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업계는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자들에 대한 대우’는 성장 속도만큼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제때 급료를 받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지만, 개발자들은 지금도 이에 대한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은 실제로 게임 개발에 온힘을 쏟았지만,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현재 다니던 회사와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한 개발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파국으로 끝난 게임 프로젝트, 책임은 개발자의 탓?
#1
지난 2012년, A사에서 개발한 온라인 캐주얼 게임이 5년이 넘는 개발기간 끝에 드디어 오픈베타(OBT)를 시작했다. 원래 이 게임은 1~2년이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개발과정 관리 실패를 비롯해 온갖 문제로 인해 늦게 서비스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동안 게임이 뒤엎어지기도 수차례, 개발팀 구성원들이 통째로 바뀐 것도 수차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게임의 OBT는 오래 가지 못하고 몇 개월 만에 끝을 맺었다. 개발기간이 너무 길어진 탓에 최신 온라인게임의 흐름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고,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결국 게임은 유저들로부터 외면받았고, 서비스를 종료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OBT 시점에서 개발자들은 월급이 상당 부분 체불된 상태였는데, 결국 회사에서 밀린 급여에 대한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회사의 논리는
간단했다. “너희들이 게임을 못만들어서 실패했으니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2
개발자 B씨는 이 게임의 ‘구원투수’로 전체 개발 과정의 중간에 합류했다. 이미 합류 시점에 잦은 개발자 교체 및 관리 실패 등으로 많은 문제가 생겼던 상황이었지만, B씨는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며 개발을 계속했다. OBT 시작 직전에는 회사의 상황이 좋지 못해서 사실상 ‘무임금’으로 일하는 상황까지 되었지만, 그래도 게임이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해외에 판매되면 밀린 월급을 주겠다는 회사의 말만 믿고 버텼다. 이는 B씨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회사에 남았던 거의 모든 개발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B씨는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을 ‘무임금’으로 일했다. 그가 회사로부터 받지 못해 체불된 급여만 해도 0이 일곱자리를 넘는다. 하지만 회사는 밀린 급여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그는 퇴사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시작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B씨와 개발자들은 A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 애당초 게임이
실패하면 급여를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
#3
A사에는 게임의 퍼블리셔이며, 사실상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C사가 있었다. A사와 C사는 서로 같은 건물을 사용했으며, 직원들 역시 같은 건물에서 서로 인사하며 생활해왔다. 적어도 직원들 사이에의 인식은 ‘A사=C사’였다.
하지만 A사의 게임이 실패한 이후, C사는 “A사는 우리와 관련이 없다”며 거리를 벌렸다. 실제로 ‘서류상’으로 보면 두 회사는 완전히 별개다. 같은 회사 내지는 자회사와 모회사 관계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A사의 개발자들이 C사에 책임을 요구했지만 C사는 이러한 점을 근거로 내세워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사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애당초 C사는 A사의 게임이 실패하면 책임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인을 나누고 관리한 것 자체가 게임이 실패하면 A사 하나만 버린다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B씨를 포함한 개발자들은 뒤늦게 법원을 통해 A사와 C사가 같은 회사였다는 것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C사는 얼마 전 또 다른 온라인게임의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고 그 판권을 해외에 팔았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금전적 이득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들이 A사와 C사의 관계를 입증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만약 A사가 폐업을 한다면, 그래도 B씨를 포함한 개발자들은 노동부를 통해 미지급된 급여의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차라리 폐업이라도 해달라”며 A사에 호소하고 있지만, A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폐업을 거부하고 있다.
노동부를 통해 급여를 보전받으려면, 퇴사 이후 1년 안에 회사가 폐업을 신청해야 한다. B씨의 경우 그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지만, 회사는 계속 폐업을 거부하고 있기에 일부의 급여라도 받을 길은 막막하다. 현재 A사는 사실상 직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알려져 있다.
#5
B씨에게 있어 정말 힘든 부분은 어떻게 법정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밀린 급여를 받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승소하면 A사 및 사장에 대한 재산 압류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만, 그 이전에 A사 사장이 회사 재산 및 개인 재산을 빼돌리고 “돈 없다”고 주장하면 사실상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B씨 입장에서는 과거 회사에 다닐 때 A사의 재무상황 및 사장의 재산상황 등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지금에 와서는 경찰이 나서서 수사라도 해주지 않는 한 이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 “회사의 재무상황을 최대한 파악해라”
이렇듯 현재 국내 실정에서는 게임 개발자들이 밀린 급여와 관련해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회사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돌려받는 것이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개발자들은 이와 같은 급여 미지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해 법무법인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회사에서 한 달이라도 월급이 체불되면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회사의 재무상황에 대해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최대한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두는 것이 좋다. 퇴사 이후에는 이에 대한 자료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여 체불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가급적 빠르게 노무사를 통한 상담을 받고, 이후 노동부 등을 통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들의 마인드다. 위의 사건에서 개발자 쪽을 대행하고 있는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건을 맡다 보면 정 때문에, 혹은 잘 모르기 때문에 어영부영 대응을 늦게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직원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최소한의 정당한 대우가 보장된 환경이 형성돼야 개발자들 입장에서도 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고, 좋은 게임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현재 게임업계의 환경을 보면 제도적으로 그 ‘최소한’의 환경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부분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