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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스팸리스트 구해요” 카톡 친구초대가 부른 기현상

스팸 광고 보내는 번호 모아서 게임 이벤트 해결

안정빈(한낮) 2013-04-10 23:59:25

# 직장인 A 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요즘 즐기는 모바일게임에서 카카오톡 친구 30명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내면 아이템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내 20명까지는 해결했지만 남은 10명을 채울 방법이 없다.

 

연락처에 등록된 거래처 사람이나 직장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쉽지 않다. 카카오톡을 통한 게임 메시지가 범람하면서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비매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연락처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A 씨는 결국 아이템을 포기하고 말았다.

 

# 대학생 B 씨는 아예 카카오톡 초대 전용 스팸리스트를 구축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스팸 광고를 보냈던 연락처를 따로 관리하면서 친구초대가 필요할 때마다 그들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어차피 불법광고를 위해 사용 중인 계정에 메시지를 보내는 만큼 미안함도 없다. 최근에는 카페를 통해 스팸리스트를 공유하며 폭을 넓히는 중이다.

 


<데빌메이커>의 친구 초대 이벤트. 뛰어난 능력치의 ‘바니걸 서유리’ 카드를 준다.

 

 

■ 이제는 필수가 된 카카오톡 초대 이벤트

 

모바일게임의 친구 초대 이벤트가 대중화되면서 유저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의 스팸리스트가 공유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출시된 카드배틀 RPG <데빌메이커 for Kakao> 30명의 친구를 초대하면 바니걸 서유리 카드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바니걸 서유리 5등급의 유니크카드로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 중 최고 단계에 속한다.

 

지난 9일 출시된 <마구마구 2013 for Kakao>에서도 30명의 친구를 초대하면 최고 5단계 중 3단계 카드 한 장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윈드러너 for Kakao>에서는 친구를 초대하면 소환수인 그리핀을, <헬로 히어로 for Kakao>에서는 레어 등급의 히어로를 얻을 수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출시되는 모바일게임에서 친구 초대 이벤트가 필수로 자리 잡은 셈이다.

 

친구 초대 이벤트는 유저를 통해 쉽게 게임을 홍보할 수 있고, 카카오톡을 통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친구 초대 이벤트를 통해 제공하는 아이템의 값어치도 높다.

 

<윈드러너>에서는 친구 30명을 초대하면 그리핀을 준다. 초대가 아닐 경우 5,000 원 정도를 내고 구입해야 한다.

 

 

■ 아이템은 탐나고, 메시지 뿌리긴 찝찝하고

 

카카오톡 연동 게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초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게임 초대 메시지가 신종 스팸으로 떠오를 만큼 문제시되고 있다. 덕분에 A 씨의 예처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초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B 씨가 사용하는 스팸리스트’의 공유다. 평소 카카오톡으로 스팸 광고를 보내는 번호를 저장해 뒀다가 이를 게임 초대 메시지를 보낼 때 활용한다. 스팸 광고를 보내는 카카오톡 계정은 대부분 실제 휴대폰이 아닌 PC나 전용기기 등을 이용해 일괄적으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답변이 올 가능성이 낮아 부담이 없다.

 

카페나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스팸리스트를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네이버 지식인이나 게임관련 카페 등을 보면 카카오톡 스팸리스트를 공유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카카오가 카카오톡 게임하기를 통해 서비스되는 게임의 초대 이벤트를 최대 30명으로 제한하면서 ‘30명 묶음 단위의 스팸리스트도 공유되고 있다. 이를 이용한다면 B 씨의 예처럼 출시되는 게임마다 일단 초대 이벤트를 달성하고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일부 유저들은 이를 (스팸 광고에 대한) ‘역공이라 부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카톡 스팸리스트를 검색한 상황. 이 밖에도 많은 커뮤니티에서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

 

 

■ 부작용도 발생, 카카오 게임 열풍이 부른 기현상

 

문제는 스팸리스트의 악용이다. 스팸리스트가 공유되는 과정에서 악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번호를 집어넣거나, 스팸이 아닌 일반 휴대폰 리스트를 공유하는 등의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카페에서는 스팸리스트의 악용을 우려해 홍보용 사진이 붙어 있는 카카오톡 프로필 이외에는 공유를 막았을 정도다.

 

스팸리스트를 활용하는 유저들은 눈치를 보며 30명의 친구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내느니 스팸 광고에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생각이다. 아이템 하나를 위해 30명에게 꼬박꼬박 초대 메시지를 보내도록 만드는 개발사의 기획 자체를 비판하는 유저도 있다.

 

스팸리스트를 이용한다는 B 씨는 편법이라는 건 알지만 가뜩이나 카카오톡 초대 메시지가 넘쳐 나는 상황에서 30명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생각은 없다. 오히려 평소에 스팸광고를 보내던 사람들에게 앙갚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카카오톡 연동 게임을 준비 중인 한 개발자는 초대 이벤트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알지만 홍보효과나 입소문, 친구끼리의 커뮤니티 형성을 생각한다면 안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친구초대를 월 1회로 줄이고 최대 30명 제한을 두는 등 제약을 걸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다들 계속 초대 이벤트를 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내시장에서 카카오톡 연동 게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기현상 스팸리스트 공유카카오톡을 이용한 게임 홍보를 원하는 개발사와 초대 메시지의 남발로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유저들의 생각이 맞물리면서 이 기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초대 이벤트를 위해 전화번호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스팸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