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다! 게임 편견 타파 강연 및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 대토론회’가 11일 서울 역삼동 D.CAMP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게이머와 개발자, 교수들의 자유 발표(1부)와 게임업계 종사자와 법조계, 문화계 인사 등이 참여한 토론회(2부)로 구성됐다.
게임계, 문화계, 의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한 2부 토론회는 중독법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 게임계가 어떤 발걸음을 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게임 공포증? 원인 고찰 없이 ‘범인’ 찾기만 혈안이다
“게임 중독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사건이 있다. 게임에 빠진 학생이 부모를 구타한 사건, 게임에 빠진 부모가 아이를 굶겨 죽인 사건, 그리고 게임에 빠진 사람이 홧김에 방화를 한 사건. 3개 사건 모두 게임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는데도, 왜 사회는 게임을 악의 축처럼 몰아갈까?”
사회를 담당한 김정태 교수의 질문과 함께 토론이 시작됐다. 대토론회의 첫 번째 주제는 ‘왜 사회는 게임을 악으로 보는가’였다.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는 김 교수의 물음에 ‘원인에 대한 고찰도 없이, 무작정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 찾기에만 혈안인 사회가 문제’라고 답했다.
진 교수는 “하나의 사회 현상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단순히 게임에 미쳤기 때문에 부모를 구타한 것이 아니라, 학업이나 학교생활 적응, 부모의 관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만 해결하려고 법안만 양성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진의 이병찬 변호사도 진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은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범인이 평소에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다며 게임과 범행을 연결 지었지만, 정작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다른 또래보다 게임을 덜 즐기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집단 따돌림 등이 범행의 원인으로 떠올랐다.
이는 국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부 매체는 ‘게임 중독자’의 뇌가 마약 중독자의 뇌와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고 보도하지만, 뇌의 모습은 그렇게 단적인 현상만 갖고 판단할 수 없다. 실제로 고도로 집중한 작가의 뇌는 간질 환자의 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법무법인 정진의 이병찬 변호사
진 교수는 이렇게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게임이라는 ‘범인’을 비판하고 규제를 양산하는 태도를 가리켜 “엉뚱한 쇼로 국민의 이목을 가리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 까닭은 게임 외에는 친구와 놀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현실이 게임만큼 공평하지 못해서 등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이러한 원인을 고치는 대신 계속 게임 규제만 하고 있다. 원인을 고치는 대신 게임이라는 허상만 좇는 ‘게임공포증’이다. 이런 공포증이 규제만 양산하는 ‘법안뇌’를 만들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태도를 비꼬았다.
진 교수는 이러한 ‘게임공포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 인식 기저에 깔린 게임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의 무의식, 종교인으로서의 무의식, 학부모로서의 무의식 등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인다. 문제는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것이다. 게임의 유해성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이러한 무의식을 직시해야만 바른 토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계도 문화적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인식이 과연 그들만의 잘못일까? 이화여자대학교 이인화 교수는 오늘날 게임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 게임업계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업계 스스로 소홀했던 게임의 문화적 가치였다.
이 교수는 “게임업계가 한참 산업적으로 성장할 때 어느 누구도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고민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문화적 가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찾으라며 노골적으로 산업적 가치에만 몰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제 ‘게임은 문화다’는 말은 기성세대 대다수가 거부감을 나타내는 프레임이 됐다. 업계 스스로 자신들의 가치를 깎아 내린 셈이다”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이인화 교수
이 교수는 이러한 게임업계의 행동이 오늘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 다른 신규 미디어는 스스로 문화적 가치를 고민했지만, 게임은 산업적 가치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이야기였다.
이 교수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게임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고민해 달라고 게임업계에 주문했다. 이는 게임 본연의 가치를 살리는 것과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고 앞으로 다가올 더 많은 규제에 대항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많은 모순과 갈등을 안고 있다. 게임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많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다. 다행히 4대 중독법은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뜻을 함께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쏟아질 법안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서는 게임계 스스로 나서서 자신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한국게임계는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그동안 스스로의 문화적 가치를 증명하기는커녕 어떤 게임이 좋은 게임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제는 산업이 아닌 문화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도 이 교수의 의견에 공감했다. 김 대표는 많은 이들이 산업 논리로 중독법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게임도 산업 이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게임 규제 이야기만 나오면 많은 이들이 산업적인 타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 시민사회가 ‘그 돈, 아이들 중독시켜 번 돈이잖아’ 같은 논리로 나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논리를 떠나 감정적으로도 대응할 수 없다. 이제는 게임도 게임만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때다”고 이야기했다.
게임 중독? 부모, 학교, 사회가 변해야 한다
토론회에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타파할 방법뿐만 아니라, 게임이 원인이라 일컬어지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토의도 있었다.
“고시 공부를 할 때 <스타크래프트>에 미쳐 살았다. 고된 공부가 끝나고 즐기는 게임 한 판은 꿀맛과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고시촌 PC방에는 사람이 항상 만원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이 뭔지 아는가? 정작 고시가 끝나고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 오자 PC방은 텅텅 비어 있었다. 시험이라는 스트레스가 우리를 게임에 몰입하게 했다.”
이병찬 변호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게임 과몰입,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각종 문제들은 게임 자체보다는 사용자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의 의견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대다수의 공감을 샀다.
학부모 방승준 씨
두 아이의 아버지 자격으로 참석한 방승준 씨는 “아이들에게 새벽 2시까지도 게임을 하게 허락하지만 우리 아이가 게임에 중독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에 대해 나와 대화할 시간이 많다 보니 다른 가정보다 관계가 더 돈독하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관심이 문제다”고 발언했다.
방승준 씨는 이와 함께 성적만 중시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가 과몰입을 유도한다고 주장했다. 무작정 게임을 막고 공부만 시키다 보니 아이들이 갑갑함에 더 게임에 몰입하고, 게임을 자주 접하지 못하니 게임에 대한 자기조절 능력을 잃게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일부 학부모들의 성적 중심 사고방식에 대해 ‘성적중독’이라 비꼬며, 학부모들에게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김종득 대표는 정부와 국회가 특정 현상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원인을 해결해 줄 것을 주문했다. 김 대표는 중독법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인 맞벌이 부부 등 소외된 청소년의 게임 중독 문제를 예로 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게임 규제가 아닌 경제와 교육과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강용원 한의사
한의학으로 정신과 진료를 하고 있는 강용원 한의사도 규제 중심의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신의진 의원이 중독법이 논란이 되자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있다. 나는 그 글 중 ‘게임중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게임 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는 문구에 놀랐다. 청소년 게임 중독의 문제는 현실의 어려움으로부터의 도피다. 이를 헤아리지 않고 무작정 게임만 막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진정 게임 중독이 걱정되면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 어른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