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역삼동 D.CAMP에서 ‘중독법’ 등에 대응해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게임은 문화다! 컨퍼런스’가 열렸다. 게임업계 종사자 및 게임 유저, 대학 교수 등이 참여한 주제 발표와 진중권 교수, 이인화 교수, 이병찬 변호사, 강용원 한의사, 방승준 학부모가 참여한 토론이 오후 내내 이어졌다. 현장에서 인상 깊었던 주요 발언을 영상과 글로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새누리당 의원들이야 말로 법안 발의 중독이자 법안뇌”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 토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대신 눈에 보이는 현상만 덮는 법안을 발의한다며 “문제의 근원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압력 단체를 만족시키기 위해 통과되지 않을 법안을 계속 발의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발의된 법안 중 통과된 것은 손에 꼽힌다. 새누리당이야 말로 ‘법안 발의 중독’이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짐승뇌’ 등의 이론을 반박하고, 가족 관계 단절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왜 게임에 빠지느냐인데, 공부 외에는 게임밖에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현실과 달리 게임은 모든 것이 평등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는다. 문제는 현실인데,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은 그런(공부만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나 법안을 만든 이들이 시스템을 고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죽인다. 게임만 탓하는 법을 발의하는 것은 ‘법안뇌’다.”
이병찬 변호사, 토론에서 과거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폭력적인 게임을 팔면 안 된다는 법안이 발의되었음을 언급하며 “과거 미국에서도 게임과 현실의 폭력 간 상관관계를 밝히겠다고 한 연구가 있는데, 게임을 한 유저와 안 하는 집단에게 explo( )e를 제시하고 빈 칸에 한 글자를 넣어 단어를 완성시키라고 했다. 게임을 한 유저는 대부분 explode라는 단어를 완성시켰고, 게임을 안 한 사람들은 explore라는 단어를 완성시켰다며 게임이 폭력적이라고도 했다. 이건 코미디 아닌가? 결국 각종 문제는 입시 지옥과 무한 경쟁 사회, 장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지, 게임은 아니다.”
“가정의 대화를 늘리려면 노동시간과 학원시간을 줄여라”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 토론에서 게임뇌 이론을 반박하며 “게임 중독자의 뇌와 마약 중독자의 뇌가 같다는 것은 사기다. 뇌와 정신, 영혼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뭉뚱그려 말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같다고 한다면, 스토리 작가가 미친 듯 글이 잘 써지는 상태에 뇌를 스캔하면 간질로 발작하는 환자의 뇌와 똑같다. 도스토옙스키가 신들린 듯 글을 쓰고 있는데 국가가 간질 환자와 뇌가 같다며 잡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어서 자신과 두 딸이 <요구르팅>을 엄청나게 즐기는 유저였다며 “어느 날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지자 재미를 잃고 자기 조절 능력이 생기더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요구르팅>을 그만두게 됐다. 지금도 두 딸은 게임을 하지만, 모두 좋은 대학을 갔다. 게임은 어릴 때 즐기면서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승준 학부모, 토론에서 학부모들의 극성 때문에 아이들의 활동이 제약된다며 “자꾸 아이 엄마가 주말에 아이들에게 공부만 시키려고 해서 직접 함께 PC방을 간다. 아이들에게 숲 활동을 시켜봤는데, 다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설명을 다 외웠는지 검토받게 하더라. 이건 학부모들의 공부 중독이자 성적 중독이다.”
이어서 신의진 의원이 중독법 발의로 학생들이 성적에 고통받는 문제를 덮으려 한다며 “가정의 대화를 늘리려면 부모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학원을 줄여야 한다. 또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지금 아이들이 두세 달에 한 명씩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게임 가지고 장난 칠 때가 아니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부모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라며 “저소득으로 인해 두 부모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국가에서 아이를 보육하거나 가계소득을 높여줘야 한다. 지금 (의원들의) 접근 방법은 이를 건드리면 어디부터 해야 할지 모르니 빙산의 꼭대기에 해당하는 게임만 갖고 흔드는 것이다.”
정예준 학생, 자유 주제 발표에서 신의진 의원을 향해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며 “의료법을 개정할 때 의사들의 의견을 듣는 것처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게임 관련 입법에는 게임 전문가가 빠져 있다. 윌라이트는 ‘영화를 본 적은 없고, 극장에 앉은 관객을 관찰만 했다면 영화는 무기력과 정크푸드 소비를 유발한다고 결론 지을 수도 있다.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게임산업의 큰 그림의 봐달라.”
“심지어 북한도 모바일게임을 만드는데, 한국은 게임을 규제한다”
와일드 카드 김윤상 대표, 규제로 인해 단군 이래 게임산업이 최대의 위기라며 “게임은 인류의 지혜가 모인 결과물이고, 세계 모든 국가가 게임산업을 키우고 싶어한다. 심지어 북한도 외화를 벌기 위해 모바일 게임을 만들며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게임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
청강문화산업대 김광삼 교수, 자유 주제 발표에서 게임이 중독법 등의 논란을 넘어서고 주류 문화로 인정받을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지금 게임업계는 중독법 등에 맞서 게임의 수출액 같은 산업적인 성과를 말하고 있지만, 이는 성장만으로 칭찬받을 수 있는 유년기에나 통한다. 이제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성숙한 성인의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오영욱 개발자, 자유 주제 발표에서 한국의 게임 심의 관련 법을 비판하며 “현재 한국은 게임 심의 때문에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배포할 수 없는 나라다. 누구나 자유롭게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게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률 때문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전에 심의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