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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14] 이차선 라이터, “마영전은 사실 스토리가 없는 게임이었다”

마영전 스토리의 잘한 점과 못한 점 5가지, 마영전 스토리 포스트모템

안정빈(한낮) 2014-05-28 18:45:09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마영전)은 다른 건 몰라도 시나리오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게임이다. 여기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 넥슨은 <마영전>의 시나리오에 많은 인원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초기 <마영전>은 시나리오가 없는 게임이었고, 시나리오 디렉터를 포함해 고작 3명의 시나리오 제작인력이 있었다. 그나마도 실제로 대화를 쓰고 세부적은 부분을 짜는 시나리오 라이터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마영전>은 어떻게 유저들에게 시나리오를 인정받았을까? 

그리고 어떤 한계에 부딪혔을까? <마영전> 시즌1의 유일한 시나리오 라이터 이차선 라이터에게 <마비노기 영웅전>의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잘한 점과 못한 점 5가지씩을 들었다. 결과는? 강연 부제목 그대로 그곳(마영전팀)에도 낙원은 없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넥슨의 이차선 라이터

잘한 점 1.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진행


<마영전>의 첫 개발 당시 스토리 비중은 매우 낮았다. <마영전>의 첫 개발목표에는 격렬한 전투액션, 생동감 있는 물리효과, 하이엔드 비주얼 등이 있었을 뿐 어디에도 ‘스토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영전>의 첫 모습은 용병단에서 퀘스트를 받고 적을 처치하고 다시 돌아와서 퀘스트를 갱신하는 마치 <몬스터헌터>시리즈와 비슷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 테스트 과정에서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실제로 스토리를 적용하고 나니 반응이 크게 좋아졌다. 단순히 몬스터 100마리를 처치하는 것보다 몬스터를 처치하다 보면 100분의 1 확률로 아내를 치료할 비약을 얻는다는 설정을 넣는 것이 한층 현실적이고 유저가 게임에도 더 잘 녹아들게 만들었다.

특히 MORPG는 던전 중심의 게임인 만큼 콘텐츠가 건조할 수밖에 없는데, 스토리가 들어가면서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부가효과도 얻었다. 결국 <마영전>은 전투 때문에 퀘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전투를 간다고 내용을 포장하는 데 성공한다. <마영전>이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첫 번째 잘한 일이다.


초창기 <마영전>의 콘셉트. 어디에도 스토리는 없다.


던전을 돌기만 하는 구조가 초기 <마영전>의 모습이다.


잘한 점 2. 스토리 전달방식


<마영전>에서 스토리에 시간을 쏟기 시작한 건 사내 CBT 이후, 그러니까 개발로는 엄청나게 바쁘기 시작할 때다. 그래서 스토리를 만들어 넣기 시작한 이후에도 지원은 굉장히 열악했다. 스토리를 보기 쉽게 알려주는 컷신만 보더라도 <마영전>의 시즌 1에 사용된 컷신은 10개. <블레이드앤소울>이 백청산맥까지 총 85개의 컷신을 사용한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시스템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나마 해결한 것이 화면에 사각형 모양의 아이콘을 띄우는 수준이다. 그래서 컷신 이외에도 효과적인 전달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게임이 텍스트 위주의 스토리 전달을 한다. 

그런데 유저들은 글을 안 읽는다. 심지어 시나리오 라이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택한 게 <역전재판> 방식의 텍스트다. <역전재판>에서는 유저가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텍스트를 2줄 내외로 표현한다. 

<마영전>도 마찬가지다. 모든 텍스트를 2줄로만 표현하고,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에 제한까지 뒀다. 이차선 라이터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읽을 수밖에 없는 전달방식”이다. 그래서 유저에게 텍스트로도 최소한의 스토리 전달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퀘스트 아이템을 띄울 수 있는 작은 아이콘 하나가 시나리오를 위한 전부였다.

2줄로 제한한 대화창. 자주 넘겨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단어는 읽게 된다.

잘한 점 3. 스토리 리딩


<마영전>은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먼저 나온 후 그에 맞춰 전투를 이끄는 방식이다. <마영전>은 개발할 때 처음부터 카단이 마지막 보스로 정해져 있었고 잉켈스의 죽음도 예고돼있었다. 핵심 플레이를 만들고 나서 완성 막바지에 스토리를 넣는 일반 게임과 반대다.

게임에서 스토리보다 플레이가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실제로 스토리를 뒤에 붙이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벌어진다. <마영전>에서도 골렘 모습의 보스인 ‘콜루’가 대표적인 예다. 콜루가 등장하는 알베이는 원래 아무도 모르는 지역으로 설정된 곳이라 몬스터도 나오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콜루라는 몹을 이곳에 배치한 이상, 퀘스트를 받아야 새로운 전투가 열리는 <마영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지역의 퀘스트를 넣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곳인데 그곳에 가라는 퀘스트를 주는 모양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가 없다. 결국, 콜루 스토리는 지금도 욕을 먹고 있는 부분이다.

반면 스토리가 앞장서서 시스템과 콘텐츠를 이끌기 시작하면 몬스터의 콘셉트나 스킬 등을 스토리와 통일성 있게 맞춰갈 수 있다. 실제로도 카단이나 잉켈스, 글라스기브넨 등은 기획 초기부터 고민을 거듭했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유저들의 반응도 좋았다.

게임은 스토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다른 콘텐츠를 이끄는 순간 굉장한 통일성을 얻게 된다.

잘한 점 4. 아트와의 연결

 

아티스트와의 협력도 좋았다. <마영전>에는 약속의 검이라는 아이템이 있다. NPC의 추억이 담긴 무기를 재활용해서 자신이 사용할 무기를 받는 퀘스트인데, 정작 이비처럼 지팡이를 사용하는 직업은 난감해졌다. 퀘스트를 뺄 수도 없고, 무기로 검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때 한 원화가가 스태프에 작은 검의 모형을 매달 것을 제안했고, 생각보다 쉽게 스토리를 해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와의 협력은 스토리가 없는 부분에서도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준다. <마영전>에서는 예티와 코볼트의 사이가 나쁘다는 설정이 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할 스토리는 없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컷신 하나가 전부인데 결국 애니메이터에게 요청 했더니 예티들을 코볼트가 날려버리며 등장하는 컷신을 만들어줬다. 누가 봐도 둘의 사이를 예상할 수 있는 컷신이다.


주인이 없는 설정의 엘더나이트 갑옷은 한 아티스트가 딱히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단에게 입히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단이 입었던 갑옷이라는 설정이 됐고, <마비노기>에서는 날개 한 짝이 뜯긴 글라스기브넨은 아티스트가 날개를 온전하게 가자고 제안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영전>의 주인공들이 날개를 뜯었다는 설정이 생기게 됐다.

설정북의 새끼랫맨이나 인기 장비인 그렘린 모자 등도 아트팀의 설정에서 너무 귀여워서 채택한 것들이다. “아트팀과 긴밀하게 지내면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가 녹아들고 이게 바로 내러티브가 된다”는 게 이차선 라이터의 설명이다.


날개가 살아난 글라스기브넨. 부위파괴 연출을 통해 날개를 찢을 수 있고, 그래서 <마비노기>에서는 날개가 하나 없다는 설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아티스트의 설정에 포함된 이미지가 너무 귀여워서 게임으로 구현한 그렘린 모자


잘한 점 5. 단독 라이팅


여기 한 인물이 있다. 키도 크고 모델이다. 잘생겼다. 당연히 지적일 거란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개그를 한다. 소위 말하는 ‘확 깨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통일된 이미지를 통해 유저에게 몰입감을 줘야 한다. 꾸준한 작업이 필요하고, 모든 대화에서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통일성이 필요하다. <마영전> 스토리텔링은 어쩔 수 없이 이게 가능했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한 명이었으니까.

다만 <마영전>은 MORPG였고 시나리오 라이터의 능력도 출중해서(?) 이게 가능했던 거지 일반적으로 라이터 혼자 모든 대화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실제로 <마영전>도 서비스를 이어가면서 점점 이 부분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본의 아닌 결과지만 그만큼 통일성 하나는 확실히 얻었다.


잘못한 점. 1. 라이터의 권한 부족


그럼 <마영전>의 시나리오는 무슨 문제를 겪었을까? 상황은 팀이 커지고, 퇴사자가 생기면서 찾아왔다. 기존의 <마영전>은 이상균 시나리오 디렉터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하는 상황이었다. 자연히 스토리와 콘텐츠가 매칭되는 구조다.

하지만 에피소드3 이후 팀이 커지고 이상균 디렉터를 비롯한 인물들이 퇴사하면서 팀간의 교류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스토리와 콘텐츠 연결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NPC 니아브다. 니아브는 원래 레벨 50 이후에 만나는 NPC인데 정작 게임에서는 레벨 40에 PVP 퀘스트 도중 갑자기 나와 친한 척을 하면서 ‘나를 위해 퀘스트를 해달라’ 부탁한다. 

PVP 스토리를 따로 작업하며 생긴 일이다. 미궁, 토르, 서큐버스 등도 나중에 짜 맞춰진 스토리로 어투가 깨지거나 동선이 꼬이고,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커지고, 역할이 나뉘면서 점점 줄어든 교류

 

결국 퀘스트에서 스토리가 따로 노는 상황도 벌어졌다.

 

잘못한 점 2. 협업 오류


팀이 커지면서 생긴 협업문제는 더 컸다. <마영전>에는 카단이란 NPC가 있다. 어리지만 대단한 능력자다. 그에게는 컷신이 2개가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 한 영상에서는 카단이 날아오는 창을 손으로 잡고 일당백의 전투를 펼친다. 그런데 두 번째 컷신에서는 화살 하나를 그대로 맞고 일어나질 못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애니메이터와의 교류가 안 됐기 때문이다. 참고로 문제의 영상을 만든 아티스트는 앞서 코볼트와 예티의 영상을 만든 그 아티스트다.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나리오 라이터와의 충분한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같은 카단의 컷신이지만 보여주는 능력은 완전히 다르다.

부족한 교류가 만들어 낸 상황. 

잘못한 점 3. 부족한 지원


<마영전>의 시나리오 지원은 처음부터 적었고 지금도 적다. 초기 오픈 때 컷신은 프롤로그 하나뿐이었다. 이제 10개가 넘는 컷신이 있지만, 그것도 스토리 반응이 좋아서 따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에 관련된 시스템들이 뒤늦게 들어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초반부에는 오직 사각박스 아이콘에만 매달린 연출을 이용할 뿐이었다.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실제로도 시나리오 라이터가 원하는 모든 지원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라이터에게는 지금 있는 걸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이차선 라이터의 이야기다.

<마영전>의 컷신은 결코 넉넉한 편이 아니다. 그나마도 후반부에 집중돼있다.

모든 지원이 불가능한 만큼 어쩔 수 없이 활용법을 늘려나가게 된다.


잘못한 점 3. 단방향으로 작성되는 스토리


단방향으로 작성되는 스토리 역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게임에서 스토리는 시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유저의 플레이는 유기적이다. 언제 어디서든 스토리가 뒤죽박죽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티이 실종사건만 봐도 게임 스토리 중간 티이가 신전에 갔다 와야 하는데. 그 사이 퀘스트가 남아있으면 해결책이 없다. 앨리스도 죽고 난 뒤 퀘스트 문제가 벌어진다. 시즌2는 심지어 시즌1과 동시 진행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유저에게 큰 혼란을 줬다. 

결국, 개발자노트에서 설명까지 필요했다. 제어하려 노력은 했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던 부분이다. 온라인은 계속 변하니까 특히 더 어렵다.

앨리스가 사라지면서 해결방법도 사라진 퀘스트.


 

<마영전>에서 택한 방법은 회색으로 해당 NPC의 빈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잘못한 점 5. 절대적인 콘텐츠량의 부족


스토리는 일회성이다.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갈 일이 없고. 지겨울 수밖에 없다. 이는 시간과 인력의 문제. 아쉬운 부분이지만 답은 없다. 스토리 중심인 <마영전>조차 이러니까 다른 게임은 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스토리에서 많은 인정을 받은 <마비노기 영웅전>. 밖에서 보기에는 시나리오 라이터에게 멋진 환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강연의 부제목처럼 마영전팀에서조차 ‘낙원’은 없었던 셈이다.

다만 이차선 라이터는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자연히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