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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10주년] 네오위즈가 걸어온 길

태무 2007-05-29 10:57:29

네오위즈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습니다. 8명의 창립멤버가 1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네오위즈는 원클릭, 세이클럽과 같은 인터넷 벤처에서, 지금은 3대 게임포털로 꼽히는 '피망'을 운영하는 게임업체로 변신했지요. 남들보다 한발 앞선 행보로 끊임없이 변신해온 네오위즈는 이제 네오위즈게임즈로 거듭나 좀더 전문적인 게임업체로서의 역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EA와 손을 잡은 네오위즈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가장 궁금하네요.

 

어떤 사람의 앞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죠. 회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디스이즈게임에서는 네오위즈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네오위즈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려 합니다. 이제까지의 네오위즈와 앞으로의 네오위즈. 살펴 보시죠. /어쩌다보니 10주년 전문 기자가 되버린 태무


 

1996년                                넥슨에서 시작된 인연...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KAIST 경영과학대학원을 졸업한 나성균 대표는 96년 넥슨에 입사하게 됩니다. 사실 ‘입사’라는 말은 좀 무색하네요. 96년 당시의 넥슨은 겨우 10여명 가까운 직원으로 꾸려나가는 소규모 회사였거든요.

 

나성균 대표(오른쪽)와 정상원 본부장(왼쪽). 쓸만한 사진이 없어서 예전 기사에서 훔쳐왔습니다. (^^;)

 

10명 중 개발인력 4명이 <바람의나라>를 개발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웹팀’에서 돈을 벌어 개발비용을 대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절에 나성균 대표는 박진환, 정상원, 송재경 등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인재들과 인연을 맺게 되지요. 이 인연에 대해서는 예전 기사들(링크1, 링크2)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1997                                    네오위즈 창립 그리고 원클릭

 

 

97년 6월, 나성균 대표는 지금은 ‘첫눈’으로 더 잘 알려진 장병규씨, 전 부인인 최세연씨 등 8명의 창립멤버와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네오위즈’를 창립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네오위즈는 처음부터 ‘게임회사’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이 많은 돈을 주고 외국에서 웹 푸시(자동표출) 기술을 사오는 것을 보고는, “외국 것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립한 회사지요. KAIST 전산학과 출신인 장병규씨, 88년에 KAIST 최연소입학기록(15세)을 갈아치운 오성규씨 등 쟁쟁한 인재들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푸시 솔루션은 생각보다 ‘돈’이 되지는 않았지요.

 


네오위즈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원클릭’이었습니다. 97년 말, 나성균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을 궁금해하는 부모님에게 푸시 솔루션을 보내드렸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깔아본 부모님께서 “네가 어떻게 이런 엉터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냐”고 노발대발하셨대요. 재빨리 부모님 댁으로 달려간 나성균 대표는 아연실색했답니다. 인터넷조차 설치되지 않은 컴퓨터에서 푸시 솔루션이 작동될 리가 없죠. 메모지에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한 방법을 빼곡히 적어드리고 돌아온 나성균 대표는, 며칠이 지난 후 메모지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설명해달라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은 후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 ‘원클릭’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사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들에게는 대단히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나봐요. 특히 각종 통신관련 요금을 전화요금통지서로 합산해 청구한다는 빌링방식이 인기였죠. 제품을 발표한 98년에 5억원, 99년에는 무려 1600% 늘어난 85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죠.

 

1999년                              또 한번의 성공 세이클럽
  

 

99년 말, WWW 서비스와 PC방의 증가로 인해 늘어날 대로 늘어난 ‘인터넷 유저’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미 스카이러브(하늘사랑) 등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네오위즈의 세이클럽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이클럽은 시험서비스 기간부터 시장점유율 30%를 기록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다른 채팅사이트가 텍스트 위주였던 것에 비해 세이클럽은 음악과 동영상, 아바타를 활용해 멀티미디어 채팅 서비스를 제공했거든요. 99년 7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세이클럽은 6개월만에 스카이러브를 제치고 업계 1위로 등극하게 됩니다.

 

게다가 2000년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아바타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게 또 대박을 터뜨립니다. 한달만에 매출 3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네오위즈는 원클릭과 세이클럽을 묶어 순풍에 돛을 단 듯 성장해나갑니다.

 

결국 2000년 6월에는 코스닥에 등록하기에 이르죠.

 

2003년                         피망 오픈, 본격적인 게임의 세계로
  

 

게임과 관계없는 얘기가 좀 길었죠? 네오위즈라는 회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지금부터는 게임회사로서의 네오위즈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네오위즈가 게임사업에 진출한 것은 2001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승택 대표가 이끌고 있던 게임 개발사 엠큐브를 인수하면서 세이클럽에 선보일 게임들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2002년 1월에는 이 게임들을 본격적으로 서비스했기 때문이죠. 또 향후 네오위즈 게임사업본부장 및 자회사인 엔틱스, 레드덕의 대표이사로서, 네오위즈의 게임사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오승택 대표를 영입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오위즈의 본격적인 게임사업은 2003년 게임포털 ‘피망’부터라고 할 수 있죠. 넷마블, 한게임에 이어서 세 번째로 선보인 게임포털 ‘피망’은 화려한 마케팅으로 시작됐습니다. 100억 규모의 마케팅비를 쏟아 부어 서울 시내 도처에 애드벌룬을 띄우고 빨간폭탄을 실은 트럭을 운행했지요. 게다가 피망 PC방에서 처음으로 가입하는 손님들에게 500원짜리 두 닢을 나눠주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컨텐츠(웹보드게임)도 훌륭했지요. 오승택 게임사업 본부장이 이끄는 피망은 가장 인기있던 고스톱의 경우 4가지의 서로 다른 룰을 가진 게임을 선보였으며, 완성도면에서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국 정식오픈 2개월 만에 게임포털 방문자 1위로 올라서게 되지요.

 

 

 

그러나 피망이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피망 오픈과 함께 야심차게 발표했던 퍼블리싱 게임들이 속된 말로 ‘녹아 내리면서’ 좌절을 겪기도 했지요. 즉, 웹보드 게임은 승승장구했지만 퍼블리싱한 게임들은 연전연패하는 상황이었어요.

 

두빅엔터테인먼트의 <히트프로젝트>, 아이써프의 <팀레볼루션>, 카마디지털엔터테인먼트의 <악시온>, 씨드나인의 <범핑히어로즈>. 또 채널링 쪽으로는 <씰온라인> <샷온라인>...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까 아~! 하는 생각이 드시죠?

 

물론 <알투비트>처럼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게임도 있지만, <스페셜포스>가 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 네오위즈는 결코 성적이 좋은 퍼블리셔는 아니었습니다.

 

 

2004년                                         스페셜포스
  

 

2004년 7월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스페셜포스>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불과 3개월만에 누적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했고, 1년 뒤에는 동시접속자 11만에 누적회원수 6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했지요. 피망의 웹보드 게임들과 <스페셜포스>의 선전에 힘입어, 네오위즈는 2005년 사상 최대 실적(매출액 1,021억원)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셜포스>의 성공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저는 <카운터스트라이크>(이하 카스)의 몰락이 큰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3월 스타일네트워크라는 회사가 갑자기 “<카스>의 개발사인 밸브사와 PC방 유통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PC방에서는 월 1만 5,000원을 내고 업소용 CD키를 구입해야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표를 했죠. 여태까지 PC방에서 공짜로 <카스>의 멀티플레이를 즐기던 게이머들, <카스> 시리즈의 국내 퍼블리셔들, PC방업계는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PC방업계의 반발이 엄청나서 불매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카스>를 대신할 ‘대체게임’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 대체게임이 바로 <스페셜포스>였죠. 물론 나중에 건빵 서비스로 인해 진통을 겪기는 합니다만, 이 당시에는 PC방이 <스페셜포스>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건빵 서비스로 인해 다시 한번 마찰이 있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FPS게임을 꽉 잡고 있던 <카스>의 이용자들이 차츰 <스페셜포스>로 갈아타기 시작합니다. 당시 <카스> 관련 최대의 커뮤니티였던 ‘나리카스’의 한 설문조사가 기억에 남네요. <카스> 유료화와 관련한 설문에서, ‘당신은 <스페셜포스>를 플레이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40% 이상의 회원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었죠. 물론 게임도 좋았고, 마케팅도 훌륭했지만 <카스>의 반발효과도 만만치 않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2005년 2월에는 <스페셜포스>가 FPS장르 점유율 90%를 돌파하게 됩니다(게임트릭스 발표 기준).

 

 

2005년                                게임에 올인하겠다!

 

 

2005년은 게임회사로서의 네오위즈에 아주 중요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포스>가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3월에는 병역을 마친 나성균 대표가 CEO로 복귀하면서 ‘게임사업에 올인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죠.

 

이때부터 줄줄이 커다란 발표들이 터집니다. 4월에는 정상원 전 넥슨 대표가 이끄는 띵소프트를 인수해 계열사로 추가했고, 6월에는 송재경 대표의 야심작 <XL레이싱> 퍼블리싱을 맡기도 했습니다. 7월에는 정상원씨가 네오위즈의 게임제작본부장으로 취임했으며, 9월에는 에버플랜트와 네오액트의 신작 퍼블리싱 계약을 맺기도 했지요.

 

이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은 바로 정상원 본부장입니다. 사실 네오위즈에는 인재가 참 많지만, 게임이나 게임개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임원은 찾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정상원 제작본부장이 자체 개발과 퍼블리싱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네오위즈는 그런 공백을 메꿀 수 있게 된 거죠. 또 넥슨 시절의 인맥으로 여러 개발인원을 영입하고, 퍼블리싱 계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엔씨소프트의 리차즈개리엇과 비슷한 역할을 네오위즈는 정상원 본부장이 해줬던 거죠.

 

2006년                                   게임공룡 EA와 함께~
  

 

정상원 본부장 영입으로 가장 크게 효과를 본 것은 바로 <피파온라인>이죠. EA코리아가 <피파>를 들고 자체적으로 온라인게임을 개발했다가 실패한 것이 2005년. 이후 EA는 자체서비스를 포기하고 파트너사를 물색하기 시작했죠. 당연히 여러 퍼블리셔 업체를 만나봤을 겁니다.

 

EA가 네오위즈를 선택한 것은 정상원 본부장의 역할이 컸죠. 국내 업체들이 대부분 계약을 맺는 데만 집중한 것에 비해, 정상원 본부장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까다롭게 굴었답니다. 그게 오히려 EA에겐 매력적이었던 거죠.

 

 

어쨌든 EA <피파> 시리즈의 10여년 가까운 개발 노하우와 네오위즈의 온라인 개발 노하우가 만나 <피파온라인>은 또 한번의 대박을 칩니다. 2006년 5월 오픈베타테스트를 시작한 <피파온라인>은 곧장 PC방 순위 1위에 올랐으며 20일만에 동접 10만, 2달 뒤에는 동접 18만을 기록하는 등 굉장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유료화 방식 때문에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네오위즈로서는 <스페셜포스>의 뒤를 받쳐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죠.

 

또한 EA는 지난 3월 네오위즈와 지분투자 및 온라인게임 공동개발, 퍼블리싱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또 앞으로 배틀필드 등 4개의 게임을 EA와 네오위즈가 협력해 개발하게 되었죠. <배틀필드 온라인>과 <니드포스피드 온라인>이 이미 개발중에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게임기업인 EA가 네오위즈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2007년                             기업분할과 해외시장 진출

 

 

10주년을 맞은 네오위즈는 또 한번의 모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글로벌 카드와 기업분할이죠. 지난 4월 일본 자회사인 네오위즈 재팬은 게임포털 ‘게임츄’를 오픈했죠. 이와 함께 그동안 국내사업을 총괄해오던 박진환 사장을 네오위즈 재팬의 대표로 전격 투입했습니다. 박진환 사장은 나성균 대표와 넥슨 시절부터 함께 했으며, 나성균 대표가 병역문제로 자리를 비우면서 네오위즈 전체의 경영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임원이죠. 박진환 사장이 네오위즈 재팬의 대표로 투입됐다는 것은 네오위즈의 일본 진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 네오위즈는 해외개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일본내 자체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진행하며, 앞으로 일본 외에 중국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네오위즈 게임즈 출범식에서의 한 컷. 망원렌즈라서 정상원 본부장은 잘렸네요...ㅠ.ㅠ

 

그보다 중요한 이슈는 바로 기업분할입니다. 네오위즈는 얼마 전 존속회사인 네오위즈를 남기고, 네오위즈 게임즈, 네오위즈 인터넷, 네오위즈 인베스트 등 3개의 독립회사를 출범시켰습니다. 기업분할의 의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네오위즈의 핵심사업인 ‘게임’에 좀더 집중하겠다는 의미가 클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매출의 90% 이상을 내고있는 게임사업을 독립시켜 좀더 전문화하겠다는 뜻이겠지요. 네오위즈 게임즈 최관호 대표는 “보다 경쟁력 있는 게임을 출시하고 EA의 전략적 파트너라는 위치에 걸맞게 글로벌 회사로 성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의 네오위즈

 

 

중국과 대만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게임 퍼블리셔들이 엄청나게 전문적이고, 또 돈도 잘 번다는 사실이었죠. 우리나라는 게임으로 성공한 기업 대부분이 개발사 출신인데 비해 외국에서는 퍼블리싱 업무를 했던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더군요. 그런 해외기업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정말 마케팅도 잘 하고, 개발사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는 전문 퍼블리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네오위즈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20여개 가까운 게임을 퍼블리싱하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물론 타율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 창사이래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사업능력, EA라는 막강한 파트너...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남지요.

 

네오위즈는 스스로를 인터넷 비즈니스의 연금술사라고 부르더군요. 이제 네오위즈 게임즈로 게임전문 기업이 된 만큼, 앞으로는 손대는 게임마다 대박을 내서 게임업계의 연금술사로 불리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네오위즈 창립 10주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