 단순히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대회에 머무르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예선 → 챌린저 리그 → 프리미어 리그 순으로 대회를 재정렬한다는 것은 지난 시즌 잔류자 및 시드자 외에도 예선을 뚫고 거침 없이 위로 올라가 우승하는 선수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시즌 구별이 보다 확실해지며, 시즌별 순위를 단순하고 체계적으로 정렬해 포인트를 매길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리그 순서 재정렬은 시즌2부터 고려돼야 한다. 시즌1 프리미어 리그 상위 8명 시드와 챌린저 리그 잔류자는 유지하고 포인트는 보존하되, 시즌2부터 지역 대회 방식을 ‘리셋’하는 것이 시즌3 챌린저 리그와 예선을 소생시키고, 시즌1 종료 이후 선수들이 행사할 지역 변경 권리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