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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KGC] 몬스터 헌터는 ‘유저의 실력을 키우는 게임’

‘몬스터 헌터’ 개발팀이 추구하는 액션과 몬스터 개발과정

안정빈(한낮) 2013-09-26 01:24:52
<몬스터 헌터>의 또 다른 특징은 성장이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는 공격과 방어, 대미지 등의 수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몬스터의 패턴이나 상태도 직접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캐릭터의 성장보다 플레이어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몬스터 헌터> 개발팀은 모든 몬스터를 ‘플레이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 앞서 말한 ‘관찰’만으로도 약점이나 패턴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고, 각 몬스터의 패턴을 극복하다 보면 자신의 실력도 조금씩 늘어나는 구조다.

여기에 소리 하나를 얻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녹음하고 몇 달에 걸쳐 다른 동물들을 분석하며 동작과 외형을 만들 만큼 사실성에도 신경을 썼다. 25일 진행된 KGC 2013의 <몬스터 헌터> 강연 2부에서는 <몬스터 헌터> 개발팀이 추구하는 액션과 몬스터 개발과정을 담았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처음부터 게임센터용 액션게임을 만들던 사람들이 모인 만큼 <몬스터 헌터>는 액션에도 아주 많은 신경을 썼다. 플레이어가 직접 관찰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모든 유저의 액션실력을 늘려주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과감한 시도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일본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순히 어려운 게임을 만들자는 의도는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적을 보고 관찰하면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배워나가야 한다.

몬스터의 체력은 표시되지 않고, 플레이어가 몬스터에게 입히는 대미지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은 관찰을 통해 알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몬스터는 체력이 낮으면 점점 약해진다. 스태미나가 줄어들면 공격이 더뎌지거나 도망쳐서 식사를 하고, 화가 나면 맹공을 퍼붓는다. 몬스터마다 성격도 달라서 지고 싶지 않아서 화를 자주 내거나 자주 도망을 치는 몬스터도 있다.

<몬스터 헌터> 개발팀은 플레이어가 이런 몬스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싸우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연구하기를 바랐다. 게임을 즐기고 더 많은 관찰을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내 더 잘 싸울 수 있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의 실력도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몬스터의 모든 공격에는 예비동작을 넣었다. 꼬리를 흔들기 전에 뒤를 바라본다거나 울음소리를 외치기 전에 목을 비틀어 플레이어에게 보고 반응할 시간을 주는 식이다.

플레이어의 액션도 마찬가지다. <몬스터 헌터>에서는 물약 등의 아이템을 먹을 때, 공격하고 난 뒤, 긴급회피 이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무방비한 동작들이 나온다. 급한 상황에 회복약을 먹어서 체력을 회복했지만 이후 회복모션이 나오는 동안 공격을 받아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 초기부터 이런 불리한 모션을 없애달라는 요청도 많지만 개발팀에서는 일부러 유지하고 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액션을 통해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행동을 더욱 잘 관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몬스터가 약간의 틈을 보였다면 플레이어는 그때 회복할지, 회복을 포기하고 몬스터를 공격할지, 아니면 둘 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뒤로 물러설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몬스터를 많이 관찰하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판단력도 좋아진다.

그리고 이런 관찰을 통한 성장은 몬스터의 개발과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몬스터의 공격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다.


■ 몬스터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성장을 위해 계획적으로 배치된 몬스터들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 배치는 플레이어의 성장에 맞춰져 있다. <몬스터 헌터> 신작의 개발을 시작하면 개발팀은 먼저 패키지에 나올 대표 몬스터를 고민한다. <몬스터 헌터 3>의 예를 들면 대표 몬스터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라기아 크루스’였다.

대표 몬스터는 굉장히 강력하지만 플레이어들이 서서히 액션이 좋아지고, 장비도 좋아지는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고비’로 설정돼 있다.

대표 몬스터를 만들고 나면 이제는 나머지 몬스터를 채울 차례다. 나머지 몬스터도 단순히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게임에 철저히 필요한 몬스터들을 만들어야 한다.

<몬스터 헌터 3>에서는 물속 전투가 핵심이다. 대표 몬스터인 라기아 크루스도 바다에서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지상에서만 플레이하던 유저가 갑자기 바다에 들어가서 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를 위한 ‘단계별 몬스터’들을 넣게 된다.


<몬스터 헌터 3>의 대표 몬스터인 라기아 크루스. 대부분을 물속에서 싸우게 된다.

<몬스터 헌터 3>는 소리를 질러 다른 몬스터를 부르고, 동작이 큰 크루펫코를 통해 기본적인 전투를 익히도록 만들었다. 이후 지상과 수중을 오가는 로아루도로스와의 전투를 통해 수중전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로아루도로스는 대부분을 지상에서 생활하지만 체력이 줄어들면 수중으로 도망가는 패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 전투에서 첫 수중전을 펼치게 된다. 스태미나가 떨어진 로아루도로스와, 그것도 잠시만 싸우는 만큼 큰 부담은 없다.

여기서 다시 다른 몬스터들을 통해 부위파괴나 특정패턴의 대응법 등을 익힌 후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라기아 크루스와 대적하게 된다. 레벨 진행을 통해 플레이어가 점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구조다. <몬스터 헌터>에 등장하는 수많은 몬스터 중에 단 하나도 대충 만든 것이 없고, 모두가 게임 디자인에 필요한 몬스터라는 게 츠지모토 료조 프로듀서의 이야기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특정 몬스터들이 ‘○선생’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몬스터 헌터>를 즐기면서 이 몬스터에게 개발팀이 무엇을 배우도록 만들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이렇게 몬스터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몇 달 내외. 중요도가 높은 대표 몬스터는 8개월까지 걸리기도 한다.

그 와중에서도 모든 몬스터가 하나하나 즐거움을 줘야 한다.


■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관찰을 돕는 몬스터의 외형들

관찰과 훈련을 위해서라면 몬스터의 콘셉트도 중요하다. 보는 것만으로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공략법을 알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크루펫코는 울음소리를 통해 다른 몬스터를 불러들인다. 자기 자신은 강하지 않지만 다른 몬스터의 울음을 흉내 내거나 울음소리로 자신에게 버프를 걸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리 부분을 트럼펫 모양으로 만들었다. 다른 몬스터의 소리를 흉내내기 위한 기관이다. 그리고 소리를 내려면 폐활량이 많아야 하는 만큼 가슴 부분에 커다란 풍선 같은 기관을 만들었다. 이 부분을 부풀리면 소리를 내려고 한다는 걸 플레이어가 눈치채기 쉽도록 빨간색으로 칠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크루펫코의 발성기관이 부푸는 것을 보고 여기를 때려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막을지, 아니면 일단 피해서 상황을 정비할지 고민하게 된다.

발성기관과 가슴의 풍선 같은 공기주머니가 특징이다. 척 봐도 어디를 때려야 할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콘셉트는 빙원에 등장하는 몬스터 베리오로스다. 베리오로스는 얼음이 가득한 빙원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이를 위해 발톱과 꼬리, 날개부분에 톱날 같은 스파이크가 박혀 있다. 스파이크는 베리오로스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플레이어의 일차 목표는 스파이크를 부수는 것이다. 스파이크가 파괴된 베리오로스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고 그만큼 느려진다. 관찰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다.

여기에 베리오로스가 가진 거대한 송곳니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다. 물리면 얼마나 큰 대미지를 주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경고다. 베리오로스가 크고 강해질수록 송곳니의 핏빛도 진해진다.

스파이크를 공격해서 느려지게 만든 후 공략해야 하는 베리오로스.

마지막으로 로아루도로스는 수중에 사는 몬스터지만 지상에서도 오래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목에 스펀지 모양의 기관을 달고 있다. 이 부분에 수분을 담아둔 후 지상에서 조금씩 보급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스폰지 부분이 파괴되거나 수분을 모두 사용해서 위축되면 수중으로 돌아갈 타이밍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들은 특징 자체가 게임을 즐기는 요소이자 게임의 힌트를 담고 있다.

목 주변의 스펀지 모양 기관이 핵심인 로아루도로스.


■ 몬스터 음성 하나를 위해 8시간 이상 촬영한 적도 있어

몬스터를 만들 때 게임 디자인적으로 ‘플레이어의 훈련과정’을 고민했다면, 그래픽과 모션에서는 ‘얼마나 사실적이냐’를 강조했다.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는 가공의 생물이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일 필요’가 있다. 단순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실존하는 생물을 참고해 몬스터의 골격과 질감을 만들어 나간다. 살아 있는 동물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동물원도 자주 들른다. 보는 관점 역시 일반 관람객과는 다르다. 호랑이를 보더라도 걷는 법과 서 있는 법을 보고, 왜 그렇게 서있는지, 왜 그렇게 걷는지를 고민한다. 개발 중인 몬스터에 따라 털 사진만 잔뜩, 혹은 발톱 사진만 잔뜩 찍어서 오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살아 있지 않은 것들, 예를 들어 돌이나 철의 질감을 만지며 참고하기도 한다. 실제로 진흙 구덩이를 헤치며 전투를 벌이는 보로보로스는 공룡에 불도저의 이미지를 더했다. 삽 모양을 본뜬 머리로 흙을 파내고 색깔도 불도저의 오렌지색을 곳곳에 섞었다.

강연 중간에는 몬스터에 대한 간단한 퀴즈가 출제되기도 했다. 정답은 
불도저
다.

몬스터의 울음소리 역시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의 소리들을 이용했다. 높은 고성을 내며 우는 ‘쟈기’는 사운드 스태프의 목소리를 가공해서 만들었고, 사막에 사는 거대한 고룡 ‘지엔 모란은 바다코끼리의 소리를 가공해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악어와 방울뱀의 소리가 들어간 몬스터도 있다.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다 보니 음성을 채집할 때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악어가 통 울지 않는 탓에 소리를 채집하느라 8시간을 꼼짝없이 대기한 적도 있다. <몬스터 헌터>의 마스코트 역할인 고양이 ‘아이루의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스태프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의 소리를 직접 따기도 했다.

츠지모토 료조 프로듀서는 “감정이입이 되는 세계관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거기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낄 수 있는, 디자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생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을 수 있는 몬스터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몬스터 헌터>의 아이루 성우(?)의 실제 촬영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