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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가상 캐릭터도 아동포르노? ‘아청법’ 토론회 개최

참석자 모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인정

김승현(다미롱) 2013-12-13 18:29:01
개정 이후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이 진행됐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실과 인터넷 자유를 추구하는 단체 ‘오픈넷’은 13일 국회 도서관에서 ‘진정한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 만들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아청법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개선책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가상 캐릭터도 아동포르노? 표현의 자유 위협


이번 토론회의 핵심 주제는 아청법 ‘2조 5호였다. 2조 5호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하 아동포르노)를 규정하는 데 있어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표현물뿐만 아니라, 이로 인식될 수 있는 성인이나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표현물을 포함시켜 논란이 되었다.

토론 참석자 대부분은 2조 5호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인정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과 필요 이상으로 과한 형벌이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거나 생산, 유통하는 이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황성기 교수는 해당 조항에 대해 “법이 보호하기 위한 주체부터 다르다”고 지적했다. 아청법이 아동포르노를 규제하는 목적은 실제 아동의 성착취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애니메이션이나 그림 등 실제 아동이 등장하지 않는 표현물까지 포함되며 규제가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영역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해당 조항에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물이나 문화 콘텐츠 그 자체에 대한 규제로 발전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청법에 명시된 ‘신체를 접촉·노출해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아동포르노의 기준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가 다르기에 법의 예측 가능성까지 저해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청법이 발의된 후 성인이 교복을 입고 등장한 음란물이나 일본 성인용 만화를 통신매체에 소지한 사람에 대한 기소사유가 아동포르노와 음란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선 경찰도 아동포르노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북부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은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2조 5호에 대해 직접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2조 5호의 기준은 국제적인 기준과도 동떨어져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아동포르노에 대한 국제 기준은 실제 영상을 합성한 ‘가상 아동 포르노’에 대한 기준은 있어도, 실존하지 않은 아동 청소년을 주제로 한 표현물은 해당되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사회적 성도덕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일부 국가에서는 ‘일반 음란물’로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림이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 캐릭터가 등장하는 표현물이 아동포르노로 규정된 예는 없다.


 “가상 캐릭터라도 아동성범죄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아동·청소년 보호를 우선시하느냐,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였다.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

청소년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아동·청소년 보호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대표는 아청법에 명시된 아동포르노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아동성범죄와 아동포르노(가상 캐릭터 포함) 관계자의 처벌을 달리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아동포르노가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해야 하는 표현물에 국한하거나 소지죄를 아청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이 대표가 근거로 든 것은 아동성범죄와 아동포르노의 상관관계였다. 아동포르노가 아동성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많은 아동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가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한 만큼 상관관계 자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지 않는 표현물이라고 해도 이를 규제해 아동성범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현재 아청법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취지가 좋다? 그릇된 수단과 재난과 같은 결과가 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문화계 인사 대부분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상 캐릭터 관련 조항을 개정해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가상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란물과 아동성범죄의 관계를 100% 부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로 우려되는 ‘성도덕’ 문란은 형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음란물 관련 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만화평론가 서찬휘

문화계 인사가 가장 많이 지적한 사항은 아청법 자체의 설계였다. 취지는 좋지만, 법안 설계가 잘못돼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만화평론가 서찬휘는 “법의 취지만 보지 말고, 법이 야기하는 결과를 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위정자들의 인식과 달리, 일반인들에게 법은 무섭고 끔찍한 무언가다. 아청법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기준이 명확하지 못해도 사법부까지 가면 자연히 무죄가 된다고 하는데, 일반인은 이를 위해 최소 몇 개월 동안 일상을 바쳐야 한다. 부디 이 의미를 생각해 보다 합리적인 법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정부와 국회가 문화 콘텐체에 대해 갖고 있는 규제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우려했다. 이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문제만 생겼다 하면 문화 콘텐츠에 책임을 전가한다. 과거에는 만화나 TV가 범인이었고, 이제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 범인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 중심의 법안 때문에 정작 법안이 지켜야 할 청소년의 인권이나 기본권은 여전히 침해받고 있다”며 현상 대신 원인에 초점을 맞춰주길 요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